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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믿음12: 광야에서 죽어간 이스라엘인들의 신념과 믿음

이 글은 인물을 중심으로 신념과 믿음을 다룬 시리즈 글 중 하나입니다. 이번 글은 40년간 광야에서 삶을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인을 주인공으로 하였습니다. 앞의 글은 이 글과 서로 연결되는 모세이야기입니다.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광야에서의 모세의 중보

40년간 광야에서 죽어간 이스라엘인들

 

인간은 누구나 삶을 해석하는 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틀은 때로는 신념으로, 때로는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신념은 우리가 경험과 환경 속에서 스스로 세운 자기 해석입니다.

  • 어린 시절의 상처, 사회적 조건, 반복된 실패와 억압은 우리 안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기 규정을 만들어냅니다.
  • 신념은 때로는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지만, 동시에 우리를 묶어 두는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 예를 들어, “나는 늘 부족하다”, “나는 나그네다”, “나는 앞에 나설 수 없는 사람이다”와 같은 자기 인식은 신념으로 굳어져 삶을 제한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 믿음은 우리의 경험이나 조건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하는 태도입니다.
  • 믿음은 인간의 자기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에 근거합니다.
  • 그래서 믿음은 신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신념과 믿음은 종종 충돌합니다.
신념은 “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신념은 과거의 경험에 묶여 있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형성된 노예적 신념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신념을 깨뜨리시고 믿음을 세워가셨습니다. 이 글은 그 과정을 따라가며, 신념에서 믿음으로 옮겨가는 여정을 묵상하려 합니다.

(1) 애굽의 생활과 노예적 신념의 형성

이스라엘은 요셉의 은혜로 애굽 땅에 들어와 처음에는 풍요와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등장하였고, 그는 이스라엘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며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출애굽기 1:8~10).

애굽은 이스라엘을 강제 노동에 내몰았고, 벽돌을 굽고 성을 쌓는 고된 노동은 그들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자유는 점점 사라져 갔고, 억압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까지 흔들었습니다.

왕은 더 나아가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출애굽기 1:16). 생명마저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두려움과 체념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애굽의 권력은 그들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지배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노예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을 노예로 규정하는 신념을 마음속에 새겨 갔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이런 신념들이 자리잡았습니다.

  • “우리는 생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무조건 싫다.”
  • “우리는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쉬고 싶다. 이것을 제공해 주는 자가 우리의 하나님이다.”
  • “우리는 명령을 받으면 일단 무조건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를 맞을 것이다.”
  •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누가 대신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들의 애굽 생활의 모습은 출애굽기 2장의 사건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본 모세가 그들을 말리려 했을 때, 그들은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우리도 죽이려 하느냐?”라고 대들었습니다(출애굽기 2:14). 이는 그들의 마음이 억압 속에서 날카롭고 방어적으로 변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행동을 환영하기보다, 즉각적인 불신과 두려움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념과 믿음의 대조를 볼 수 있습니다.

  • 백성은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어야 한다”라는 신념에 묶여 모세를 불신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이 순간부터 공동체의 신념과 불신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는 백성의 날카로운 반응을 통해, 앞으로 지도자로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을 미리 맛본 셈이었습니다. 모세의 역할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신념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고, 믿음으로 연결하는 중보자의 자리였습니다.

(2) 광야에서의 생활과 신념이 드러나는 과정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형성된 노예적 신념을 그대로 안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자유를 얻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억압받는 자의 사고방식에 묶여 있었습니다. 광야의 생활은 그 신념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① 불평과 원망  

조금만 먹을 것이 부족하면 즉시 불평했습니다. “애굽에는 고기 가마와 떡이 풍족했는데, 여기서는 굶어 죽겠다”라며 원망했습니다(출애굽기 16:3).
이는 “우리는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라는 신념이 드러난 모습이었습니다.

② 위기 앞의 두려움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내었느냐”라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출애굽기 14:11). 이는 “우리는 생존이 최우선이다. 위험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라는 신념의 반복이었습니다.

