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에는 신께서 6일 동안 천지창조를 진행하시면서 자신이 창조하신 것들을 평가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평가 내용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였습니다. 이에 대해 묵상한 내용입니다.
지난 글 중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다’에 대해 묵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창조 이전의 모습이었지요. 혼돈과 공허와 깊음 속에 울부짖는 그 수면 위를 신께서 다독이듯이 운행하시는 모습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창조 이전의 장면에서 성경은 첫째날부터 여섯째날의 창조 내용이 이어집니다. 특히 첫째날은 ‘빛이 있으라(Let there be light)’였죠.
이와 같이 창세기 1장에 신께서 6일 동안 빛에서 출발해서 궁창, 하늘과 땅, 식물과 동물, 그리고 마지막 날 인간을 창조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많이 듣고 읽은 내용으로서 어린 시절에는 그 장엄함에 경이로움을 느꼈던 적도 있었고, 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할 때에는 제법 의문이 많이 생긴 곳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꽤 많은 상징적인 내용들이 함축되어 있기에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쉽게 건드리면 안 되는 성역같이도 느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성경 속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 부분이 달리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특히 ‘좋았더라’가 제 맘에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졌습니다.
1.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말씀
창세기 1장 31절에 나오는 성경말씀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의 창조 뒤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문장이 나오며, 여섯째날에는 ‘심히 좋았더라’라고 나오며 창조가 종료됩니다.
이전에 이 말씀을 보았을 땐, 신께서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보며 ‘좋구나, 멋지구나’라고 느꼈으며, 여섯째 날 창조를 모두 마친 후에는 ‘매우 좋구나’란 이 느낌. 솔직히 이전에는 ‘신께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이니 스스로 좋다고 느끼셨나 보다’ 정도였지요.
2. 신께서도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신께서 인간과 같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아가 있으며 자아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나란 존재”란 의미를 가집니다. 즉 인간은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하는 존재로서 주로 생각과 감정을 통해 행동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창조의 장면에서 신께서도 생각하시고 감정을 느끼시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신께서는 생각하신다, 나도 생각한다.
신께서는 감정을 느끼신다, 나도 감정을 느낀다.
신께서는 행동하신다, 나도 행동을 한다.
즉, 이렇게 보니 나는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나’라는 것이 좀더 실감이 나더군요.
3. 칼 융의 사고와 감정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성격분석과 관련되어 사고와 감정을 서로 대비하여 설명했습니다.
사고란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무언가를 정리하고 판단하려는 기능을 가진다면,
감정은 ‘좋다, 나쁘다’ ‘호감이 간다, 안 간다’식으로 그 무언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인간의 생각과 느낌, 행동의 체계로 연결해서 살펴보면,
인간이 무언가를 결정할 때 나름대로 생각하므로 나름의 기준으로 평가한 후 결정한다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 마지막 단계에 감정이
‘좋아, 안 좋아’
‘해 보자, 웬지 깨름직해’
‘해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지?’
와 같이 일어나 최종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됩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하고 논리적으로 필요하다고 결정을 내렸을지라도 마음이 깨름직하게 느껴지거나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들 때에는 우리는 망설이게 되며 결국은 그것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즉 감정의 역할은 최종 의사결정에서 핵심적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걸 이해하고 나서 이 말씀을 보았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만약 신께서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안 좋았더라’라는 감정이 일어났다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란 생각이 미쳤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때까지 만든 창조물들을 부수시고 다시 만드시지 않았을까?
또한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생각하셨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께서 ‘좋았더라’란 감정을 느꼈다는 것은 실제로 좋았기에 좋았다라고 느꼈을 것이고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치밀한 그 무엇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생각에 미치고 나니 다음과 같은 인간의 뇌와 감정에 대한 생각이 미쳤습니다.
4. 인간의 뇌와 감정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 방법은 외부의 자극이 오면 뇌의 편도체란 곳에서 1차로 감정을 느끼며, 편도체는 바로 시상하부에게,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에 명령하여 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편도체를 통한 감정의 반응은 즉각적인 반응이라는 것이지요. 이때의 반응은 인간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많은 실수를 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실수를 줄이려면 편도체에 느낀 감정을 진정시키고 전전두엽이란 곳에서 그 감정을 다시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전전두엽은 ‘생각하는 감정’을 느끼는 곳이라고 하지요.
즉 편도체에서 ‘좋다’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바로 반응하면 실수하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전두엽을 통해 ‘무엇이 좋은지, 왜 좋은지’ 등등을 따지며 이를 통해 최종 판단을 하고 행동을 취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좋았다’ 란 감정을 편도체로만 느낀다면 아마도 ‘흥분’ ‘도취’에 빠질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감정’으로서 느꼈다면 보다 차분하면서도 깊게 느낄 것입니다.
- 편도체는 즉시적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이라면,
- 전전두엽의 감정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도 그러할 진대,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깊이 생각하시고 깊이 느끼실까라는 생각에 미치더군요.
5. 토브, 좋았더라
여기까지 생각하니 다시 이러한 생각이 미쳤습니다. 신께서는 ‘왜 좋아하셨을까?’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이 당신의 계획대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일까?’
그런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이유,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미친 것이지요.
이때 성경 중 히브리어 성경의 단어 ‘토브’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토브’란 단어의 의미를 찾으니 ‘좋다, 선하다, 복되다’란 의미가 있더군요.
성경에서 ‘토브’란 단어는 ‘창세기1장의 창조’와 ‘하나님은 선하시다’의 ‘선하심’에 사용되었으며, 이 단어가 인간에게 적용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으며, 대표적으론 시편 84편에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에서 ‘좋은지’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이 단어 ‘토브’는 신께서 우리 인간에게 선하심과 복되심을,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좋은지와 관련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천지창조 과정 중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실 때 그저 자신의 피조물을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나의 형상으로 만들어질 인간들이 내가 만들고 있는 이것들을 잘 사용할 수 있겠지?’란 마음을 항상 품으며 창조의 계획을 실행하시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미치더군요.
6. 정리와 소감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이 말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말할 수 없는 은혜의 마음이 가득한 말씀이며, 우리를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시고 다시 당신의 감정을 통해 깊이 재 점검 하신 후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 다음 창조를 이루어 가신 신의 위대한 역사를 표현한 말씀인 것이지요.
너무도 감사하고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감정이 밀려오는 말씀이었지요.
저에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은혜 주시길 원하시는구나’로 제 마음에 깊이 와 닿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마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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