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어떤 기억이 떠오르는 전의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래전의 것이 평소에는 생각이 안 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장기기억과 관련이 됩니다.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어느 여성 내담자의 전의식과 관련된 사례입니다.
- 여성: 어린 시절에 엄마는 저를 많이 사랑하셨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다가가려면 멈칫하곤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 상담자: 혹시 어린 시절에 엄마에 대한 안 좋거나 무서웠던 기억이 있나요?
- 여성: 아,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나요. 저는 그때도 여느 때처럼 엄마 옆에서 설거지를 도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저에게 큰소리를 쳤어요. “성가시게 굴지말고 저리로 가!!” 그때 너무 놀랐어요. 한번도 엄마가 저에게 큰 소리치지 않았거든요. 이 기억은 거의 생각 안나다가도 뭔가 건드려지듯 확 생각이 나곤 했었어요.
- 상담자: 그렇군요. 그 때의 그 사건을 선생님은 망각처럼 전혀 생각나지 않다가도 어느 순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고 잊지 못하고 있군요.
- 여성: 예, 이상하게 그 기억은 계속나더라구요.
- 상담자: 그러면, 어린 시절에 엄마가 선생님을 많이 사랑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했는지 기억나는 것들이 있나요? 사례를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어요.
- 여성: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가)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네요. 이상해요, 분명히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딱 꼬집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네요.
상담을 할 때에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중 행복했고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거나 단편적인 반면, 안 좋은 것들은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을 의식, 무의식, 전의식으로 나누었는데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것을 전의식이라고 했습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적응적인 무의식‘이라고 부릅니다. 오래 전에 대한 기억은 사실상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상당부분의 기억은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필요할 때 생각나지요.
그런데 앞의 대화 내용에서 보면, 50대인 내담자는 어머니에게 큰 사랑을 많이 받았음에도 그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고 한 차례 좋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것은 갑자기 생생하게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연로하신 엄마를 만날 때에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보면,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사랑한 것은 999이고 딱 한번 모질게 대했다고 하면, 확률적으로 보면 999:1 쯤이 되는데 그 1이 이상하게 크게 작용합니다.
이 사실을 엄마가 알았다면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 그런 경우를 많이 봐왔지요.
위의 사례에서 보면 기억이 나면 좋을 것이 기억이 나지 않고,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 오히려 기억이 나고 있습니다. 다들 전의식에 의해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기억에서 삭제된 것이 있으며 어떤 것은 기억이 나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뇌과학 혹은 신경과학분야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뇌에 메모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뇌의 기억용량 중 어느 정도를 사용하고 있을까요?
이전에 많이 들었던 것은, 인간은 “자신의 뇌를 10%도 다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은 자신의 뇌의 용량을 모두 사용하지 못할 만큼 잠재력이 무한한 존재이다”로 해석되어 우리를 기분 좋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뇌과학 분야에서는 이 이야기를 ‘틀렸다’라고 합니다. 10%가 아니라 거의 100%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뇌과학 분야 이야기를 빌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기억용량은 일정수준인데 하루에도 많은 다양한 자극들이 들어옵니다. 인간의 기억용량이 매우 크다면, 들어오는 대로 모두 기억해버리면 되겠지요. 하지만 기억용량이 정해져 있기에 뇌에선 모두 기억하기가 불가능하며 그러하기에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을 삭제하려고 할 것입니다. .
그런데 기억은 크게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인 세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그 기억 프로세스는 감각기억 → 단기기억 → 장기기억이 됩니다.
인간은 미각, 시각, 촉각, 후각, 청각과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많은 자극들을 받고 있고, 뇌는 그 자극들에 대해 즉시적으로 반응이 일어나게 합니다. 이러한 자극과 반응들이 수시로 일어나기에 그 자극과 반응에 대해 기억할 대상이 매우 많지만, 실제론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어버리지요.
즉 대부분의 것들이 잠시 기억되었다가 삭제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의 기억을 “감각기억”이라고 합니다. 기억되는 위치는 감각기관과 직접 관련된 뇌기관들이 됩니다.
그런데 감각기억 과정을 통과한 것 중에도 어느 것들은 좀더 기억 대상이 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단기기억”이라고 하며, 이때 좀더 주의를 기울였거나 부호화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을 때 단기기억으로 남습니다. 이 역시 감각기관과 관련된 뇌기관이 기억을 좀더 하게 됩니다.
