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45: 시 긴 추억의 향기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45번째 선물, 시 ‘긴 추억의 향기’입니다. 이애경님은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심리가 많이 변화했음을 시사했습니다. 무엇이 그녀의 심리를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긴 추억의 향기

긴 긴 밤
그리움으로 지새우고

낡은 눈으로
시린 나뭇가지 봄 순
쓰다듬으며

어서 피어나길
고대한 날
수도 없이 보내고

마침내
꽃눈 터뜨리는가
싶더니

서둘러 떠나는
그대의 뒷모습

뚝 뚝 눈물로 떨어지고
흙으로 돌아가던 날

아련한 향기로
추억만 이미
긴 그림자 되어
내 발에 걸려 있네

 

꽃들이 피어남을 시샘하는 추위로 조금은 움츠려지는 날씨네요.

아들에게 물었지요.

“요즘 꽃들이 세상 구경하러 피어나 너를 만나고 싶어할 것 같은데.. 사진으로 담아보면 어떨까?”라고요.

그랬더니..

“내가 걸어가는 길엔 꽃들이 없어.”

“아~ 너가 걸어가는 길엔 꽃들이 없구나”라고 말해주었지요.

그러나 마음에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지요.

‘꽃들이 없는 걸까? 아님 꽃들이 안 보이는 걸까…?
내가 걸어가는 길엔 온통 꽃들이 얼굴 내밀고 있는데..’

속으로만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꽃들이 너에게로 와 손짓할거야’라고..

그리고 현재의 아들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대도.. 그대 사랑하는 이도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마음껏 소유하는 행복한 날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애경님의 시와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시의 내용과 글의 내용은 서로 다르더군요.

두 개의 다른 이야기들. 과연 이애경님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궁금해지더군요. 특히 글을 읽었을 땐 제 마음도 제법 조급해졌었는데요. 

먼저 시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긴 밤
그리움으로 지새우고

낡은 눈으로
시린 나뭇가지 봄 순
쓰다듬으며

어서 피어나길
고대한 날
수도 없이 보내고

과연 화자인 이애경님은 ‘무엇을 그리워 하며 긴 밤을 지새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에서 드러나는 것은 어느 봄날의 꽃입니다. 봄 순을 쓰담기도 하고 꽃망울이 피어나길 고대하며 많은 날들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봄날의 어느 꽃이란 것은 충분히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애경님은 정말 꽃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꽃에 대해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애경님이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야외에 나가면 이애경님은 꽃을 주인공으로 많은 사진들을 찍곤 했지요. 집에서도 그녀가 기르는 화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꽃 때문에 긴 밤을 지새웠다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더군요. 제 느낌엔 꽃 자체가 아니라 꽃과 연관된 그 무엇이 있으며 꽃과 그 무엇이 서로 동일화되거나 꽃이 그 무엇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 대상은 이애경님의 어머니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사실 장모님도 꽃을 매우 좋아하셨지요. 장모님 집에 들어가면 꽃화분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꽃을 좋아하니 딸도 꽃을 좋아할 수 있었을 것이며, 꽃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장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이애경님은 꽃을 보면 엄마가 생각났을 것이고 꽃이 만발한 땐 엄마가 마치 살아서 자신과 함께 하는 느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꽃을 엄마로 동일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여러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자아상태에서는 엄마와 꽃을 동일화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자아상태로 변하면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꽃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꽃눈 터뜨리는가
싶더니

서둘러 떠나는
그대의 뒷모습

뚝 뚝 눈물로 떨어지고
흙으로 돌아가던 날

드디어 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이 영원히 피는 것은 아니지요. 꽃이 떨어져야 씨앗이나 열매를 맺으니까요.

그런데 그 꽃이 엄마와 연결된 자아상태일 때는 꽃이 떨어지는 것을 참 보기 힘들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꽃이 떨어지는 장면을 마치 눈물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표현했을까요. 

아련한 향기로
추억만 이미
긴 그림자 되어
내 발에 걸려 있네

꽃은 떨어져 시들어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꽃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아련한 향기가 추억이 되어 긴 그림자 되어 자신의 발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기억 속엔 후각에 의한 기억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냄새를 맡으니까 어린 시절 고향이 떠 오릅니다. 뇌 속에 그런 냄새가 기억되었다는 뜻이 되지요. 그런데 그저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 된 것입니다.

