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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가 무엇이길래_창세기 2장

지난 글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과정에서 감정 변화와 자기합리화하는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는 아담과 하와가 먹었던 선악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창세기 2장 17절 성경구절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개정개정)

You may eat fruit from any tree in the garden, except the one that has the power to let you know the difference between right and wrong.
If you eat any fruit from that tree, you will die before the day is over! (CEV)

 

영어성경의 ‘the one that has the power to let you know the difference between right and wrong’을 그대로 직역하면,
‘네가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그 차이를 알게 하는 힘을 가진 나무‘가 될 것입니다.

또한 NIV와 NLT에서는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_선과 악의 지식을 가진 나무.

여기에서 선악이란 뜻은 ‘선과 악, 옳고 그름’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Jan Brueghel the Elder & Peter Paul Rubens The Garden of Eden with the Fall of Man

Jan Brueghel the Elder & Peter Paul Rubens The Garden of Eden with the Fall of Man

2. 선악과의 의미

 

그런데 여러 의문들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의 차이를 안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가?

먹지도 못하게 하면서 왜 만들어 놓았을까,
혹시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나 안 하나 테스트하기 위해 만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어려운 내용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 열매를 먹고 난 후, 결과론적으로 보면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뱀의 꼬임에 빠져 그들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눈이 밝아져서 자신들이 벗은 줄로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가리는 행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찾았을 때 그들은 숨는 행위를 취했습니다.

저들은 ‘벗었으므로 두려워 숨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대목이 매우 이상합니다.

선악과를 먹었으면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두려움에 빠져 몸을 가리고 숨는 것에 급급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정상적이라면 선악과를 먹은 후의 그들의 반응이 이랬어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아차, 이 열매를 먹지 말라(옳음 혹은 선)고 했는데, 먹었네(그름 혹은 악).
그 차이만큼 내가 잘못한 것이야.

그러니 잘못했다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어야겠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선과 악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으므로 그 차이만큼 바로 ‘저희가 잘못했어요’라고 먼저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옳음과 그름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에 떨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만을 가진 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담은 그 잘못을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전가하는데 급급했지요.

 

선악과

 

3. 심리학의 자아상태 이론과 ‘선과 악’의 판단

 

이와 관련 심리학자 에릭 번의 인간의 자아상태이론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릭 번은 인간의 자아를 크게 어버이자아, 어른자아, 어린이자아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자아는 크게 두 종류의 오염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버이자아의 오염, 어린이자아의 오염입니다.

여기서 오염이란 ‘성숙한 자로서 지금-여기에 맞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어버이자아 타인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나란 존재, 여기에서 오염이란 타인에게 듣고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판단하므로 오류를 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어린이자아어린 시절 어린 나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나란 존재, 여기서 오염이란 지금-여기의 성숙한 나가 아닌 어린 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 사리에 맞지 않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릭 번의 이론에 따라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이 무언가를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어른자아상태에서 해야 하며
이때 어른자아상태란 결국 지금-여기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에릭 번의 이론을 아담과 하와에게 접목하면, 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완전히 소화하지 않은 상태인 어버이자아상태 및 어린이자아상태에서 의사결정과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선악과가 무엇인지, 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지내왔습니다. 그저 그 말씀만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럼으로 뱀이 다른 논리를 펼치자 금방 뱀에게 넘어갔습니다.

선악과가 무엇인지와 먹지 말라고 한 이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달았다면,
그들은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어버이자아의 오염과 관련됩니다.

또한 선악과를 먹은 이후론 이젠 어린아이와 같이 미성숙하고 사리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정확히 뭐가 잘못인지 모르겠어.
다만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무서워 죽겠어.
그러니 일단 숨고 봐야해.
만약 걸리더라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잡아 떼야지’
즉, 어린이자아의 오염과 관련됩니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은 선과 악의 차이를 앎, 옳고 그름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것과는 전혀 다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안 된다고 한 이유는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을 아셨기에 먹지 못하도록 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인간이란 존재의 한계와 의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아는 것과 아담과 하와 즉 인간이 이를 아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무엇이 옳다, 그르다 등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으려면 그 판단을 위해 무엇이 우선적으로 필요한가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와 지식, 모든 상황에 대한 적용 가능성 등 모든 것을 정확히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특히 이를 모두 통합하여 볼 수 있는 능력, 숨겨져 있어 눈에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들추어낼 수 있는 능력 등이 필요합니다.

한치의 실수나 잘못이 없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려면 단 한가지, 전지전능(全知全能)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결국 어딘가에 허점이 노출될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인간은 전지(全知)하라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적인 정보와 지식이나 잘못된 태도에 의해 얼마든지 오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간은 전능(全能)하지 못합니다. 문제 해결력이 언제나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악한 것이 선한 것으로 둔갑해서 세상을 악하게 할 때 그 사실을 알아도,
어쩔 도리없이 쳐다 보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일 수 있습니다.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못한 것이 인간의 속성이자 한계이며 설령 선악과를 먹더라도 인간은 전지전능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뱀은 왜 선악과를 들먹였을까요?

이와 관련, 뱀이 하와에게 한 말을 기억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뱀의 이 말은 제 보기에 나름 맞는 말로 보이지만, 교묘하게도 중요한 사실을 빼 놓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뱀의 말을 잘못 해석하면 인간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전지전능해진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느낀 선과 악의 차이, 그로 인해 그들은 죄를 범함은 물론 이전에 없었던 심리적 문제들에 빠져 그 문제들에서 헤쳐 나오기 어렵게 된 것이지요.
한마디로 뱀의 이야기는 인간의 신앙과 심리를 모두 오염에 빠뜨리도록 하는 간교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선악과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려면 두 가지 단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정확히 잘 알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인간은 언제든지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잘 따르면,
비록 인간 자체는 전지전능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모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기에는 함량미달이라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는 아직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선악과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그를 따를 수 있는 자만이 먹을 때 효과가 있는 열매,

하나님의 나라에 거할 사람들에게 필요한 열매임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6. 정리 및 소감

현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선악과가 존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것을 가지면 대단히 좋아 보이지만 실제론 오히려 미궁에 빠져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

그것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도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과 더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선악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주변에 있거나 내면에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가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경계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것을 하지 못해 죽임을 당한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 이들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가 아님을 마음 속 깊이 느껴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선악과가 무엇이길래_창세기 2장”의 1개의 댓글

  1. 핑백: 아담과 하와, 심리적 문제에 빠지다_창세기 3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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