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는 나의 아저씨 10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은 나의 아저씨 11화를 중심으로 대사 속의 심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나의 아저씨 11화의 중심내용은 박동훈이 회사에서 상무후보가 되어 검증과정을 대비해서 치열하게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에피소드들이 생기네요. 박동훈을 떨어뜨리려는 도준영대표파, 박동훈을 상무로 만드려는 왕전무파, 그러한 가운데 나의 아저씨 박동훈을 보호하려는 이지안의 계략 등이 밑바탕을 깔고 있네요.
그럼 시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나의 아저씨 11화 대사 속의 심리이야기
#1. 박상훈의 ‘먹고 싸고’
나의 아저씨 박동훈의 형 상훈의 인생이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볼 때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고 한줄로 요약하자면 ‘먹고 싸고를 반복한 인생’이었다는 한탄이자 푸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의 형제들인 동훈도 기훈도 그리고 어쩌면 인생 줄기가 40대 이상되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아니야’ 라고 피해갈 수 있는 사람들이 몇몇 되지 않아 보이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네요.
사실 대부분의 인생의 나날들은 좋은 날과 나쁜 날, 그리고 평범한 날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중 가장 많은 날을 계산하라고 하면 아마도 ‘평범한 날’이 제일 많을 것입니다. 또한 아주 아주 좋은 날이었거나 아주 아주 나쁜 날이 아니었다면 좋고 나쁜 날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평범한 날’에 묻히며 잊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뇌의 용량과 관련됩니다. 뇌의 용량이 무한하지 않기에 생기는 현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박상훈의 인생은 특별히 좋았던 날도, 매우 매우 나빴던 날도 없었던 것으로 그 자신은 느끼고 있다는 것이지요. 뇌가 굳이 기억할 내용들이 별로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자신의 인생 자체가 뚜렷한 족적이 없으면 인간은 허무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때 마음은 더욱 공허해지겠지요. 그래서 상훈은 ‘기똥찬 순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똥찬 순간’이란 ‘의미있고 가치있는’ 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습니다. 뭔가 의미있는 것을 통해 정말 살아있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슬로우란 심리학자는 인간의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고 했는데 상훈의 ‘먹고 싸고’에 대한 회의감은 바로 이것을 이루고 싶은 욕구와 관련되어 보이는군요.
#2. 윤희의 질문 “포함해서? 빼고”
지금 윤희와 동훈은 겉으로 보기엔 문제없는 부부처럼 서로 역할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사회적 가면을 쓰고 부부연기를 하고 있지요. 혹시나 가정이 깨질까봐 걱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위의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이 부부문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윤희의 불륜기간은 1년입니다. 그런데 윤희가 불륜을 하게 된 동기를 제공받은 기간은 무척 길어 보입니다. 나의 아저씨 박동훈에게 사랑받기 위해 결혼한 윤희는 남편을 언제나 시댁식구와 동네지인들에게 빼앗긴 느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심리적으론 매우 외로움을 탔던 것이지요. 9화에서 윤희는 ‘그놈의 미안해’라고 동훈을 힐란했었지요. 박동훈 특유의 ‘미안해’란 말이 항상 말뿐이었으며 이는 자신이 박동훈의 1순위가 아니었으며 자신이 겉돌아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화에서도 서로 밤에 늦게 들어온 이유가 ‘상대방이 없어서’라고 합니다. 현재 상태에서 보면 동훈은 아내가 바람피우며 늦게 들어오니까 집에 들어오기 싫은 것이고, 아내는 남편이 밖에서 시댁식구나 친구를 만나 집이 썰렁하니까 늦게 들어온 것이고. 각자의 기준에서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문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부의 진짜 문제는 ‘불륜인가, 동훈이 1주일에 대부분 윤희를 집에 두고 밖에서 살아온 것이 문제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짜 이유가 될지 생각해볼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3 동훈의 “안 쓸쓸하냐”
두 사람의 대화를 살펴보면, 동훈이 겸덕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꽤 오랜 동안 평행선을 달려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훈은,
- 겸덕은 혼자 산에서 살고 있으니 쓸쓸할 것이다.
- 겸덕은 학력고사 만점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었는데, 산에서 그것을 썩히고 있으니 그는 불행할 것이다.
