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글3: 통증으로 인해 생긴 신념, 그리고 믿음에 대하여

이 글은 통증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신념, 그리고 이를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바꾸는 것과 더불어 기독교 신앙인에게 믿음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 글과 관련됩니다. 이전 글은 ‘아브라함의 신념과 믿음 이해‘ 였습니다.

신념과 믿음

통증으로 인해 생긴 신념, 그리고 믿음에 대하여

 

며칠 전, 통증으로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 이웃의 글을 보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힘내세요’라는 이모티콘과 짧은 기도뿐이었지만, 그 순간 마음이 오래도록 아쉬웠습니다.

그러던 중, 웹소설 『축구천재로 오해받는 중입니다』를 읽다가 한 장면이 깊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지안이 병문안을 갔을 때, 오히려 병상에 누워 있는 마테오가 그를 위로하는 장면입니다.

“아픈 건 몸이지, 마음은 아프지 않아”

마테오는 과거의 사진을 꺼내며 말합니다.

“이 때에 비하면 지금은 완전히 못 봐주겠는 얼굴이 됐지.
머리는 하나도 없고, 비쩍 말라서 거의 해골 수준이고…
그래서 죽고 싶었지. 근데 아빠, 엄마 생각해서 죽을 순 없고.
방법을 찾다가 봤더니, 이런 나라도 사랑하는 수밖에 없겠더라고.”

그는 말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더 산 나를 칭찬하고, 아픈 치료가 끝나면 잘 참았다고 칭찬하고…
그렇게 억지로라도 하니까 되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편해. 아픈 건 몸이지, 마음은 아프지 않아.”

그리고 덧붙입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게 제일 먼저야.
기준을 확 낮추니까 별거 아닌 것도 칭찬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자랑스러워지더라고.”

이 장면은 통증을 겪는 사람에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심리적 구조를 바꾸는 통찰을 줍니다.

통증이 만드는 심리적 해석과 신념

통증의학에서 말하는 통증은 단순한 아픔이 아닙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성 통증이 극단적인 고통을 유발하고, 그 고통이 오래 지속되면 PTSD와 같은 정신적 외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통증은 감각기관이 극도로 자극받는 상태이며, 그 자극은 불쾌한 감정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곧 심리적 해석을 낳습니다.

예를 들어:

  • “이 통증은 절대 낫지 않을 거야.”
  • “나는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을 거야.”
  • “나는 가족에게 평생 짐이 될 거야.”

이러한 해석이 반복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신념이 됩니다.

 

정서적 결핍과 신념의 강화

만약 통증 이전에도 정서적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신념화는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내면의 해석을 이미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해석과 통증으로 인한 해석이 결합되면 신념은 더 깊고 단단해집니다.

 

마테오가 보여준 신념의 전환

마테오는 이 구조를 깼습니다. “죽을지도 몰라”라는 해석을 “살아 있는 나를 칭찬해”로 바꾼 것입니다.

이런 전환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따뜻하고 긍정적인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통증을 몸의 문제로 분리하고, 마음을 자기 칭찬과 수용으로 보호했습니다.

 

통증과 마음의 관계

통증이 몸을 아프게 하지만,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통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통증을 해석한 신념의 내용입니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오랜 마음의 고통이 신념으로 굳어진 내담자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잠시 우울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우울을 반복적으로 해석하고 고착시키면 신념이 되어버리고, 치유가 어려워집니다.

상담은 그 신념을 찾아내고, 내담자가 그것을 알아차리게 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재해석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믿음으로의 전환 ― 신념을 넘어서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바른 신앙인이란 자신의 신념을 믿음으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통증으로 인해 생긴 신념도 믿음으로 바꾸어야 할 신념의 하나입니다.

✝️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신 이유

예수님은 많은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연민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자,
손이 마른 자…
그들은 오랜 고통 속에서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신념을 형성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이 말씀의 핵심은 ‘능치 못할 일이 없다’가 아니라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신념을 믿음으로 바꾸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 믿음 없이 기적만 경험한 사람들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새다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0–24)

기적을 경험했지만 신념을 버리지 못하고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책망입니다.

♂️ 욥 ― 통증 속에서 믿음을 얻다

반면, 욥은 집도 잃고 심한 통증으로 기왓장으로 몸을 긁을 정도였습니다. 친구들에게 위로받기는커녕 정신적 고통까지 겪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병을 먼저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임재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욥은 믿음을 선물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그의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통증 속에서 믿음을 배우는 길

통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신념에 의한 잘못된 심리적 해석이 있다면 마테오처럼 자기 칭찬을 통한 재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령님의 임재와 말씀을 통한 영적 해석으로 믿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통증은 몸을 아프게 하지만, 신념은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마음을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말씀

주님께서 하신 말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이 말씀은 병마가 심한 통증이 결국은 나의 몸을 죽일지라도 나의 영혼을 죽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심한 통증으로 인해 생긴 신념이 자신의 마음도 영혼도 죽일 수 있음을 이해한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믿음을 향한 인생의 방향을 찾는데 좀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통증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통증을 해석하는 우리의 마음은 신념으로 무너질 수도 있고, 믿음으로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 고백

이 글은 통증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이를 이겨내려 애쓰는 이웃분에게, 그리고 같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방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씁니다.

통증은 몸을 아프게 하지만, 신념은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마음도 영혼도 다시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임재와 말씀, 그리고 성령님의 조명 안에서 우리의 신념이 믿음으로 바뀌는 그 여정이 당신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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