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시간

Menu

나의 죽음에 대한 심리, 어린이자아란 녀석이…

최근 아내를 잃고 난 이후 나의 심리 변화, 특히 죽음에 대한 심리를 적어보았습니다.

1. 최성수님의 ‘남남’이란 노래 속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가

오늘밤 내곁에서 떠나갔네…

최근 가수 최성수님의 ‘남남’이란 노래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흘러 다니곤 했다.

 

 

 

2주전 실종되었던 아내의 시신을 이양받고 장례를 치루었기에,

아내가 내 곁을 떠난 것이 이제야 실감나는지 이 노래가 은연 중에 내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다른 노래도 마찬가지지만,
이 노래가 내 마음을 흐른다는 것은
젊은 날 언젠가 이 노래의 가사를 수 없이 들었기 때문이고,
이 노래가 나의 뇌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에서는 이를 내재화 혹은 내면화라는 용어를 쓰기는 한다.

 

혹시나 싶어 이 노래 가사를 찾아보니 다음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어깨를 들썩이며 돌아섰네

이 가사는 나의 뇌에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나 보다. 한번도 이 가사가 흐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이다’란 생각이 스쳐갔다.

이 가사가 내 마음에 흘렀다면 나는 ‘미안함’에 더욱 떨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그녀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부터 올라오는데 이 노래 가사가 나를 자극했다면 아마도 미치지 않았을까…

 

이 노래에서 다음으로 떠오른 가사는 다음과 같았다.

사랑해요 그것 뿐이었어요.

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했어요

이 가사가 마음에 흐를 땐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가 떠오른다. 또한 따스한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러면 나의 미안함이 그녀에 대한 애틋함으로 변하는 것 같다.

 

2. 죽음에 대한 심리

아내를 잃은 이후,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줄곧 체크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표현했을 때 ‘에너지가 많은 사람’, 혹은 ‘넘치는 에너지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이전에는 내면에서 올라오는 심리적 에너지를 오랫동안 지탱해왔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글 한편 쓰는 것도 에너지 없으면 쓰지 못한다. 아무리 글의 키워드와 줄거리를 머리 속에 세워 놨어도 이를 글로 끄집어 내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글을 거의 매일 쓰다시피 했었으니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어떠한가.

생각보다 마음은 편안하다.

하지만 에너지는 쉽게 고갈되는 듯하다.

아내를 잃은 직후 아내와 관련된 글을 썼을 땐 짜내듯 글을 썼었는데, 요즈음은 그 마저도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땐 ‘써야만 한다’란 사명감이 모든 것을 짜내도록 한 것 같았다.

최근 글을 쓰려다가도 ‘내가 왜 글을 쓰고 있지?’란 생각에 엎어버리곤 했었다.
순간 기력이 딸리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땐 어딘가에 한 없이 누워있곤 했었다.

 

 

 

현재까지 나의 심리변화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아내를 잃은 후 90일 즈음인 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내가 실종된 후 혹시 사망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당시에 처음 등장한 단어는 ‘2024년’이었다.
이 기간 내에 나도 죽을 것 같다, 죽고 싶다, 죽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더욱 이러한 마음이 들게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약 3개월째 약 2주동안에는 죽음이란 것이 나에게 매우 친근하고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옆동네 마실 가듯 갈 수 있는 곳 같은…

 

3. 죽음과 어린이자아상태

그 당시,

‘어찌 됐든 살아가라’

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때 퍼뜩 정신을 차린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심리상태를 파악했을 때, 나의 자아는 어린이자아상태.

‘어린 시절 나의 목소리에 의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나란 존재’

평상시 나의 어린이자아 모습은 ‘자유로운 어린이’ 모습이었다.
호기심 많고 에너지 넘치고 어딜 내놔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섞이는 모습.

하지만 또 다른 어린이자아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채우지 못해 공허감에 휩싸인 그런 어린아이 모습이었다.

심리공부를 하면서 ‘나란 사람’의 심리적 뿌리를 찾아가며 심리분석했을 때,

그 어린아이가 등장할 때마다,

나는 나자신을 스스로 꺾어 버리고
스스로 어딘가에 숨어 버리거나,
하던 것을 놔버리는 것

을 찾아냈었다.

나에게 치명적이었던 그것을 찾아내어 충분히 해소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녀석이 이번 사건으로 내 마음에 다시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이젠 죽음이 나와 매우 친근하다고
살살 나를 달래고 있음

공허란 빈 공간을 죽음으로 메우려는 심리가 작동된 것이다.

이를 깨닫고 나니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웬만하면 타인의 부정적 자극에 휘둘림을 당하지 않았는데

아내의 죽음, 정확히 말하면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촉발되자,
그 어린 아이가 나를 그런 식으로 끌고 갔던 것
이다.

아내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은 다행히 이러한 심리를 막 벗어난 때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더욱 촉발되었을지도…

나로선 참 감사한 일이다. 

 

4. 에릭 번의 세 자아상태

심리학자 에릭 번은 인간의 자아상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어버이자아상태.

타인의 목소리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려는 나란 사람.

대개 이때는 무언가를 잘하려고 애쓰는 때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잘하려는 나’란 사람의 모습이니 죽음이 무엇인지 연구할지언정 죽으려 들지는 않는 자아상태다.

 

어른자아상태.

지금 여기 성숙한 나의 목소리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려는 나란 사람.

이 자아상태에 있으면 나의 현실적 문제를 가장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당연히 죽음이란 것이 속삭일 틈이 없다.

 

나머지가 앞에서 언급한 어린이자아상태.

이 어린이자아는 참으로 변수가 많다.

어린 시절 어린아이의 다양한 외부의 자극들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즉 마술적인 방식으로 기억되기도 하며,

때론 치명적인 상처들로 내면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도저히 ‘합리적’과는 거리가 먼 방식을 선택해서 행동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심리상담은 이 영역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5. 정리와 소감

일반적으로 애도 기간은 두 달 정도로 본다.

이 기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슬픔에 빠져 있거나 뭔가 무력한 상태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우울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흔히 말하는 우울감이 아니라 우울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 자신도 이런 증상에 빠져 들었다가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고 할까.

또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 자아상태를 잘 살펴보면 쉽게 휘둘림을 당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젠 심리적 에너지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합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변해 현재형으로 내 귀에 들려온다.

이 가사에 나에게도 이제 미소가 흘러 나온다.

그녀에게,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이다.

 

아내의 죽음

 

 

“나의 죽음에 대한 심리, 어린이자아란 녀석이…”의 3개의 댓글

  1. 그래도 감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마음이 중요한것 같아~
    나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내가 좋아할꺼야. 힘내고 힘내자 칭구야!

  2. 핑백: 아내의 빈자리와 나의 심리변화 분석 2번째 이야기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