③ 형식적 순종과 불신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을 때, 그들은 “하루치만 거두라”는 말씀을 어기고 더 모아 두려 했습니다(출애굽기 16:20). 이는 “명령을 받으면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를 맞을 것이다”라는 신념이 행동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④ 문제 해결의 의존성  

물이 없을 때 백성은 모세를 향해 “우리를 왜 이끌어내었느냐”라며 원망했습니다(출애굽기 17:2). 이는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누가 대신 해결해 주어야 한다”라는 신념이 드러난 것입니다.

광야의 사건들은 단순한 불평이나 실수의 기록이 아니라, 애굽에서 형성된 신념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이었습니다. 자유를 얻었지만, 그들의 내면은 여전히 노예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3) 초기 믿음의 형성과정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형성된 노예적 신념을 반복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신념을 깨뜨리시고 믿음을 세워 가시는 과정을 인내로써 이어가셨습니다. 초기 광야의 사건들은 단순한 생존의 기록이 아니라, 믿음을 배우는 훈련의 과정이었습니다.

① 하나님의 공급을 통한 믿음의 훈련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주심으로써, 하나님은 “너희의 생존은 너희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출애굽기 16장). 반석에서 물을 내심으로, 그들의 갈증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17:6). 이는 “생존이 최우선이다”라는 신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심어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② 문제 해결의 하나님을 통한 믿음의 확신  

물이 없을 때 백성은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우리를 왜 이끌어내었느냐”라고 불평하며,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누가 대신 해결해 주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드러냈을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을 내시며, “내가 너희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이다”라는 믿음을 가르치셨습니다.

③ 율법과 성막을 통한 믿음의 질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20장, 25장). 이는 단순한 규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함께 하신다는 표징이었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이는 “명령을 받으면 일단 무조건 ‘예’라고 해야 한다”라는 신념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진정한 순종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④ 광야의 시험을 통한 믿음의 성장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하시며, 그들의 마음이 말씀을 따르는지 드러내셨습니다(신명기 8:2). 시험은 단순히 어려움이 아니라, 신념을 드러내고 믿음을 훈련하는 자리였습니다. 원망과 불신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내하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으로 산다”라는 믿음을 배우도록 이끄셨습니다.

광야의 생활은 신념과 믿음이 충돌하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형성해 가시는 훈련의 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매일의 공급, 문제 해결, 율법과 성막, 시험과 훈련을 통해 점차 믿음을 배워 갔습니다.

(4) 믿음과 신념의 충돌과 그 결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공급과 율법, 성막을 통해 믿음을 배우는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은 노예적 신념은 그동안 형성된 믿음을 눌러버렸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라고 보고했습니다(민수기 13:32~33). 이는 애굽에서 형성된 신념, 곧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다”라는 자기 규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현실의 거인들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 땅에 들어가면 죽을 것이다”라는 두려움 속에서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라는 외침 속에서 먹고 쉬는 안락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그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모세와 지도자를 원망하며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 땅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민수기 14:8~9). 이는 “우리는 약하다”라는 신념을 넘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믿음을 붙든 것입니다. 그들의 고백은 신념과 믿음의 충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 신념: “우리는 약하다, 우리는 메뚜기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다. 위험은 피해야 한다.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
  • 믿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결국 백성은 신념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광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약속의 땅은 눈앞에 있었지만, 그들의 신념은 믿음을 눌러버렸고,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나다

 

(5) 그들을 향한 모세의 마음과 하나님의 계획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반복적으로 신념에 사로잡혀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생존이 최우선이라는 신념 때문에 위험 앞에서 두려워했고, 먹고 쉬는 안락을 원하는 신념 때문에 애굽을 그리워했으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믿음을 붙들지 못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연약함 속에서도 모세와 하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① 모세의 마음

모세는 백성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그들의 불평과 반항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애굽에서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노예적 신념의 결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백성을 위해 중보했습니다. “주의 큰 권능과 주의 강한 손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셨는데, 이제 멸하시면 열방이 주의 이름을 욕할 것입니다”라며 간절히 탄원했습니다(출애굽기 32:11~14). 모세는 백성의 불신을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의 믿음은 공동체의 신념을 덮는 중보자의 믿음이었습니다.