그런데,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핵심이 바로 수면(잠자는 것)이지요. 우리가 수면을 취할 때, 그냥 자는 것이 아니라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렘수면의 렘이란 영어 R,E,M의 약자로 렘수면은 Rapid Eye Movement sleep가 됩니다. 잠을 잘 때 눈동자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때로서 이때 잠은 깊지 않은 상태입니다.
렘수면에서는 단기기억이 저장된 뇌기관(전두엽 등)이 그 기억들이 과연 장기기억으로 보관할 가치가 있는지 등을 평가하고 그 정보들을 재구성하면서 해마로 보낼 장기기억 대상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것을 “수면선택”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비렘수면에서는 안구가 움직이지 않으며 깊은 수면에 들어간 상태로서 뇌파가 느리고 근육이 완전히 이완되는 상태입니다.
이때 전두엽 등에서 선택된 단기기억들이 해마로 보내지고 이것들이 더욱 장기기억으로 보관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것들이 대뇌피질의 어딘가로 다시 전달되게 됩니다. 이것을 “수면재생”이라고 하지요.
즉 우리가 잠을 잘 때 뇌는 단기기억들을 재생하고, 선택하고, 삭제하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것은 궁극적으론 뇌의 용량이 모든 것을 메모리할 수 없기에, 최대한 기억의 효율성을 가지고자 하는 것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과정이 있으므로 우리 인간은 불필요한 기억들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으며, 뇌가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대부분 수면과정에서 이루어지므로 충분한 수면, 특히 깊게 숙면하는 것이 매우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감각기억에서 장기기억까지 기억되는 대상들은 무엇일까요?
대개 반복적이고 체계적이며 감정이 개입된 것들이 주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중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것들은 주로 학습, 훈련 등이 대상이기에 이것을 작업기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감정이 크게 개입된 어떤 사건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의 기억을 특히 서술기억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이러한 장기기억 대상 중 1순위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뇌과학 분야에서는 그 기억의 1순위는 자극과 반응에 스토리가 있는, 특히 특정한 감정이 개입된 서술기억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대개 예기치 못한 경험들이 주로 해당될 수 있지요.
이것은 작업기억과 같이 반복적이지도 체계적이지 않더라도 우선 강하게 기억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이러한 것들은 어떤 스토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지요.
예를 들어, 애인과 첫 키스를 했거나,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거나, 깊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거나 등이 될 수 있지요.
그래서 ‘뇌는 감정이 녹아 있는 스토리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술기억은 전의식에 의해 기억되기 쉽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 좀더 살펴보면, 신경과학분야에서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뇌기관이 앞에서 언급한 해마(hipocampus)인데, 이때 해마는 해마 근처에 있는 편도체(감정기획)와 시상하부(감정실행)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가져와 스토리를 만들어 장기기억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이때 이 스토리는 실제 발생한 사실 그 자체일 수도 있지만, 편도체와 시상하부가 느꼈던 것에 따라 실제보다 더 과장이나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할 때 심리문제와 직접 관련된 기억들은 과장과 왜곡 현상이 잘 일어나는 것이며, 비단 심리상담이 아닌 경우에도 이런 현상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이지요.
이러한 내용들을 빌어, 앞의 여성의 “엄마가 자신을 사랑했으나 실제로 기억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녀의 뇌 입장에서 보면, 엄마의 사랑은 극히 일상적이었으며, 엄마가 딸에게 충분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게 하지는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뇌가 장기기억화할 대상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이지요.
특히 상담현장에서 자주 보았던 것을 대입하면,
엄마가 심리적으로 ‘정서적 결핍’ 상태가 많아 자신의 정서를 자녀에게 잘 표현하지도 깊게 받아주지 않는 엄마, 그럼에도 한편으론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녀에게 자신의 역할에는 충실한 엄마. 그러다가 자신이 너무 힘들어 아이에게 가끔 소리친 엄마.
앞의 여성과 엄마의 관계가 이와 같았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엄마는 참으로 억울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드는 대목이지요.
‘자신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왜 경직될까?’
실제 엄마가 자신을 사랑했으나 ‘정서적 결핍’이란 심리문제로 딸에게 사랑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엄마의 심리를 이해하게 된 딸. 그런 엄마가 안타까우면서도 이젠 엄마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딸은 기억하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을 이젠 새롭게 서술기억으로 만들어 자신의 전의식에 담아 놓지 않았을까요?
다음에는 단기기억을 뇌가 삭제한 경우가 아닌 기억상실들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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