이번 글은 신년계획을 세우기는 하나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심리와 관련이 되는지 K씨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심리학자 중 교류분석의 에릭 번 선생님을 가상으로 초대합니다.
사회자: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K씨의 신년계획을 세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심리적인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심리학의 대가인 분을 초대해서 K씨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신경과학자이신 에릭 캔델 선생님을 모셨었는데, 에릭 캔델 선생님은 ‘기억’이란 키워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기억을 하게 되고 행동으로까지 가는가에 대해 설명해주셨지요. 혹시 에릭 캔델 선생님의 이야기를 못 들으신 분은 지난 글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심리학자 에릭 번 소개
오늘 초대한 분은 교류분석의 창시자이신 에릭 번 선생님이십니다. 에릭 번 선생님은 프로이트 선생님이 만든 정신분석을 공부하시다가 심리분석에 대한 새로운 분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후 연구해서 세상에 내 놓은 것이 교류분석이지요. 교류분석이란 인간 내면의 자아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심리적 거래를 통해 관계를 맺음을 알고 이를 분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바톤을 K씨와 에릭 번 선생님께 넘기고 저도 두 분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2. 신년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는 것과 심리학과의 관계
K씨:
안녕하세요, 에릭 번 선생님. 매년 제가 신년계획을 세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매우 갑갑해서 연구소에 문의했더니 오늘은 심리학의 대가이신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네요. 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에릭 번:
안녕하세요, K씨, 저는 에릭 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K씨를 만나게 되어 반갑군요.
K씨의 신년계획을 세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이를 위해 먼저 제가 연구했었던 인간의 자아란 분야를 먼저 설명하지요. 저는 인간은 누구나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자아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나란 존재’라고 하지요. 그러니 결국 인간의 문제는 ‘생각과 느낌, 행동’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아를 좀더 세분화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자아를 크게 ‘어버이자아’ ‘어른자아’ ‘어린이자아’로 나누었지요. 즉 우리 인간은 이 셋 중 어느 자아상태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어버이자아란 ‘타인의 목소리에 의해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자아’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K씨가 매년 신년계획을 세우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년이 되어서도 굳이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렇다고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힘들지요.
그런데 왜 K씨는 신년계획을 세우려고 애를 쓰는지 궁금한데요. 혹시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신년계획을 세우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었나요?
3. 신년계획을 계획세우기와 어버이자아 관계
K씨:
아, 그러고 보니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 모두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계획을 세우고 하셨어요. 특히 신년이 되면 부모님 자신들이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했어요. 또한 저희 남매들에게도 계획을 세우도록 했고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혼나기도 했지요. 특히 제가 많이 혼나는 대상이 되었어요.
에릭 번:
부모님께서 대단히 계획적인 분이었군요. 반면에 K씨는 그렇지 못했네요. 사람들마다 성향이 다른데 어떤 사람들의 성향은 자신이 무언가를 할 때에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의 성향은 계획을 세워도 항상 다른 것에 빠져 들기에 계획 세우는 것이 무의미한 사람도 있어요.
K씨:
아, 제가 그런 스타일인데요. 사실 오늘 무엇을 하자 해놓고도 다른게 눈에 들어오면 거기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아요.
에릭 번:
그렇군요. 그런데 아까 어버이자아란 타인의 목소리에 의해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자아라고 했잖아요.
앞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재 K씨가 매년마다 신년계획을 세우려고 애를 쓰는 것은 어버이자아 즉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 K씨에게 신년계획을 세우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이때는 대개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충동에 빠지게 되거든요. 그러니 생각은 ‘새해에는 신년계획을 세워야 착한 사람이야.’란 것이 떠오르며, 이때의 느낌은 만약 내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듯한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행동은 어떻게든 계획표를 세우긴 세우는 것이지요.
K씨:
아,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 마음을 그대로 보고 계신 듯 하네요.
사실 저는 신년계획을 제 아이들에게도 시키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정작 제 마음은 진짜 왜 해야 하는지, 굳이 이것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마음에 컸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질문했을 때도 ‘무조건 하면 좋은 거야’라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 해야할 지 등을 제시하지 못했지요.
그 이유가 저의 어버이자아란 곳에서 부모님이 어렸을 때 저에게 말했던 것으로 인해 저는 충동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네요.
에릭 번:
예, 제가 오늘 K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K씨의 어버이자아가 K씨에게 그것을 하라고 자꾸 시키고 있는 것이네요. 우리 인간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이런 목소리들이 있지요. 성장과정이 다르므로 모두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요. 또한 그러한 목소리는 우리를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때도 많아요.
하지만 이 목소리가 적절해야 하는데 이것이 너무 강하게 작동되면 자칫 ‘강박’이란 것이 생겨요. 강박이란 ‘그 무언가의 목소리를 따라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증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4. 신년계획 실행하기와 어린이자아와의 관계
K씨:
그렇군요. 저에게 그런 증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강박적으로 계획표를 세워 놓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릭 번:
예, 이에 대해 설명하려면 먼저 인간의 자아 중 어린이자아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이 좋겠군요.
