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란 말씀이 있는 창세기 2장 24절을 살펴보며 묵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글은 창세기 1장에 있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께서 느끼시는 감정 속에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주심에 대해 살펴 보았지요. 이어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1. 창세기 2장 24절 말씀
2. 심리적 측면에서 ‘부모를 떠나’ 이해하기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은 아마도 기독교인 결혼식장에서 무척 많이 듣는 구절일 것입니다. 저 역시 결혼할 때 당시 담임목사님께서 주례 구절로 저희에게 당부한 말씀이기도 하셨지요.
이 말씀 앞 부분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신 후 아담에게 이끌어 오니 아담은 ‘당신은 내 뼈중의 뼈, 내 살 중의 살’라고 말하지요.
일종의 아담이 아내에게 한 프로포즈 구절이자 자신에게도 파트너가 생겼다는 기쁨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를 볼 때마다 의문이 생겼었지요.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담이나 하와의 부모가 없는 상태인데 왜 신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지?”였지요.
그래서 사실상 아담과 하와가 결혼하는 내용이니까 혹시 ‘의례적이거나 상징적인 표현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 말씀이 최초의 남자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므로 인류역사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신께서 무엇보다 먼저 선언적으로 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나 생각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만약 남자가 부모를 떠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가정을 달리하고 보니 여러 가지가 보이더군요. 심리상담 중 부부상담을 할 때 많이 부딪히는 내용이 바로 이와 관련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부들이 함께 모인 곳에서 세미나 등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남자들에게, “어머니와 아내가 서로 의견이 달라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런 상황에서 누구 편을 들어주는지요?”
참 곤란한 질문일 것입니다.
많은 가정에서 이러한 부분과 관련하여 마찰을 빚어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부부상담을 할 때면 십중팔구 마주하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부모를 떠나”라는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는 걸까요?
결혼해서 집을 나가 살아라?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지원받지 말고 살아라?
부모에게서 독립해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두 정답에 가까울 수 있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심리상담을 하면서 ‘부모를 떠나’와 관련 확연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보다 ‘인간의 심리’와 관련된 말씀이다. 또한 결혼 당사자에게 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부모에게 한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당시 이 말씀은 결혼 이후 자녀를 둘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말씀이다란 것이지요.
심리학의 내용 중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 중 ‘자라지 말라’란 메시지가 있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심리를 깔고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떠나지 말라’입니다. 성장한 자녀가 부모인 자신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무의식적 심리입니다.
실제 어떤 가정은 나이든 자녀가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려고 하면 부모가 앓아 눕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드문 경우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떠나지 말라’란 이 무의식적 메시지가 자주 목격되는 유형이 있습니다.
엄마는 자녀를 특히 아들을 어려서부터 애지중지하며 키웁니다. 소위 ‘금이야 옥이야’하고 키우지요.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 치맛바람은 기본입니다. 결국 사회적으로 좋은 학위, 좋은 직장, 더구나 주택, 차들도 사주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당연히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는 반듯한 가정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부감을 물색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 상응하는 며느리를 맞으려고 하지요.
그런데 자신의 마음 속엔 ‘떠나지 말라’란 메시지가 계속 작동됩니다.
‘너는 나를 떠나면 안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심리를 가질 때 그에게 있어 며느리란, 자신의 아들을 잘 보필하고 자녀를 출산해주며 자신이 여전히 아들을 독점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 존재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심리적 관계는 ‘위-아래’의 수직관계가 되어야 편합니다.
즉 심리적 지배관계인 것이지요.
또한 아들과의 관계는 강력한 의존관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리적 이중구조를 가지게 되는데, 겉으로는 아들이 엄마에게 의존하지만 더 깊숙히 살펴보면, 엄마가 아들을 의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중 공생관계라고 하는데 아주 견고한 상호 의존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
엄마는 결혼한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면서, 며느리가 아들을 가져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구조로서 며느리를 심리적 경쟁상대로 볼 수도 있는 구조이지요.
