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스무번째 선물, 시 ‘순번 없는 질서’입니다. 우리가 질서를 위해서는 순번이 필요할 수 있는데, 이애경님은 ‘순번 없는 질서’라고 이름지었네요. 그녀가 말하는 순번 없는 질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순번 없는 질서
작렬하는 여름 아침
태양 아래
깊은 신음 몰아쉬며
떠날 채비 재촉하네엊그제까지만 해도
소곤소곤 속삭이듯
대화 나누던 날들
하염없이
뒤로 하고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일말의 미동 없이
태산 같은 고통
사라져가는 작은 몸으로
고스란히 견뎌내시더니깊은 침잠 속에
고요히 떠나신다.
양 팔에 천사 대동하고먼저 떠난 아내 만나러
이른 아침
먼 길 떠나신다
핑크빛 하늘로
노부모와
어린 자녀 둘 뒤로 하고
그렇게 하늘은
순번 없는
무질서의 질서를 따라
또 한 명을 끌어 올린다.
뜨거운 정열의 계절 여름을 보내며, 3년의 간격을 두고 두 아들을 남기며 소천한 부부의 안타까움을 시로 적어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부 모두 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던 분들이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을까?…’
상주로 자리를 지키며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두 아들을 보며 눈을 마주치기조차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벌써 1주년이 되었네요. 한없이 서러울 아이들이 친지들과 이웃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사춘기의 시기를 무사히 잘 보내고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여 원치 않은 사건으로 힘겨워 할 이들과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이애경님의 이 시를 읽으니,
이 시를 쓴 이애경님 자신도 이젠 하늘로 올리어 갔기에 ‘이젠 내가 당신의 시를 읽으면서 아직도 당신을 애도하고 있구나’란 생각과 느낌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이애경님과 제가 둘이 죽음의 이야기를 나눌 때, 제가 남자이고 나이가 더 많은 지라 언제든지 제가 먼저 죽는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이 시의 제목 ‘순번 없는 순서’가 주는 충격이 생각보다 적지 않다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주절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이 시를 진작 썼던 이애경님은 아마도 ‘순번 없는 질서가 우리에게도 있을 지도 몰라’란 생각을 했을 것이고, 실제로 확률과 통계를 무시한 채 너무 빠르게 우리 가정에 도달했으니 ‘순번 없는 질서’란 이 문구가 더욱 제 마음을 강하게 때리는 것 같습니다.
이애경님이 이 시를 언제 썼었는지, 이 시의 두 부부가 누군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기에 어쩌면 그녀가 저를 만나기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한 부부의 안타까움을 시로 써 두었던 것을, 이제 나이 들어 글을 첨가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젊었을 때도 제법 시를 써 놨다는 것을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몇 편 읽어보았을 때 그 당시의 시 역시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시는 ‘애도 시’가 되어도 이애경님이 나이들어 주로 써온 ‘심리 시’는 아니기에 더 그런 짐작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깊은 상실의 아픔을 느낄 때마다 이러한 애도 시를 남기는 그녀의 마음을 느껴보면, 한편으론 슬픔에 너무 친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란 생각이 떠올랐고, 한편으론 이미 어렸을 때부터 슬픔이란 감정을 너무나 많이 배웠던 그녀이기에, 슬픔의 아픔을 그저 내면에 쌓아두기 보다는 시를 통해 정화하는 과정을 거침으로 ‘위로 받을 수 있다’란 것을 체득한 그녀의 심리적 생존 방식이지 않았나란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녀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가 하나님을 영접하였으며 유독 팔복의 말씀 중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를 마음에 새겼으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애통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신다’란 의미를 담고 있기에 애도의 시를 통해 그 분의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도 매우 컸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한편으론 삼 년만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아내의 뒷길을 따라가야 했던 한 젊은 남성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제가 바다에 실종된 그녀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그저 간절히 기도만을 해야 했을 때, 제 마음에 점차 물들었던 ‘문 하나 더 열면 아내의 곁에 갈 수 있겠다’가 그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기억도 드는군요.
다행히 심리공부도 했기에 그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에 정신을 차렸었고, 그때 다행히 아내의 시신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삼 년만에 죽음을 맞이한 그 분은 제가 겪었던 마음의 문제를 혹시나 동일하게 가지지 않았었나 짐작하게 되는군요.
이제 이렇게 그녀의 글을 통해 저 역시 글을 쓰면서, 이젠 ‘아내를 그리워 하지 말고 추억하자’란 생각을 더욱 더 챙겨보게 됩니다.
그게 이애경님의 애도시가 저에게 가리키는 인생의 방향성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