동훈이 겸덕을 마주할 때마다 이 두 가지를 항상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잣대를 겸덕에게 그대로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겸덕은 동훈뿐만 아니라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공통된 이 두 가지를 이젠 매우 지겹다고 합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남들은 자신에 대한 선입견으로 자신을 그렇게 불행한 사람으로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경향이 있으며, 동훈 역시 그런 면이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대방의 진면목을 스스로 가려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4 동훈의 ‘나 혼자 희생하면’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동훈은 ‘자기희생’이 자신의 내면의 신념이며 이것을 바탕으로 생활해왔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겸덕은 이러한 동훈에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무서운 것은 동훈의 ‘자기희생’은 마치 자신의 업보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 희생하면 된다.’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지요.
그런데 겸덕은 동훈에게 말합니다. 동훈의 ‘자기희생’을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다못해 아들 지석이조차 그것을 ‘기분이 더럽다’라고 느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의 자기희생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실제 상담현장에서 ‘자기희생’이란 심리구조에 빠진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그것이 몸에 배어 왔기에 습관적으로 이를 수행하고 있음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희생할 대상으론 현재의 자기 가족이 아니라 주로 부모와 형제들입니다.
그런데 부모나 형제 중에는 그들의 자기희생을 이용하려 들거나 아니면 그 희생을 전혀 달가워하지 않음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자꾸 돈이나 무엇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반대로 자꾸 도움주려는 것이 거북하고 실제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 거부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타인은 받고 싶지 않은데 본인은 돕지 않으면 자신이 불편해지는 심리를 가진 것이지요.
동훈의 집안 사람들은 동훈의 자기희생을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동훈을 걱정하는 측면이 더 많아 보입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형제인 상훈과 기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훈의 자기희생은 그가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대상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희생인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5 겸덕의 ‘행복하자. 아무 것도 아니다’
동훈은 남들도 모두들 ‘자기희생’을 하며 산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일부 맞고 일부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자들의 자기희생은 그 희생이 타인에게 충분히 도움되고 가치있는 자기희생입니다. 하지만 동훈의 자기희생은 가족들에겐 실제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으며 상대방의 마음만 많이 쓰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겸덕은 동훈의 어머니가 삼형제 중 가장 걱정을 하는 대상이 바로 동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런 동훈이 안쓰러운 것이지요.
또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희생을 하더라도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는 안 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되풀이될 때 결국 자신도 행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인도 부담스럽고 행복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동훈의 ‘자기희생’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를 의식적으로 자신의 행복추구를 ‘뻔뻔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동훈과 같이 ‘자기희생’이란 심리패턴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처방이 될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는 각자가 다르기에 각자에게 맞는 처방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겸덕은 ‘아무 것도 아니다’란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다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알았다면 그 후론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훈의 자기희생이 어려서부터 그의 가정환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었다는 것과 그것이 현재 비극적인 여러 모습에 영향를 끼쳤음을 이제 알아차렸다면, 이젠 이를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헤쳐나갈 때는 현재까지 일어났던 문제들에 매이기 보다는 이를 툴툴 털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깨끗하고 억울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 문제의 원인을 내가 제공했을 수도 있음도 알아차린다면 나는 상대방을 정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범주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가 될 것입니다. 실제 문제해결을 미주알고주알 따지기 보다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마음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자신도 타인도 좀더 깊게 이해하고 서로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동훈의 ‘사람 말 안 듣지 너’
동훈은 다음 날 여러 장면들을 회상한 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듯이 도준영 대표실에 들어가 그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음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며 “내가 너 밟아 버릴 거야”라고 협박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주먹으로 그를 쓰러뜨립니다.
이제까지 참아오며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놓았으나 이젠 더 이상 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회상이 바로 겸덕이 동훈에게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너부터 행복하라”라고 한 말입니다. 이 말이 동훈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면 동훈은 그가 대표실에 들어가 소리를 치고 분노를 표출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을 타인에게 맞추어 ‘희생’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자신이 쟁취하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분노를 내고 폭력을 휘두른 것이 이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드라마 상에선 대단히 과격하게 표현되었지만, 심리상담 현장에서도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막혀있던 정서가 터져 나와야 이러한 심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도준영은 지속적으로 동훈을 괴롭히는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도준영은 똑똑하면서도 간교한 사람이며, 박동훈을 지속적으로 파멸에 이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대상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그의 막혀 있는 심리회복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임은 분명할 것입니다.
