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33: 글 아버지

이애경의 아버지

이애경의 아버지

 

40개월 미만의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들에게 아동학습발달에 미치는 아버지의 역할을 명목으로 질문을 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언제인지?…
당신의 차, 핸드폰이나 책상 위에 아이의 사진은 몇 장이 있는지? …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언제였는지?..

그리고 대상만 바꾸어 같은 질문을 하게 되더군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 본 적은 있었는지?…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언제인지?…
당신의 차, 핸드폰이나 책상 위에 아버지의 사진은 몇 장이 있는지?…

참여한 모든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 시부모님과 식사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90을 바라보시는 아버님은 늘 자식 걱정이 많으시기에 60을 바라보는 아들에게 늘 고쳐야 할 부분부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의를 하나 했지요.

“아버님, 지금 이 시간에는 아들에게 칭찬을 하나 해주시면 어떨까요?
아들을 보시고 아들의 눈을 맞추며 “아들아~..”하며 불러주시면서..”

며느리의 갑작스런 제의에 아들의 눈을 맞추기 힘들어 하시면서 얼떨결에 답하시고는.. 잠시 후 눈물을 흘리시고 말았습니다. 그 눈물 속에는 아마도 많은 사랑과 의미가 있겠지요. 바라보는 저도 오랫동안 가슴 뭉클했습니다.

늘 계실 것만 같은 이름… 

늘 그 자리에서 열심히 사시기에 무심해졌던 이름…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만 같은 그 이름.. 

아 버 지..

이제, 더 늦기 전에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아 버 지… 사 랑 합 니 다.”

 

이애경님의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두 개의 에피소드 중 제 마음이 훨씬 더 갔던 것은 두 번째 이야기였습니다. 등장인물인 아버지와 아들, 바로 아들이 저였었고 아버지는 현재 95세이신 저의 아버지였지요. 두 사람 사이에 아내인 이애경님이 낀 것이지요.

물론 함께 모여있었던 자리였기에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내용과 같이 아버지에게 제 눈을 맞추고 칭찬해주시면 어떻겠냐고 말할 수 있는 며느리는 과연 우리 나라에 얼마나 있을까요?

그래서 저도 내심 속으론 놀랐습니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었지요. 

이애경님이 참 많이 변한 것이지요. 이전에는 앞에 나서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던 사람이, 아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매우 무서워했던 사람이 이렇게 변신할 수 있었던 것엔 어떤 무엇이 있었을까요?

물론 그 이유 중에는 이애경님이 베테랑 심리상담사였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희 연구소에서 ‘자기이해 심리상담’이란 경지를 제일 앞선에서 넓혀갔던 이애경님이었으며, 대중을 대상으로 이야기치료 혹은 이야기공연을 저와 함께 오랜 동안 진행해 왔었지요. 심리상담이나 이야기치료 중에는 대중과 즉석에서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를 주로 이애경님이 맡아서 했었고, 제가 보더라도 정말 잘하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우연적으로 상호간 심리적 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이를 조화롭게 풀어간 것이지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러한 경력이 절대 답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능력이 있어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있으며,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애경님은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레파토리를 안쓰럽게 생각했을 것이며 두 사람이 좀 더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과연 이애경님은 일반 며느리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애경님의 글을 읽었을 때 바로 떠올랐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있기 오래 전에 있었던…, 그러니까 이애경님이 1년 동안 저와 별거하면서 처가집에서 있다가 다시 돌아온 즈음에 있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느 날, 저와 이애경님은 저의 부모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사실 이애경님이 집을 떠나있었을 때 마치 불문율같이 아무도 이애경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기 했었지요. 아마도 저를 배려하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저를 매우 불쌍하게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며느리가 빨리 돌아오길 학수고대했었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모두들 손 모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 댁을 찾아뵈었을 때 분위기가 점점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엔 항상 시부모님에게 억눌려 있었던 이애경님, 그런 기간이 20년 가까이 되었을 때였기에 두분도 그런 분위기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갑자기 아내로부터 큰 소리가 나왔습니다. 여태까지 쌓였던 감정들이 물꼬를 틀어 한꺼번에 쏟아진 것입니다. 이전이라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애경님의 그런 모습에 두 분 모두 놀란 가슴이 된 것이지요. 두 분 모두 아무 말도 못하고 숨만 헐떡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에 저의 어머님이 “그래, 내가 잘못했다. 너에게 참 잘못했다”와 같이 말씀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또한 “너희 부부가 잘 살아야지.” 하셨고, 그때부터 어머니께서 며느리인 이애경님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셨지요. 

저는 이 장면이 없었다면 이애경님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끼어서 자연스레 조율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리상담을 할 때, 슬픔과 분노란 감정을 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내담자가 상담기간 중에 슬픔이란 감정을 정직하게 느낀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 알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잃어버린 것은 결국 ‘자기’가 되는 것이지요. ‘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점점 잃어버렸구나’를 느낄 때 그 어느 것보다 슬플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되찾길 바랄 것입니다.

이때 분노란 감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나란 사람을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 것은 정당하지도 정상적이지도 당연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억울하게도 타인들로부터 나를 이리저리 빼앗긴 것이지요. 분노란 감정은 바로 ‘정당하지 않을 때, 정상적이지 않을 때, 당연해지지 않을 때’ 원 상태로 복구시키려 할 때 느끼는 감정이며 이 감정을 느낌으로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반드시 자신을 빼앗아간 당사자와 직접 만나 분노를 표현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칫하면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애경님은 이 과정을 저에게도, 저희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바르게 밟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머리로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덮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대개 미완성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감정은 아직 안 끝났다고 외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두 개의 에피소드 중 자녀에겐 잘하는 젊은 아빠들이 자신의 아버지에겐 다가가지 않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잊혀져 있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자극하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이러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아빠 각자에겐 자신의 부모님과 어떤 속사정이 있을지 어찌 압니까? 아마도 어떤 사람은 ‘나는 절대 우리 아버지처럼 자식을 키우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한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이런 아빠에게 위의 내용을 연출한다면 그의 내면은 매우 복잡해질 것입니다. 죄책감은 물론이고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분노, 슬픔 등이 복잡하게 얽히는 심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태에서 눈물이 나온다면 자신이 왜 눈물을 흘렸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대단히 어려워지게 되지요. 좋은 취지의 내용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런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애경님이 이 글에서 의도한 것은 부모님을 다시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애경님 자신이 경험했듯이 어떤 사람에겐 이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 분들에게 쉽지 않은 과정을 잘 넘기시라는 마음을 가득 담아 이 글을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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