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글은 이애경의 선물, 세 번째 이야기 ‘공감해 주기’ 입니다. 실생활에서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 공감입니다. 공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공감해주기
“선생님은 어떻게 제 이야기를 전부 다 받아 주시고 믿어 줄 수 있지요?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런 질문이 저에게 항상 남았어요.
평생 살면서 제 주위의 어느 누구도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준 사람이 없었는데…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내 이야기가 전부 옳은 것도 아닐 텐데 말이예요.
내가 가족이나 옆에 있는 지인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하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고 하며 제 이야기를 받아 주려는 마음이 없었거든요.”
어느 내담자분의 이야기입니다.
상담 받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면, 마음이 참 아플 때가 많습니다. 마치 평생을 공감 받지 못한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일상 속에 이루어지는 우리의 대화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만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이야기만을 각자의 방식으로 쏟아 내고는 돌아서서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언어 기호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의미를 담은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경우는 일 중심, 논리나 업적 중심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돈과 명예 이야기로 자신의 가치관을 과시하거나 위축되어 열등감에 사로잡힌 대화를 주로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경우는 사람 사이의 관계나 조화에 대한 이야기,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관심사가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오랜만에 서로 만났는데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말하면서 동시에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하거나,
사고가 석회처럼 굳어 경직되고 완고한 언어패턴과 원리원칙 지상주의 이거나,
반대로 지레 체념하거나, 상대방의 일방적인 말에 쉽게 피로감을 느껴 피하고 싶거나,
무례함, 일관성이 없는, 무책임한 발언 등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느 누구도 모범이 되는 대화법을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마치 바다 위에 부표처럼 떠다니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향방 없이 토로하다 보니 명절이나 가족행사에 가족들을 만나지만,
또는 우아한 커피숍이나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지인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지만…
돌아서 집으로 갈 땐, ‘내가 왜 만난거지?… ’라는 생각에 공허한 경우도 종종 있다고 고백합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할 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시간들이
우리에겐 참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애경님의 위의 글을 읽으니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그녀가 저에게 여러 차례 한 말이었습니다.
“자기야, ‘아, 그렇구나’, ‘아, 그래서 그렇구나’, 그냥 이렇게 말해주면 안 될까?”
자신의 말에 다른 말 하지 말고, 그저 위의 말 같이 맞장구만 쳐달라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공감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내 딴엔 이애경님을 돕는다고 ‘문제해결중심’ 대답을 나도 모르게 할 때마다, 어김없이 돌아온 이애경님의 대답은 “그저 공감만 해줘” 였지요.
공감이란,
상대방의 상황에서 상대방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그래서 당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셨군요”
라고 반응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고형이 높은 저는 상담을 할 때와 같이 의식적으로 ‘공감모드’를 유지할 땐 이것이 가능하지만, ‘공감모드’가 해제되면 여지없이 ‘문제해결모드’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애경님은 이게 너무 자연스럽게 되니까,
그리고 항상 타인들의 마음을 공감해주다가 자신도 공감받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저에게 말을 걸었는데… 본전도 못 찾은 것이지요.
이러한 훈련이 참으로 반복적으로 저와 그녀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저의 살아있는 스승이었던 것이지요.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이애경님과 그의 친구와의 이야기입니다.
이애경님이 만나는 몇몇 안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 어느 친구는 외국에서 올 때마다 이애경님에게 연락하곤 했지요. 친구를 만나고 온 이애경님에게 “무슨 이야기 나눴어?”라고 하면 “그냥, 그 친구 이야기 들어줬어.” 였지요. 물론 자신도 하고픈 이야기가 있었겠지만, 친구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외국에 살면서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럴까?’란 마음에, 헤어질 때까지 그저 경청하여 주곤 했던 것이지요. 저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러한 만남이 연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애경님이 ‘공감과 경청’이 생활화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애경님이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제 식으로 다시 해석하면, 사고형이든 정서형이든 처음에는 ‘아, 그렇구나’ 라고 ‘공감모드’로서 들어줄 귀를 열어두어 대화를 나누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야 필요에 따라 ‘문제해결모드’로 가도 좋다는 뜻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