어린이자아란 ‘어린 시절의 어린 나의 목소리에 의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자아’라고 합니다. 현재 나는 어른이지만 내 마음 속에 드는 생각과 감정은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지금 움직인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 아까 K씨는 신년계획을 세울 때 부모님에게 혼난 경험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K씨:
예, 그 당시 부모님이 신년계획을 숙제로 내 주셨는데 이상하게 저는 숙제를 다 완성해서 갈 수 없었어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서 내가 미리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이를 미적거렸거든요. 그래서 완성하지 못한 채 부모님에게 가면 저는 누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이것도 해 온 것이냐’란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한 차례는 아빠가 너무 화가 났는지 뺨을 세게 때렸어요.
그때 너무너무 화가 나면서도 슬펐어요. 그걸 못했다고 제가 뺨을 맞고 다른 형제가 있는 데서 창피를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나면서 서글퍼지네요.
에릭 번: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때 뺨을 맞거나 혼이 났을 때 부모님께 위로의 말을 듣지 않았나요?
K씨: 아니오, 오히려 다음에 제대로 해오지 않으면 더 많이 혼날 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으셨지요.
에릭 번: 그 다음부터는 K씨는 신년계획을 숙제로 잘 냈었겠네요.
K씨: 예, 안 맞으려면 할 수 밖에요. 하지만 그 계획대로 살아본 지는 한번도 없어요. 그것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반항 한 적은 있었지요.
에릭 번: 무시하거나 반항할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K씨: 그땐 “내가 왜 이걸 지켜야 해? 이 따위를 지킨다고 내가 뭐가 달라져? 이건 그저 억지로 내야 하는 숙제일 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에릭 번: 그때의 감정은 어땠나요?
K씨: 화가 났었어요.
에릭 번:
그렇군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니 K씨는 “내가 왜 이걸 지켜야 해? 이걸 지킨다고 내가 뭐가 달라져?’란 생각과 함께 ‘분노’를 느꼈네요. 그리고 행동은 이를 무시하고 반항한 것이네요.
현재 K씨는 어른입니다.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지요. 하지만 K씨가 신년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고 하면 K씨는 그때 당했던 억울함이 촉발되고 그러면 어린이자아에 빠져 그때 말했던 어린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할 수 있네요. 그때 화를 내며 ‘내가 왜 이걸 지켜야 하는가’란 것과 함께 이를 오히려 무시하고 반항하는 어린이의 목소리가 K씨에게 작동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K씨의 현재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면 그 어린이의 화나서 소리치는 모습이 느껴지나요?
K씨:
아~ 느껴져요. 한 어린아이가 억울하고 분해서 소리치는 장면이 떠올라요. 그리고 일부러 그 계획을 더 안지키려고 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여요.
에릭 번:
예, 그것이 K씨의 어린이자아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겠군요. 정작 K씨는 어버이자아의 목소리에 의해 충동적으로 신년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충동을 강박적으로 느끼고 세우기 까지는 하지만, 또한 어린아자아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그래서 신년만 되면 더욱 이런 두 목소리에 힘들어 하실 수 있겠네요.
K씨에겐 이러한 어버이자아와 어린이자아의 목소리가 내면에 기억되어 있고 이 기억들이 신년만 되면 무의식적으로 K씨를 괴롭히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5. 신년계획과 어른자아 관계
K씨:
정말 그런 것 같군요. 그럼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에릭 번:
어버이자아의 잘못된 목소리와 어린이자아의 잘못된 목소리를 듣고 이를 알아차리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신년계획과 관련해서 어른자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자아란 ‘지금 여기에 합리적이면서 성숙한 생각과 느낌과 행동을 하는 자아’이지요.
심리적인 문제를 해소했으면 어버이자아나 어린이자아 속의 힘들어하는 어린이에게 맡기지 말고 이제는 건강한 어른자아 나서야 합니다. 이 어른자아는 K씨에게 신년계획 세우기와 실행에 대한 합리적인 방법을 알려줄 것입니다.
물론 신년계획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이유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각 사람들마다 그 이유를 찾아가면 되겠지요.
K씨: 감사합니다. 에릭 번 선생님. 오늘은 뭔가 제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인 것 같아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에릭 번: 천만에요. 제가 조금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모쪼록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고 잘 정리하면서 신년계획을 굳이 세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계획을 세운다면 이제부턴 잘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6. 리뷰
사회자: 아, 심리분야의 대가인 에릭 번 선생님과 K씨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지난 시간과는 또 다른 느낌이네요. 마치 K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느낌. 그리고 K씨의 마음 속에서 한번도 꺼내보지 않은 과거의 기억들을 꺼내어서 그 어린아이를 토닥토닥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지요.
K씨가 신년계획을 세우기는 하나 그 계획을 실행하지 않는 진짜 이유를 찾은 것은 정말 다행이네요.
한편으론 지난 시간에 에릭 캔델 선생님이 말한 신경과학과 오늘 에릭 번 선생님의 심리학과는 정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과 그 기억들이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마음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이를 신경과학에서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가 연결되어 어떤 신경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생각하게 하는군요. 또한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신경가소성이란 것이 심리상담과 매우 밀접하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구요. 다음에는 신년계획을 잘 세우고 잘 실행하는 방법에 대한 대가를 초대하기로 하겠습니다. 어느 분이 오실지 매우 흥분이 되는군요.
그럼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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