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32: 잡초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32번째 선물, 글 ‘잡초’입니다. 잡초는 여러 의미로 우리들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끈기있는 생명력을 말할 때도 잡초란 단어를 사용하지요. 이애경님의 잡초는 어떤 잡초인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잡초

이애경의 잡초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란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죠.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것입니다.
제 자리가 아니면 잡초가 됩니다.

 

건강을 위해서 걷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걷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걷기”는 친숙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무심코 나 있는 푸른 풀들과 철따라 피어나는 꽃들... 스치는 바람과 공기의 결…

그 속에서 움직이는 나의 마음과 생각들도 더 이상 갇혀 있지 않고 햇살을 받으며 자유롭게 나래를 펴고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며 걸어가니 몸도 마음도 함께 가벼워지게 되네요.

위의 글은 잡초를 연구하시는 어느 교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옮겨보았습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추스르며 걸어갑니다.

 

 

이애경님이 인용한 야생들풀 전문가인 강병화 교수님의 글과 이애경님의 단상을 읽어보았습니다.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 교수였던 강병화교수님께서 언급한 잡초에 대한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용하고 재해석했던 글들을 이전에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었기에 몇 줄 안되는 이애경님의 이야기가 먼저 다가오더군요.

특히 첫 줄 ‘건강을 위해서 걷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걷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걷기”는 친숙한 친구가 되었습니다.‘가 제 눈엔 동영상같이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걸을 때 100에 98은 저와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그녀와 함께 어느 해의 12월 초에 보름 동안 머물렀던 제주도 여행이었지요.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애경님이 저와 같이 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집근처의 지인 집에 몇 개월 살다가 결국은 친정에 갔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장례식을 치루고 집에 돌아올 줄 알았더니 친정에 계속 있고 싶다고 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약없는 별거생활이 시작되었지요. 

그리고 나서 약 1년 후에 저의 간청에 의해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녀의 분위기는 ‘당신이 그렇게 간청하니 내가 한번 봐주겠어’ 였지요.

사실 그 1년 동안에 제가 한 일은 매일 성경말씀을 QT하고 QT의 소감문을 글로 써서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보냈었는데 그때 이애경님에게도 함께 보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것은 일단 ‘내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긋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회복을 해야겠다’ 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암송카드에 있던 성경구절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소감을 썼었는데, 그게 사실상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작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엔 저의 활동분야와 관련된 재정관리, 은퇴관리, 세무관리, 위험관리 등의 책들을 쓰곤 했었는데 그 당시 이전엔 한번도 일반적인 수필이나 소감문 등을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QT글을 최소한 100일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 인내력이 별로이니 동기부여 차원에서 지인들에게 제 QT글을 뿌리자’ 란 마음으로 실행을 한 것이지요. 다행히 나름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이애경님도 반응은 없었지만 ‘이 사람이 무슨 짓하는 건가’ 란 심정으로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니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 봅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날 모든 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이후 저의 삶의 방향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쓰리 잡을 했었는데 하나는 재정관리분야의 프리랜서로서 금융권에 직접 강의하는 것, 또 하나는 어느 금융교육기관과 계약을 맺고 주로 온라인 분야 교육 컨텐츠를 만들어 주는 일,  남은 하나는 공부방이었는데 그 당시는 이것이 가장 캐시 카우가 되었었습니다.

앞의 두 가지는 이제 점점 제 역할이 축소되어갔었고, 공부방은 이애경님이 없는 기간엔 저의 열정이 점차 식어갔었습니다. 그 당시 제 몸도 조금씩 안 좋아진 부분도 생겼고, 공부방을 하면서 아내도 아이들도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어했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랬던 것이지요.

그때 아내와 함께 결단을 내렸습니다. ‘일단 모든 것을 멈추고 제주도에 가서 보름 간 쉬자. 가서 생각을 정리하자.’ 이런 마음이었지요. 그 이후 저의 인생의 방향은 ‘심리적 자기이해(Self 찾기)와 가족회복 사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방법이 현재의 연구소 운영과 심리상담이었지요. 

그렇게 두 사람은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제주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제주도 도착한 날 낮에 숙소 근처의 바닷가에 갔을 때 비가 왔었고 아내의 옷이 홀딱 젖었지요. 방수가 안 되는 솜옷을 입고 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여행용 옷들을 사면서 제주도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밖으로 나가 여행을 다녔다면, 그 다음날은 밖에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하루 종일 보내고, 또 다음날 나가면 그 다음날은 숙소에서 보내는 식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이애경님이 극내향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제론 체력이 전혀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주 여행을 마친 이후부터는 동네 근처의 산과 들을 코스를 바꾸어 매일 함께 걸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손잡고 걸었었는데 나중엔 저보다 더 잘 걷더군요.

두 사람이 다시 함께 했던 인생 후반기는 ‘함께 손을 잡고 걸음으로 호흡을 맞추고 생각을 맞추며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부부가 결혼해서 함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적을 수 있습니다. 직장다닐 때는 직장 동료와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으며 은퇴 이후에는 각기 다른 모임이나 경로당을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잡고 함께 걷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마음을 맞추기에 더욱 친밀감이 높을 것이지요.

그런데 이애경님의 단상 중 강병화 교수의 ‘잡초’와 관련, 다른 사람들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잡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애초에 강병화 교수님의 의도는 ‘우리 나라의 산야에 있는 모든 풀들은 그 이름이 잘 알려지고 못 알려지고 떠나서, 모두 소중한 존재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소외되는 풀들이 있어, 그 풀들이 잡초 취급 당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들풀 전문가로서 마음가짐이 대단하며, 또한 ‘F(정서)성향’이 높은 사람으로서의 표현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강교수님의 글을 인용한 사람들은 해석을 달리 하더군요.

어떤 분들은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를 어느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그 조직에 벗어나는 사람들을 그 조직의 잡초로 보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활동한다면 그것을 잡초로 보기도 하더군요.

모두 일리가 있고 확실히 T(사고형) 성향의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애경님은 잡초란 글을 언급하며 ‘오늘도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추스르며 걸어갑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나의 자리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즉 ‘심리적으로 움츠리거나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나 다운 나’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잡초로 만드는 것이다’ 란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다시 한번 (자신을) 추스르며 걸어간다’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이애경님의 이러한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서 이 글을 썼던 그 당시 ”나 다운 나, 당당한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더욱 분발하자’란 의미로서 또한, 현재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거나 비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군가에게 힘내시라’고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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