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38번째 선물: 경청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38번째 선물, 글 ‘경청’입니다. 경청이란 타인의 말을 주의깊게 잘 듣는 것을 말합니다. 과연 이애경님은 누구의 말을 주의깊게 잘 들어야 함을 말하는지, 이를 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애경의 보리

이애경의 경청


뇌는 싫더라도 몸의 소리를 듣는 청중이다.

 -Antonio Damasio-

 

우리의 몸과 마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음을 신경생리학적인 증거를 통해 정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느낌은 몸 상태에 대한 마음의 해석이며, 이성이 지극히 합리적이려면 몸에서 나오는 감정의 신호에 기반해야 한다고 하지요.

삶의 치열한 현장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몸의 소리를 듣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여러가지 스트레스와 질병..

어쩌면 마음이 없는 몸으로 몸과 분리되어 몸의 소리를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내 몸이라는 컨테이너(container)안에서 울리는 에코(echo)를 좀 더 진실되게 들음으로 ‘경청’이라는 잃어버린 예술(Art)이 나와 그대를 통해 다시 꽃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이애경님이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명언을 인용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글 내용을 여러 차례 본 후 제목을 다시 확인하니 ‘경청’이네요. 이 글의 핵심을 시적으로 표현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애경님의 글을 좀더 깊게 살펴보면,

먼저, ‘몸과 마음’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몸이란 단어는 생물학적 개념이 포함된 것이고 마음이란 단어는 심리학적 개념이 포함된 단어이지요. 이 두 단어와 관련된 학문 중에는 ‘마음의 생물학’이 있습니다. 의사이기도 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따른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몸과 관련된 학문인 생물학을 근간으로 해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들이지요. 즉 인간의 심리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학문인데 사실상 정신과 의사는 이것을 베이스로 해서 상담하고 처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담자의 마음이 우울할 때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것은 뇌의 어느 부분을 조절하면 우울증이 완화된다는 생물학적 원리에 따른 것이지요. 그래서 대개 정신과 의사는 내담자와 상담할 때 어떤 약물로 치료할 것인가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몸이 느끼는 것을 우리는 ‘감각을 느낀다’라고 하며, 마음이 느낀다고 할 때 보통 ‘감정을 느낀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이 뗄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은 ‘감각과 감정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또한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감각을 느낀다면 감정 역시 외부의 자극이 있을 때 뇌에서 도파민, 코르티솔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됨으로 거의 동시적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이 둘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지요.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뇌의 영역과 자극을 통해 감정을 느끼는 뇌의 영역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이 서로 작동이 잘 되는 것에 대해 이애경님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느낌은 몸 상태에 대한 마음의 해석이며,

이성이 지극히 합리적이려면 몸에서 나오는 감정의 신호에 기반해야 한다.

위의 표현은 사실상 몸의 감각과 마음의 감정이 서로 작동이 바르게 잘 될 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무언가가 몸에 자극할 때, 감각을 느끼며, 이때 감정 역시 느끼는 것이지요.

그런데 감정(emotion)과 유사한 단어가 느낌(feeling)이 있습니다.

이때 감정은 어떤 자극이 있을 때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됨으로 느끼는 생물학적 작용의 결과치라면, 느낌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 감정과 관련된 정신적 경험으로서 이때 ‘심리적 해석’을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감정은 순수하게 생물학적 작용에 의해 발생한다면  느낌은 감정을 바탕으로 심리적 해석을 하는 작업을 하므로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그 역할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감정은 주로 편도체 등 뇌의 변연계에서 느낀다면 느낌은 전두엽 등 생각을 할 수 있는 뇌영역이 주로 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A란 사람이 누군가와 이별을 하게 되었을 때 몸의 호르몬 작용으로 감각은 뭔가 ‘무기력’을 느낀다면, 감정은 코르티솔 등의 분비로 ‘슬픔’을 느끼며 슬픔이 가라앉은 후에도 A는 뭔가 ‘버려진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세상이 나를 버렸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이때 마음의 소리란 이전에 다른 사람과 이별할 때 내렸던 심리적 해석이 이번에도 다시 ‘세상이 나를 버렸어’란 심리적 해석을 내릴 뿐만 아니라 이전의 해석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하니 감각과 감정,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하는 느낌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호 관계가 바르게 작동된다면 그만큼 합리적인 방식, 즉 이성적으로 뇌는 작동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애경님이 문장 끝에 말한 ‘내 몸이라는 컨테이너(container)안에서 울리는 에코(echo)를 좀 더 진실되게 들음’이란 ‘나의 몸은 컨테이너이고 컨테이너에서 울리는 에코 즉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감각과 감정을 센시티브하게 느끼는 것과 더 나아가 느낌의 역할인 ‘심리적 해석’의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바로 ‘경청’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애경님이 ‘경청’이란 이 글을 쓴 진짜 이유는 우리들이 때론 경청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경청하지 못함으로 생기는 좋지 않은 여러 케이스들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실제  많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러한 케이스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몸의 감각은 느끼지만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실제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몸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CT, MRI 등을 찍었지만 병원에서는 ‘이상 없음’이란 소견을 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서 결국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대개 자신의 감정을 바르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정서적 억제가 심한 가정이나 환경에서 자라왔으며 또한 현재에도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은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려 하기에 감정으로 느껴야 할 부분을 감정으로 느끼지 못하고 모두 감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이 경우 막혀 있는 감정을 바르게 느끼게 하는 심리상담을 주로 하게 됩니다.