또한 가족상담의 대가인 보웬이란 심리학자는 ‘삼각관계’란 유명한 이론을 말하였습니다. 세 명의 가족간에도 삼각관계가 이루어지는데 이중 둘은 서로 강하게 엮어 있고 다른 사람은 이들에 의해 밀리는 구조를 말합니다.
대개 엄마와 자녀가 엮여져 있고 아빠는 밀리는 구조입니다. 당연히 부부사이가 좋지 않을 때 더욱 이러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엄마와 자녀는 상호 의존적으로 강하게 엮어 있고 서로 없어서는 안될 관계가 됩니다. 부부가 이혼을 할 때 엄마 쪽에서 양육권을 강하게 집착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의외로 적지 않은 경우가 이런 이유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심리적 구조가 형성된 가정은 자녀가 부모를 심리적으로 떠날래야 떠날 수 없습니다. 강력하게 서로 엮여져 있으며 이를 이탈하려 할 때 강력한 저항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고부간의 갈등은 며느리가 아들을 빼앗아 간다고 여겨질 때 생기는 시어머니의 저항입니다.
아들이 떠나면 자신은 못산다는 심리에 지배받기 때문이지요. 이때 아들은 어려서부터 엄마와 강력하게 엮여져 있기에 그것을 못 끊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마보이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혼까지 가기도 하지요.
부모를 떠나!
창세기 2장 24절의 이 말씀은 결국 ‘부모와 심리적으로 엮여져 있는 것을 잘 분리하다’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심리적으로 건강한 모습이며 결혼의 선결조건이기도 합니다.
3. 히브리어 “야아좁”의 의미
‘야아좁’은 히브리어로 ‘떠나다’, ‘버리다’, ‘포기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는 다양한 문맥에서 사용되는데요, 이중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야아좁’하고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남자가 부모와의 관계를 끊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의 의존적인 관계를 ‘야아좁’하고 아내와의 독립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심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분도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무언가를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얻는 사람은 주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어집니다. 반대로 주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게 되지요. 즉 위 아래의 관계가 저절로 형성된다는 것이지요.
자녀가 성년이전에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 있지만, 성년이 된 이후에도 계속 물질적으로 지원을 받아야 한다면 자연스레 며느리는 시부모님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질적 의존이 심리적 의존을 강요한다는 것이지요.
4. 히브리어 ‘웨다바크’의 의미
히브리어 ‘웨다바크’는 ‘결합하다’, ‘달라붙다’, ‘충실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는 남자가 아내와 ‘웨다바크’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남자가 아내, 즉 부부가 서로 강한 유대감과 사랑으로 결합하고 달라 붙으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런데 부부가 진정으로 서로 강한 유대감과 사랑으로 결합하고 달라 붙기 위해서는 ‘부모를 떠나’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심리적 혹은 경제적 등으로 부모에게 의존관계가 된다면 웨다바크 역시 불가능할 것입니다.
5. 정리 및 소감
창세기 2장 24절 ‘부모를 떠나’란 말씀.
이 말씀을 이와 같이 묵상해 보니 왜 신께서 이와 같이 선언을 하셨는지 이해될 것 같았습니다.
신께서는 인간의 심리, 특히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의 심리, 이것이 어떻게 가정을 세우기도 파괴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한 이 말씀은 먼저 부모에게 한 말씀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어떻게 잘 성장시키고 잘 떠나게 할 것인가’가 되겠지요.
또한 자녀들에게도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성인이 된다는 것은 부모란 항구를 떠나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한다는 것. 이때 가장 필요한 무기는 누구에게 의존받지 않는다는 것.
이것의 바탕에는 바로 어려서부터 엮여져 있을 심리에서 부모를 떠나는 ‘심리적 독립’과 강한 의지가 필요하겠지요.
또한 부모와의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 아닌 건강한 심리상태에서 부모님을 기쁨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성경적인 결혼관이 아닐까 묵상해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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