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신념과 믿음의 분별이란 첫번째 글에 이어 두 번째 글로서 신념과 믿음이 무엇인지와 성경속의 인물 아브라함을 통해 그가 믿음의 조상임에도 오랜 기간 자신의 신념 속에 살아왔던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믿음과 신념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시간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브라함의 신념과 믿음 이해
“바른 신앙인이란 자신의 신념을 믿음으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은 제 인생을 살아오면서 맞이했던 화두 중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가 매일성경공부 교재를 만들고 있는 것도 이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먼저 신념과 믿음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전에, 신념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아의 의미부터 짚어야 합니다.
자아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나’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극을 받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때 자아는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신념이란, 자아가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내면에 형성된 확신 구조입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에 신념 역시 완전할 수 없습니다.
반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말씀하실 때, 그분의 자극(임재)을 통해 믿음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국가가 자극하면 국가에 대한 신념이 생기고, 가정이 자극하면 가정에 대한 신념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자극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공상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과 관계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람 간에도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적 의미의 믿음은 신뢰감과는 다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극(임재)과 말씀(로고스)을 통해 시작됩니다.
구약에서는 언약을 통해, 신약에서는 말씀을 통해 믿음이 생깁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임재 + 말씀의 선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신념과 믿음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도 임재했다고 착각할 수 있고, 임재가 있어도 긴가민가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충돌도 결국은 신념과 믿음, 혹은 신념과 신념의 충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혼란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전제 하에 발생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신념만 존재할 뿐, 믿음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계를 어떻게 살펴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선물과 인간의 신념이 어떻게 충돌하고 전환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도 처음부터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신념과 믿음 사이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전환해 갔기에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언약을 들음으로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을 따라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기근이 심해지자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는 “일단 생존하고 봐야 한다”는 신념이 작동한 것입니다. 그 신념의 바탕에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있었겠지요.
더 나아가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하고 애굽 왕에게 보내는 행동은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물건처럼 취급)과 생존 중심 신념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입니다. 이 행동은 나중에도 반복되는데, 그만큼 신념이 깊고 강력했다는 뜻입니다.
하갈을 취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도 사라의 나이에 대한 생물학적 신념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약속하셨지만, 그 신념이 믿음보다 더 강하게 작동했던 것이지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한 것도 믿음이라기보다는 윤리적 신념에서 비롯된 반응일 수 있습니다. “의인이 있는데 멸망시키면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은 하나님이 그것을 놓칠 수 있다는 전제가 없으면 그렇게 간절히 질문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다려주십니다. 그의 다양한 신념들이 믿음으로 바뀌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신 순간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을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이제야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준을 채웠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신념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도 이 사실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게 되더라도 우리는 믿음과 신념의 혼재 상태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신념에 따라 살다 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신념을 믿음으로 바꾸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날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선언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아닌 신념에 따라 살아간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신념과 믿음의 차이를 살펴보고,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우리 역시 믿음과 신념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나누었습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문장,
“바른 신앙인이란
자신의 신념을 믿음으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성경 속 인물들의 신념과 믿음의 흐름을 더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