두 번째, 감각보다 감정을 과잉적으로 느끼는 경우입니다.

과거에 죽음을 경험할 정도로 심하게 아팠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위험이나 질병에 대해 취약성을 가지는 분들은 몸의 감각이 조금만 이상하더라도 감정을 매우 크게 느낍니다. 주로 ‘두려움’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느끼는 것이지요.

마치 과거의 감정으로 인해 느꼈던 부분을 현재 다시 가져와 느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느낄 수 있는 것과 이전의 것을 불러와서 느끼는 것을 합산함으로 그 강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분들은 과거에 느꼈던 감정으로 인해 생긴 느낌, 즉 그 당시의 정신적 경험으로 인해 진행된 심리적 해석 부분이 현재 자신의 마음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이 분들 역시 심리상담을 받아 이전에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잘못된 해석 부분들을 바르게 고쳐야 될 것입니다.

세 번째, 자신의 감각에 둔감한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의 감각과 관련된 울림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되는데, 조금만 귀 기울이면 자신의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소리를 듣는 것이 둔감하므로 결국 병이 매우 깊게 진행되고 나서야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MBTI에서 S(감각), I(직관)이 있습니다. 성향에 대한 내용이지요. 사람들 중엔 감각과 직관이 모두 크게 발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직관은 크게 발달하였는데 상대적으로 감각이 적게 발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칫하면 앞에서 말한 ‘병을 키우는 사람’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직관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이론 등을 만드는 것은 매우 능한데 정작 자신의 몸이 말하는 소리엔 둔감해 생기는 현상이지요. 이러한 사람들은 정기건강검진을 무시하거나 안전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향과 행동이 이와 같다면 ‘나는 반드시 정기건감검진을 받아야 한다’ ‘나는 위험을 즐기려는 마음을 줄여야 한다’란 식으로 자신을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타인의 감각과 자신의 감정을 연결시키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타인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할 때 그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뉴스를 듣거나 가까운 사람이 이런 상황에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매우 힘들어 하지요.

이 사람들은 본인이 크게 아프거나 다친 경험이 있거나,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었고 그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서, 그 당시의 정신적 경험이 현재와 연결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자전거 사고를 당해 다친 적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과 딸의 걱정이 보통 큰 것이 아니더군요. 사고 당한 당사자인 저는 여기저기 깨지고 다쳐 통증을 느꼈지만 감정은 곧 가라앉았고 ‘자전거 타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좀 더 조심히 타야겠다’란 마음으로 금방 돌아왔지만 그 소식을 들은 부모님과 딸은 당장 ‘자전거 타지마’ 하더군요.

특히 딸은 ‘아빠가 자전거 타다가 식물인간이 되거나 죽으면 어떡하냐’고 말했는데 이는 딸이 엄마인 이애경님이 사고로 사망한 과거의 정신적 경험이 이러한 심리를 가지게 함으로 정도 이상의 고통을 느낀 것이지요. 아마 부모님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더 크게 느끼지 않았나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애경님이 일반적인 심리학 뿐만 아니라 신경과학과 연결된 ‘마음의 생물학’에 관심을 크게 가지게 된 것도 이애경님 자신이 위의 네 가지 중 몇 가지에 해당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이애경님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한 적도 있었고 새벽에 길에서 쓰러져 죽음을 느낀 경험도 있었으며, 엄마가 오랜 시간 투병하는 것을 목격하였기에 그 당시 이애경님 자신의 감각과 감정, 느낌이 이성적으로 작동하지 못했음을 느꼈을 것이며, 이에 대해 신경과학 쪽에서 좀 더 정확한 답을 찾았을 것입니다. 실제 현대 심리학에서는 전통적인 심리학의 개념은 물론 마음의 심리학을 더욱 통합하고 있으며, 심리상담을 할 때 이러한 이론들을 모두 반영하여 내담자를 만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들인 위의 네 가지 케이스는 그 수준이 크고 작고 간에 사람들 모두에게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감각과 감정, 느낌’을 정확하게 느끼고 정리하는 이애경님이 말한 ‘경청’이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애경의 38번째 선물: 경청”에 대한 1개의 생각

  1. 핑백: 이애경의 선물41: 시 지난 후에야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