추억이란 감정이 섞이어 기억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뇌 속에 해마가 있습니다.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면 공부한 내용을 해마가 장기기억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공부한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공부한 것들이 금방 까먹는 것이 부지기수이니 단기기억이 쉽게 장기기억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해마는 감정이 포함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기쁘거나 슬픈 사연의 이야기들. 즉 해마가 이런 내용들을 아주 잘 기억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엄마와 꽃으로 이루어진 이애경님의 추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아주 오랜 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이애경님은 이것을 ‘추억만 이미 긴 그림자 되어 내 발에 걸려 있네’라고 표현했네요. 이 문장을 보았을 때 제 마음이 심쿵했었지요.

그런데 ‘이 추억은 이애경님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았을까, 아니면 뭔가 아련하지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비슷한 향기를 맡거나 뇌를 통해 그 향기가 나는 느낌이 들 때, 이애경님은 그 향기가 자극이 되어 엄마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렇게 엄마가 떠오를 때 이애경님의 마음은 아팠을까요, 아니면 아련하면서도 행복한 느낌이 들었을까요.

아마도 이애경님은 아련하면서도 행복한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마치 제가 이렇게 이애경님의 글을 읽고 글을 쓰면 쓸수록 이애경님에 대한 추억은 고통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행복으로 느껴지듯이 그녀도 엄마에 대해 그랬을 것으로 보이는군요.

우리가 어렸을 때 콩보리밥을 먹었던 것도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마치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데, 평상시에도 꽃 향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엄마를 향긋한 향기로 내면화시켰기에 그 추억은 점점 더 좋은 추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지요. 뇌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더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동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 시의 처음으로 돌아가 처음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서로 비교해 보면, 이애경님의 심리상태의 변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꽃망울을 몸부림치듯 그리워했는데, 마지막 장면은 향기로 내면화되어 좋은 추억이 되었다면 이는 심리 측면에서 매우 큰 반전이자, 커다란 변화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움은 일종의 상실의 고통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좋은 추억은 기쁨이란 감정을 불러일으키지요.

이젠 꽃이 굳이 피어나길 밤을 새며 그리워하고 꽃이 떨어질 땐 안타까워 눈물 흘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이제 엄마를 담담하게 마음 속에 담아둘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녀의 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애경님과 아들과의 일화를 소개했더군요. 특히 아들이 “내가 걸어가는 길엔 꽃들이 없어.“라고 했을 때 제 마음도 많이 아파왔습니다. 특히 아들이 세네살쯤 되었을 어느 날, 그 어린 아이가 세상 공허한 모습으로 멍하게 있던 장면이 떠올라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들과의 일화는 아들이 대학생이었을 때로 보입니다. 이때 아들은 나름 자기분야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때였기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의 여유가 많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아들이 대학생일 때 당시도 청년들의 앞날은 그야말로 먹구름으로 비유되었던 때였지요.

아들이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녔는데 서울의 봄 거리는 꽃으로 잘 꾸며져 있었고 특히 대학 캠퍼스에 꽃이 없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기에 아들이 꽃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은 틀림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인 이애경님은 앞의 시에서 보듯이 꽃 향기가 추억으로 내면화된 사람입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꽃 향기를 품은 꽃을 누구보다 좋아할 수 있는 상태였지요. 

아들과의 대화를 살펴보면, 그 당시 아들은 마음의 여유가 많이 없는 상태로서 안타까움이 있지만, 이애경님은 위중한 질병으로 오랜 동안 고생하셨다가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아픔이 이제 많이 씻겨나갔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와 같이 꽃향기로 행복함을 느꼈기에 아들도 꽃향기를 통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몇 년전 아들과 엄마가 둘이서 외국에 나가 에펠탑을 찍고 각종 문화재들을 찍고, 큰 호수도 꽃들도 찍고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이애경님이 아들에 대해 저에게 이야기하더군요. 둘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것과 아들이 마음이 참 건강해진 것 같다고 말입니다.

엄마가 아들을 오랜 동안 지속적으로 공감해주고 많이 ‘토닥토닥’해준 덕분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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