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열여덟번째 선물, 자기 멈춤이란 글입니다. 특히 시인 고은님의 유명한 문구를 인용해서 우리에게 자기 멈춤이 필요함을 제안했는데요, 이애경님의 자기 멈춤, 진지하게 마주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애경의 자기 멈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고 은 –
고은님의 시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지금 노를 놓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가던 발걸음을 한참동안 멈추고 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푸르름의 신록이 짙어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자연 앞에 잠시 멈춤으로 걸어온 발걸음을 뒤돌아봅니다.
나는 무엇에 열중하여 매여 있었을까? 열정을 품고 열심을 내었던 나의 내면에는 무엇을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에 습관적으로 또는 강박적으로 열중하거나 자신을 몰입하거나 거기에 항복하는 것’을 “중독”이라고 하네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독성향을 조금씩 보이는 우리들의 걸음…
「자기멈춤」으로 잠시 멈추어 비로소 넓은 물을 보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애경님의 글 ‘자기 멈춤’을 읽어 보았습니다.
제 알기론 이애경님이 고은님의 시를 좋아했었고, 본인도 워낙 사색의 시간을 좋아했기에 그래서 이와 같은 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위의 도입부 글을 잘 보니 고은님의 글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은님은 노를 놓쳤더니 그 결과로 ‘비로소 넓은 물을 볼 수 있었다’가 된다면 이애경님은 ‘내가 노를 놓친 것이 아닌가?’란 것에 먼저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실제 우리들의 인생에서 보면, 노를 완전히 놓쳐 물에 빠뜨린 후에 고개를 돌려 세상을 볼 수 있을 때도 있으며, 현재 세상을 살아가면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자신을 스스로 멈춰 자신의 내면과 더불어 외면을 돌아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애경님의 ‘자기 멈춤’은 위의 두 경우 중 ‘후자’에 좀 더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애경님은 ‘자기 멈춤’을 하지 못하고 계속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을 ‘중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를 집착, 강박 같은 것이 내면에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애경님이 좋아하는 칼 융의 심리이론인 ‘페르조나’와 ‘그림자’와 연결해서 살펴보는 것이 그 내용의 진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페르조나는 ‘사회적 역할이나 외부에 보여지는 모습, 즉 우리가 타인에게 보이고자 하는 이미지나 가면’을 뜻한다면, 그림자(Shadow)는 ‘의식에서 배제되거나 억압된 어두운 측면’으로, 본래의 자기와 반대되는 면을 담고 있지요.
만약 페르조나와 연결되는 중독이라면, 자신의 특정 역할이나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열중하는 과정에서 이에 집착하거나 강박적으로 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기대나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강박적으로 노력함으로 자신을 본연의 모습에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 일종의 중독적 행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반면, ‘그림자’와 연결되는 중독은 자신의 억압된 욕구나 갈망이 표출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중독은 흔히 말하는 술, 약물, 섹스 등과 같은 중독들이 해당되지요.
그런데 ‘그림자‘와 연결된 중독은 ‘자기 멈춤’으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바라봄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못되기에 이애경님이 그림자와 관련된 ‘자기 멈춤’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아님을 금방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와 연결된 중독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멈춤을 통해 자신이 문제를 스스로 해소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애경님이 말하는 ‘자기 멈춤’은 페르조나와 관련된 중독에 대한 내용이겠지요. 실제 페르조나와 관련된 중독은 ‘자기 멈춤’과 함께 ‘자기 허용’을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페르조나와 관련된 중독과 관련, 심리학자 에릭 번은 그의 교류분석에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그는 ‘드라이버’라고 표현했음)엔 ‘완벽하게 하라, 열심히 하라, 타인을 기쁘게 하라, 강해져라, 서둘러라’와 같은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들에 자신도 모르게 집착하거나 강박적으로 된다면 이애경님이 말한 페르조나와 관련된 중독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야, 쉬지 말고 달려야 해’
‘내가 맡은 일은 무조건 열심히 해야 돼, 그래야 불안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야, 그런데 이 일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 되지?
‘나는 사람들에게 강해 보여야 돼, 그래야 내 안에 불안이 있음을 들키지 않을거야’
‘나는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런데 몇 퍼센트가 항상 부족해’
‘이제 이 봉우리에 도착했네. 그런데 저기 더 큰 봉우리가 있잖아. 쉬지 말고 또 올라가야 돼’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텅빈 것 같아’
등과 같은 충동들이 일어나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심리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기 멈춤‘과 ‘자기 허용’으로 많이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애경님은 고은님의 글을 통해 ‘자기 멈춤’을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애경님 자신이 고은님의 글을 통해 ‘내가 노를 놓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할 계기를 가지게 된 것처럼,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드리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집착하거나 강박적인 심리로 인해 왜곡되어진 자신의 페르조나에게 ‘그렇게 살 필요 없어. 좀 내려 놓아도 좋아, 옆도 보면서 살아도 충분히 괜찮아’ 라는 자기 허용을 가지시라고 이애경님 자신의 화법으로 넌지시 권유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