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43번째 선물, ‘봄날은 간다’입니다. 이애경님은 봄날 어느 날 자연을 직접 마주하면서 그때 느낀 것들을 바로 시와 글을 썼습니다. 이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지 감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애경의 봄날은 간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와 처음 봄을 맞이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가 봄이 되어 꽃이 하나둘씩 피어나니 마침내 나무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경이로움이 더해져 산책길을 더 나서게 되는 요즘인 것 같네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신비는 늘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걷다 보니 길과 길을 이어주는 돌다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들도 이 돌다리처럼 서로 든든하게 이어주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추운 겨울 지나 따뜻한 봄이 손 내밀듯이 어둠 속 긴 터널 끝에 걸린 햇살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시냇가를 따라가다 보니 펼쳐지는 정겨운 풍경이 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흐드러진 버드나무 잎들이 시냇가에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 숙이고 있는 것 같아 봄의 생기가 더 느껴지는 순간들입니다.
굽어진 길은 조금 더 돌아갈 뿐입니다. 그 길에도 여전히 햇살 가득 머금은 새싹들이 피어나고 있죠.
봄기운의 따뜻함이 어제의 피로를 눈 녹듯 녹여주는 듯합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팝꽃들이 눈길을 끌어 잠시 저의 발을 멈추게 하네요.
어떻게 이 작은 꽃들이 그런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피어났을까요?
피어내느라 고생했다고 쓰담쓰담 해 봅니다.
조팝꽃을 지나 개나리 꽃들이 줄을 맞추어 앉아 있네요.
마치 노란 모자를 쓴 유치원 아이들이 봄 소풍을 나와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모습들 같습니다.
개나리 꽃의 밝고 생동감 넘치는 기운들이 아이들에게까지 풍성하게 흘러가길 바래봅니다.
시원한 물소리에 눈을 돌려보니 오리 부부가 먹거리를 찾아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네요.
그들 부부는 과연 오늘 먹거리를 다 찾을 수 있을까요?
어느새 호숫가 앞 벤치에 앉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들려오는 새들의 합창을 들으니 그들도 봄을 반기는 것 같네요.
호숫가 한편에 있는 작은 정자에 발이 이끌려 저도 모르게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봄바람이 조화를 이루어 편히 쉬어가게 하는군요.
봄기운에 젖어들어 지금의 느낌들을 간직하고자 챙겨온 노트를 꺼내 들어 하나둘씩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봅니다.
봄을 마주하며
겨우내 모진 눈보라 이겨내고
계절의 질서 따라
꽃이 피니
비로소 나무의 이름 알겠네찬서리 속 나뭇가지 사이로
온 마을 태산까지 들리는
꽃들의 사연우주 어느 별
이처럼 아름다운 꽃들이
속삭이는
행성이 또 있을까봄마다 창조되는 순례길
절로 숙연해진다
자연!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을 옆에 두고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잊고 지낼 때도 많았던 것 같네요.
자연은 과연 무엇일까요?
누구는 자연을 ‘어머니’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슴으로 품어주듯이 자신을 품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는 자연을 좋은 ‘친구’라고 했습니다.
말없이 혼자 걷는 듯하지만 누군가와 끝없이 대화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자연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있어 ‘자연이란 끊임없이 긍정적인 인정자극을 주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인정자극을 받지 못하면 살기 어렵지요.
긍정적인 인정자극을 받지 못하면 부정적인 인정자극이라도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자연은 때론 어머니처럼, 때론 친구처럼 정말 편안하게 나와 함께하는 느낌입니다.
긍정적인 인정자극을 소리 없이 제 마음에 채워주는 화수분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그러니 세상에서 고난당했던 사람들이 자연에 들어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함께 있으면 고독할 수는 있어도 외롭지는 않아 보입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어 고통스러움이라면 고독이란 혼자 있어 즐거움이라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습니다.
연녹색의 세상에서 이제 서서히 짙은 녹색의 세상으로 변화하겠지요.
그런 곳에서 녹음과 산들, 바람을 시시때때로 즐기게 되겠지요.
바로 자연이 주는 인정자극을 제 마음에 한없이 채우면서 말입니다.
이애경님의 글과 글 속에 있는 시를 읽어보았습니다.
재 기억으론 3년 전 봄날에 이애경님이 당시 집근처에 있는 천안 태조산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느낀 것들을 태조산청소년수련관 옆에 있는 정자에서 글과 시를 즉석에서 직접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글 내용이 좋아 녹음해두었지요.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이애경님은 일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성경묵상하기, 책읽기, 쿠키와 케이크 만들기, 그리고 가까운 자연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였고, 그 중에 몸을 많이 움직인 것은 자연길 걷기였음이 생각나더군요. 한번 걷기시작하면 보통 만보 정도 걷곤 했었습니다. 보통 실내에만 있다가 밖에 나가 자연을 대하므로 몸엔 피가 돌고 마음엔 활력이 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에 ‘긍정적인 인정자극‘이란 말이 나옵니다. 자연이 이애경님에게 이러한 자극을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인정자극을 받을 때면 우리의 마음엔 심리적 에너지가 공급됩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에 내적 힘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애경님의 위의 글을 읽을 때, 이애경님이 심리적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길을 걸으며 자연을 접하는 것이지요. 때론 자연에 직접 다가가 꽃을 보고 만져보고 향기를 맡으면서 긍정적인 인정자극을 은연중에 받으면서 심리적 에너지가 공급됨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그렇게 느낀 것을 글과 시를 통해 표현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작업을 한 것이지요.
첫째와 둘째 중 ‘어느 것이 심리적 에너지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까?’라고 한다면 저는 후자가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리적 에너지를 외부세계에 있는 것을 직접 오감으로 느낌으로 가져오는 방식이 있다면, 외부세계에 있는 것을 자신의 내면으로 가져와 느끼는 방식이 있는데 전자의 것은 빠르게 가져올 수 있지만 빠르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간에 보관하는 단계가 없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외부세계에서 다양한 자극들을 통해 심리적 에너지를 얻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외부세계에서 덜 다양한 자극을 받지만, 그것을 자신의 내부세계인 내면으로 가져와 좀 더 깊게 음미함으로서 에너지를 얻기도 합니다. 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보통 외향형일 가능성이 높고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내향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내향형이든 외향형이든 외부세계에 접한 것을 내면으로 가져와서 명상이나 글로 쓰면서 깊이 느끼며 그것을 잘 정리하는 사람들은 에너지의 생산량과 보관량이 가장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그냥 느끼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내면이란 보관 장소에서 충분히 정리 정돈하여 보관할 수 있기에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글로 쓴다는 것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볼 수 있고 또한 이를 더욱 확대 재생산하기 용이하기에 가장 유익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향형으로서 무엇이든 내면으로 가져와 다시 생각하고 느끼는데 능한 이애경님이 ‘봄날은 간다’란 글과 시를 쓴 진짜 목적은 ‘자신은 어떻게 심리적 에너지를 얻는가에 대한 진짜 비결’을 다른 분들에게 알려줌으로 보다 더 효과적으로 마음의 에너지를 잘 얻고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래의 녹음은 위의 글을 직접 이애경님이 나레이션한 것입니다. 귀로 다시 한번 들어보신다면 봄의 소리와 함께 마음이 힐링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