이를 모른 척 아닌 척 회피하는 것은 현실적 문제는 물론 심리적 문제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드라마의 과격한 이 표현은 꽤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이 순간부터 박동훈은 이전의 박동훈이 아님을 선언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나의 아저씨 박동훈의 ‘안 잘라’
나의 아저씨 박동훈이 이지안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지안은 자신이 그 회사에 계속 있는 것은 박동훈에게 해를 끼치는 것임을 알고 박동훈이 자신을 자르게 함으로 나의 아저씨인 박동훈이 상무가 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자기 나름의 각본을 짰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 박동훈은 지안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한 마디로 ‘안 잘라’입니다. 오히려 이지안이 잘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지요.
이러한 나의 아저씨 박동훈의 모습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자기희생`’이란 심리패턴과 관련이 있을까요?
제 보기엔 이전에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이전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천성적인 기질성향과 관련된 ‘인간애’와 ‘자기희생’이란 심리패턴이 교묘하게 섞여 있었다면, 이 장면부터는 박동훈의 심리 포지션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는 건강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지안을 대할 때 자신도 모르게 상처입은 사람들의 심리적 동질감이 많이 깔려 있었다면, 이젠 자신과 타인들이 모두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심리상담에서는 ‘건강한 생활자세’라고 합니다. ‘I’m OK. You’re OK’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요. 이젠 박동훈이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좀더 솔직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윤희의 ‘여보 미안해’
더 이상 양심에 걸려 연기를 할 수 없었던 윤희는 박동훈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고합니다. 박동훈은 이때 처음으로 아내에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주먹으로 방문을 때려 부수기도 하지요. 아주 격한 감정표현입니다.
그런데 박동훈은 ‘윤희가 불륜을 행한 자체보다도 왜 하필 ‘도준영’인가에 대해 울분을 토합니다. 이 말 속엔 어떤 심리가 숨어있을까요?
이를 살펴보려면 박동훈의 “너 나한테 사망선고를 내린 거야. 가치없는 인간이라고 그냥 죽어버리라고”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인간이 이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심리는 ‘나란 사람’에 대한 존재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엔 이것이 타인에 의해 건드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집단이라면, 아무리 화가 났어도 상대방의 존재감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약 상대방의 근원적인 ‘나란 존재’를 건드린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뜨려 죽이겠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드라마상에서 박동훈은 도준영을 매우 낮은 수준의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그의 살아온 행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현재의 사회적 위치가 어땠든 간에 그는 도준영이란 사람을 인간으로서 매우 낮게 본 것이지요. 다만 평소에는 이를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대 놓고 표현하는 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과 같기에 이를 피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윤희는 자신을 버리고 도준영을 택했습니다. 이는 박동훈이란 존재가 도준영이란 존재보다 훨씬 못한 완전 밑바닥인 존재란 것으로 박동훈은 받아들일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특히 박동훈같이 ‘인간애’가 높은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 헛것이라는 느낌을 매우 크게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박동훈의 심리적 상처가 다른 불륜의 부부들보다 훨씬 크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편, 이 부부가 서로의 관계가 회복될지는 결국 동훈의 심리적 상처가 회복될 것인가와 직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론 박동훈이 말한 ‘하필’이란 단어 속에 숨겨진 의미 중에는,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이유에 자신의 책임도 있음을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처음엔 무조건 아내 잘못이었는데 여러 차례 아내와의 이야기 중에 ‘자신이 원인을 제공했다’란 것을 느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내가 너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밖으로만 돌아다닌 것은 내 잘못이야. 그렇다고 하필 그 녀석이야?’란 측면도 있어 보이는 것이지요.
박동훈의 심리에는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2. 나의 아저씨 11화 정리 및 소감
나의 아저씨는 앞의 내용보다 뒤로 갈수록 그 내용이 깊어 보입니다. 특히 11화에는 박동훈의 심리가 변화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다루었기에 개인적으론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에서 인간의 심리적 문제들을 어떻게 접근하고 치유하는가에 더욱 궁금해지더군요. 한편으론 인간 내면의 디테일한 부분을 찾아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단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나의 아저씨 12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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