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수필1: 겨울의 억새꽃

겨울의 억새꽃

겨울의 꽃이라면 단연 억새다.  

가을에 은빛으로 만발했던 억새꽃은 겨울이 되면 그 은은함을 풀어내며 솜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솜꽃들이 겨울 들판을 하얗게 덮고 있으니, 겨울은 결코 춥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솜털 속에 감춰진 씨앗들은 바람을 타고 흩날리며 새로운 생명을 틔울 준비를 한다. 추운 겨울, 억새는 자기 한 몸을 온전히 바쳐 자연도, 자신도 다시 살아가게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과 다름없다.

 

겨울의 억새꽃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이나 개천을 따라 달리면 어김없이 억새들이 보입니다.

가을이 점점 저물어 가는 때부턴 유난히 눈에 다가오지요.

이전엔 억새는 꽃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냥 풀에 해당된다고 생각했었고 그 모양이 ‘나는 꽃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했었지요. 하지만 억새는 자그마한 꽃들이 마치 이삭처럼 이어져 있으며 이 꽃들이 씨앗을 맺는 것이지요.을에 이와 같이 우리 눈엔 마치 먼지털이와 비슷해 보이는 꽃들이 핀 것이며 태양의 햇살을 맞으면 때론 은빛으로 때론 금빛으로 찬란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제 겨울이 되면 꽃은 지고 씨앗이 맺히며, 그것을 감싸는 솜털이 부풀어 오릅니다. 언젠가 솜털 속에 숨겨진 씨앗은 바람에 날려 그 어딘가에 심겨지므로 그 생명은 영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일과 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시간이 있으므로 요즘엔 어딜가나 억새를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이들을 맞이할 때마다 뭔가 홀린 듯 사진을 찍곤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찬란한 가을의 억새가 아니라 한 겨울의 억새를 만날 때마다 한편으론 그 생명이 다해가는 듯한 느낌에 마음이 저도 모르게 울적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억새를 볼 때마다 뭔가 숭고한 느낌마저 들곤 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제 일정상 노을이 지는 때가 많으므로 황금빛 햇살에 물든 억새는 더욱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이지요.

 

 

오늘도 억새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전과 같은 슬픈 색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나더군요.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요엘 2장28절 새번역)

 

이 구절을 보면서 ‘아이들이 꿈을 꾸고 노인들이 예언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이전에 했었는데 말씀 공부를 하면서 이 말씀의 진의를 깨달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의 예언이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말하는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맡는다’라는 뜻이기에 하나님 말씀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에게 적합한 것이지요.

또한 노인이 꿈을 꾼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꿈과 관련됩니다. 자신들이 한 평생 닦은 것들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해주고 또한 다음세대가 어려움에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사전에 계획할 뿐만 아니라 교두보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과 한 겨울의 억새. 겨울에 씨를 맺는 억새를 위해 털들이 솜과 같이 되어 씨를 품어 주고 함께 바람에 날려 차가운 땅에 머물지라도 봄이 되면 땅 밑에 심겨질 때까지 끝까지 제 역할을 하는 솜털들.

꿈을 꾸는 노인이 이 솜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에 미친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은 요엘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주실 때, 믿음으로 자라난 노인들은 다음 세대를 품고 준비시키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연상을 하고 나니, 억새를 볼 때 이전과 같이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다음 세대를 품을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성찰이 따라오더군요.

물론 젊었을 때보다는 몸의 기능이 많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몸도 뇌도 가동이 가능한 이때, 맡겨진 특별한 사명을 위해 좀더 정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겨울에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감이 걷히는 듯 하더군요.

 

독자 여러분도 억새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과 연결해 보시면 어떨까요?
겨울 억새가 봄을 준비하듯,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다음을 준비하는 존재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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