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30: 글 딸을 위한 시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선물 30번째, 글 ‘딸을 위한 시’입니다. 이애경님은 마종하님의 동명의 시를 인용하였지요. 과연 딸에게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랬는지를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과 딸애를 위한 시

이애경의 딸을 위한 시

  딸을 위한 시    -마종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딸의 생일

 

며칠 전 딸아이의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무얼 받고 싶냐고 물었더니.. 

대뜸 하는 말이 “꽃다발 받고 싶어요, 아빠한테서..”라며 아빠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케이크는 안 받아도 좋으니 꼭 꽃다발을 받고 싶다고 했지요.

아빠는 속으로 생각을 했어요. ‘기왕이면 먹을 수 있는 케이크가 낫지 않을까? 함께 먹으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데…’

그러나 딸아이는 계속 졸랐지요. “난 지금 꽃다발을 받고 싶어, 아빠한테서.”

분명 아이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결국 아빠와 딸은 꽃가게에 가서 조그마한 꽃다발을 사서 딸에게 안겨 주었고 환하게 웃으며 가슴에 꽃을 안고 돌아왔어요.

아이의 마음을 살펴서 지금 여기서 무엇이 필요한 지를 읽어 준 아빠를 칭찬해주고 싶었고…

아이는 자라면서 그 때 자신의 마음을 살펴준 아빠처럼 타인을 위하여 관찰을 잘 하는 어른이 되길… 위기와 좌절의 순간이 올지라도 자신을 위하여 잘 살피고 관찰하여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진주처럼 승화시키며 살아 내기를 마음으로 소망하는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네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어린 아이’가 자녀들과 함께 먼 훗날 큰 자원이 될 추억을 만들어 가는 행복한 동행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이애경님이 인용한 시와 직접 쓴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시보다는 저와 딸 이야기가 있는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 딸애가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솔직히 처음엔 기억이 잘 안나더군요.

한편으론 딸이 생일 축하 꽃다발을 케이크보다 왜 더 받고 싶어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그 당시 딸 생일이니까 엄마인 이애경님이 선물도 준비하고 음식도 준비하고 했을텐데, 또한 촛불 불기 좋아하는 딸애였기에 케이크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 예상을 깨고 ‘꽃다발’을 원했던 아이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돌이켜보니 저의 성장 과정에서 제가 꽃다발을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더군요. 아마도 우리 집에서는 꽃다발은 정말 특별한 날에만 필요하고 평상시의 꽃다발은 일종의 허례허식같이 여긴 부분이 있었음을 발견했지요. 이것이 저의 의식의 저변에 깔린 이유 중에는 아마도 ‘돈’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부모님은 쓸 곳도 많은데 한번 쓰고 버리는 꽃다발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을 것이고 그 심리가 제 마음에 그대로 전수되어 자리 잡혀 있었음을 이해한 것이지요.

당시 어린이집에서 많은 발표와 함께 사랑을 독차지했던 딸애 입장에서 보면, 다른 친구들은 그런 이벤트 때마다 많은 꽃다발을 받았을텐데 본인은 그러지 않았으니, 꽃다발을 못 사게 하는 아빠에게 꽃 다발 받는 것이 일종의 미션같이 느꼈음을 이제야 이해한 것이지요. 

그래도 그 당시 다행이었던 것은, 제가 이전의 기억들로 인해 생긴 나만의 신념을 깨고 딸애의 요청을 두말 없이 들어주었다는 점입니다. ‘딸이 생일날 원하는 것이고 무슨 이유가 있을 터이니 무조건 들어주자’라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딸애의 생일이었습니다.

저에게 “아빠, 내 생일날에 같이 식사하자~”라고 했을 때, ‘아차, 우리딸 생일이지?’했었지요. 그리고 생일 당일날인 어제, 상담을 마친 후 부리나케 실용복을 파는 매장에 가서 좀 과할 정도로 여러 복의 옷을 사서 딸에게 선물로 안겨주었습니다. 많이 좋아하더군요. 

케이크를 준비해온 예비사위는 곧 있을 결혼식 당시를 예상하며, “아버지는 결혼식 때 많이 우실 것 같은데, 어떨 것 같아요?”라고 생뚱맞은 질문을 하더군요. 집요하게 질문하길래 “울긴 왜 울어, 우리 집안에 이렇게 멋진 사람이 오히려 오게 되었는데~”. 

어제 생일도 그렇고 곧 있을 딸애 결혼식도 그렇고 눈물 포인트는 많긴 하지요. 어제도 아내가 함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기쁜 날이지 않습니까.

어제도 결혼식 날에도 이젠 저의 아내였던 이애경님은 더 이상 있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애경님은 자신의 딸에게 이런 멋진 시를 인용하여 글을 남겼네요. 마치 생일 축하 인사이자 결혼 축사와 같이 말입니다.

시인 마종하님의 유명한 시 ‘딸에게 주는 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내용이지요.

관찰자 입장에서‘ 또한 이것에 더하여 ‘공감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라”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관찰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바라보면, 바라보는 이의 마음도  더욱 따뜻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세상도 더욱 따뜻해질 수 있겠지요.

딸애 역시 저희의 뒤를 이어 ‘관찰과 공감’을 기본으로 하는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엄마의 좋은 측면과 아빠의 좋은 측면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더욱 키우겠지요.

이애경님의 글 중 다음의 글이 특히 눈에 들어오네요.

아이는 자라면서 그 때 자신의 마음을 살펴준 아빠처럼 타인을 위하여 관찰을 잘 하는 어른이 되길… 위기와 좌절의 순간이 올지라도 자신을 위하여 잘 살피고 관찰하여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진주처럼 승화시키며 살아 내기를 마음으로 소망하는 날이었습니다.

특히, ‘위기와 좌절의 순간이 올지라도 자신을 위하여 잘 살피고 관찰하여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진주처럼 승화시키며 살아 낼 수 있는 딸’ 되길 바라는 이애경님의 마음에 제 마음도 더 보태어 더 커다랗게 소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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