②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은 백성의 불신과 노예적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진노하시며 심판을 내리셨지만, 동시에 그들이 신념에서 믿음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인내하시며 새로운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광야는 단순한 방황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다시 세우시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길을 마련하시는 자리였습니다.

모세의 마음과 하나님의 계획은 서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모세는 백성의 연약함을 품었고, 하나님은 그 연약함 속에서도 믿음을 세워 가셨습니다. 이 만남은 신념과 믿음의 긴장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내를 보여줍니다.

(6) 광야의 40년간 생활: 신념에서 믿음으로의 전환과 죽음

정탐꾼 사건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광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약속의 땅은 눈앞에 있었지만, 그들의 신념은 믿음을 눌러버렸고, 그 결과 그 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민수기 14:29~35).

그러나 그들의 40년간 광야 생활은 단순한 방황이 아니라, 신념을 벗고 믿음을 배우는 전환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이든 세대에게는 깊이 자리잡은 노예적 신념을 벗겨내고 믿음을 다시 훈련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아직 노예적 사고가 덜한 젊은 세대에게는 믿음을 더욱 굳건히 세우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분명한 목표를 주시며 그 길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광야는 심판의 자리이자 동시에 믿음을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학교였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실패 속에서도 언약을 지키셨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들은 40년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였습니다.

① 신념의 반복

백성은 여전히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습니다. 물이 없을 때, 음식이 부족할 때, 위협이 닥칠 때마다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는 “생존이 최우선이다”, “잘 먹고 쉬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라는 신념이 반복된 모습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형식적으로 따르며, “명령을 받으면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라는 신념도 드러났습니다.

② 믿음의 훈련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실패 속에서도 만나와 물을 공급하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며, 성막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신념을 깨뜨리고, “너희의 생존은 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너희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이다”, “내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 참된 순종이다”라는 믿음을 다시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인내였습니다.

③ 세대 교체와 죽음의 의미

불신앙으로 가득했던 첫 세대는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점차 노예적 신념을 벗고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배우며, 자신들의 여정이 결국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임을 깨달아 갔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좌절이 아니라 정체성을 회복하며 믿음으로 완성된 순간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의 죽음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든 믿음의 완성이었습니다(신명기 34:5).

또한 새로운 세대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내와 공급을 경험하며 믿음을 배우고 자랐습니다. 그들은 노예적 신념에 덜 사로잡혀 있었기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갔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광야의 40년은 신념에서 믿음으로 옮겨가는 전환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은 그 과정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가 믿음을 가지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시작이었습니다.

(7) 맺음말: 신념에서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서 신념과 믿음이 충돌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애굽에서 형성된 노예적 신념은 그들을 끊임없이 묶었고, 불평과 원망, 두려움과 불신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광야의 40년을 통해 신념을 벗겨내고 믿음을 세워 가셨습니다.

특히 첫 세대의 죽음은 단순한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점차 노예적 사고를 벗고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배우며, 결국 자신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좌절이 아니라 정체성을 회복하며 믿음으로 완성된 순간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의 죽음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든 믿음의 완성이었습니다. 죽음 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여정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이 여정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 안에도 경험과 상처에서 비롯된 신념이 우리를 묶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약하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생존만이 중요하다”라는 자기 규정은 우리를 제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며, 신념을 깨뜨리고 믿음을 세워 가십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이스라엘과 같이 신념에서 믿음으로 옮겨가는 여정입니다. 실패와 죽음도 믿음의 완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광야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념을 넘어 믿음을 세우시며, 죽음까지도 그분의 나라를 향한 완성의 길로 바꾸십니다.

 

안식년과 희년 회복과 자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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