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4: 외할머니와의 만남

이번 글은 이애경의 선물, 네 번째 외할머니와의 만남입니다. 인간은 만남과 헤어짐을 계속 이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는 때론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지요. 이를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외할머니

이애경의 외할머니와의 만남

 

결혼기념일 즈음 어느 날 오후, 남편이 같이 나가서 밥 먹자고 하여 전철 몇 정거장 타고 나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곳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푸드트럭에서 뜨거운 호떡을 먹으며 소소한 즐거움에 잠시 쉼을 누리는 가운데 “우리 여행 나온 거 같지 않아?”라는 남편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목이 마른지 길 건너편 편의점에 가서 물 한 병을 사 오겠다며 먼저 갔던 남편이 “편의점 앞에 의자가 있으니 거기에 앉아서 물도 마시며 잠시 쉬어 가자”고 불러 그리로 갔는데…

어떤 할머니가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과 차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은 키에 매우 깔끔하고 단아한 모습.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느낌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시고 계셔서,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어떻게 이렇게 앉아 계시냐고..

“호떡 하나 사 드릴까요?”라고 물어봐 드렸더니…

“아니야 난 밥 먹고 나왔어. 더 먹으면 힘들어.
그러니 나 걱정하지 말고 먹어요”

라고 하시며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가셨습니다.  남편은 젊어서부터 그렇게 술을 마시더니 결국 술로 돌아가시고, 당신은 50대에 혼자가 되어 이곳으로 이사 오셨다고 하십니다. 

우연히 어느 회사 공장 식당에 취직이 되어 10여 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으며, 지금은 이렇게 혼자 지내지만 당신 앞가름은 하고 있으시다고…

지금이 좋다고 하시며 엷은 미소와 함께 편안하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다 먹어도 술은 마시면 안 돼.” 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에 혼자 앉아 있으면 너무 답답해.
그래서 이렇게 나와서 사람들 구경하는 거야.
여기에도 앉았다가 길 건너편에도 앉았다가 하면서, 이렇게 사람 구경 하다가 저녁 8시 45분쯤 되면 집으로 가서 씻고 9시쯤 누우면 하루가 가지…”

“아, 그러시군요… 고생을 많이 하셨겠어요.” 

“응, 많이 했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어느 때가 제일 좋으셨어요?”

“응… 50대에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애..
어쩌다 그 때 회사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일했던 그 때가 제일 밥이 맛있었대~.
그 당시 직원은 50명이었는데, 지금은 500명이 넘는대. 많이 커졌지?!..” 

하며 당시의 고생을 매우 뿌듯해 하시며, 그 때 고생한 덕에 지금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거야.”라며, 

‘그러니까 나 걱정 안 해도 돼..’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계속 여운이 남았습니다.
‘이 기분은 어떤 걸까…’  그 할머니의 모습이 문뜩문뜩 떠올랐습니다. 내 안에 있는 어떤 이미지를 찾아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다름 아닌 나를 아껴 주신 나의 어린 시절 사진 속 외할머니의 단아한 모습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도 있는 걸까..’ 마치 그토록 그립고 보고 싶었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리신 그 외할머니의 모습이 아닌가요…

일찍이 홀로 되시고 그 작은 몸으로 험난한 삶의 여정 가운데, 손수 기르신 야채를 머리에 이고 먼 시장에 나가셔서 다 팔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어둑어둑 해가 넘어갈 즈음 되어서야 돌아오시곤 하였는데, 오시는 길이면 늘 손녀딸 작은 입에 넣어 주시겠다고 알사탕 사 들고 오셨던 키 작은 할머니… 

어느 날 동구 밖 내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 작은 손녀딸은 할머니를 더 이상 보지 못했고, 그 날 밤 외가집 마당엔 훤히 불이 밝혀지고 동네 사람들까지 다 모여 무언가 엄숙한 예식을 치르는 모습을 그 작은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물끄러미 멀리서 바라보았을 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왜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 걸까…‘ 

그러나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작은 아이는 ‘할머니, 할머니…’ 

그냥 조용히 속으로 수 백 번, 수 만 번을 되뇌었을 뿐.. 그 이후 낮에도 밤에도 할머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 아프셨던 엄마보다 할머니와 더 먼저 깊은 정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그 날 밤 꿈인지 환상인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훤히 불 밝혀진 외가댁 전경과 똑같은 모습의 환상은 50년 넘도록 늘 내 마음 속에 아련히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나의 내면 속 아이는 작별의 인사도 없이 떠나가신 그 할머니가.. 많이.. 아주 많이 보고 싶었나 봅니다. 

오래도록 마음 속 그리워했던 외할머니가 작별 인사를 하러 오신 것 같았습니다. 그 먼 길 돌아, 돌아서 .. 마치 시공을 초월하여 애틋하게 기다리고 있는 손녀딸 보러…

‘인사하지 못하고 가서 미안해.
그리고 난 괜찮아, 나 걱정하지마.
그리고 잘 살아.. 잘 살아야 해~’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결혼기념 선물처럼…

그 이후 수 십 년간 무의식적으로 떠돌았던 환상같은 장면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를 붙잡고 있던 미 해결된 과제가 이제 풀어지고 스스로 떠났나 봅니다.

 

 

이애경님의 위의 글을 읽고 나니, 그 당시 함께 있었기에 편의점 앞에서 만난 할머니와 아내와의 대화가 주마등처럼 떠오르더군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그녀가 웬일로 그 할머니에겐 처음부터 살갑게 다가가 이야기 나누는가 하는 마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지요.

그리고 그 다음 날, 저에게 그 전날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의 마음에 미해결된 과제가 이제야 해결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여태까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걸음은 걸을 수 있었지만 아주 어린 시절, 엄마가 아파 외할머니 댁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서 한 동안 살았었다고요. 그러니 가장 민감한 시기에 주양육자가 엄마에서 외할머니로 바뀐 것이지요.

아이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인데 다행히 외할머니가 어린 손녀에게 애정을 많이 쏟아주었기에 할머니를 많이 의지하며 살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요… 당연히 아이는 그 영문도 몰랐고 할머니가 자신을 버린 듯 없어진 것이지요.

이때 아이는 매우 혼란스러운 애착관계가 형성된 것이지요. 나중에 커서 머리로는 외할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긴 알겠는데, 마음속엔 할머니가 어린 나를 버려두고 떠났다는 것이 오랜 기간 자리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애경님이 오랜 동안 고통 당해야 했던 심리적 문제였던 것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미해결 과제를 가지고 살고 있으며, 이러한 미해결 과제가 인간의 심리적 결핍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또한 이러한 결핍은 자신도 의도치 않은 마음의 움직임을 초래하게 하곤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심리의 작동으로 때론 스스로 미궁에 빠지게 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애경님은 자신의 오랜 과제를 해결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쁜 날이었던 것이지요.

그 이후 한결 편안한 마음인 것 같더군요. 그녀의 표현으로 하면 ‘마음의 치유와 참자유를 얻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 그녀의 상담은 더욱 깊어졌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좀 더 편안하게 드러내더군요. 

저에게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애경님과 외할머니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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