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경의 ‘하나를 잃을 때’
하나를 잃을 때
내 작은 경건을 얻고또 하나 상처받을 때
당신의 위로를 얻습니다눈이 안 보일 때
따스한 눈길을 얻고귀가 안 들릴 때
마음의 귀를 얻습니다마음의 눈 떠
상실을 품습니다영혼의 빛
곱게 물든 해 질 녘
노을에 비로소
쉼을 얻습니다
“엄마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는 알아?”
얼마 만에 함께 장 보러 나가는 건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성인기에 접어든 아이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가면서 이렇게 내게 툭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요즈음 아이가 뭘 먹고 싶어 하는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소통’이 막혀있음을 직감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참치 통조림이랑 좋아하는 것 위주로 형편에 맞추어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함께 돌아오니 왠지 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왔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참치 통조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었더니, 자신도 분명한 대답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주어진 힘든 과제들을 하느라 다시 예민해지고 까칠해진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힘겨워 보여 다시 참치 통조림이랑 좋아하는 먹거리를 사놓았더니,
“와, 엄마 고마워. 음.. 그런데, 내가 왜 참치 통조림을 좋아하는지 알아냈어. 그러니까 힘든 고3시절 아침밥으로 학교 앞에서 간신히 참치김밥 먹고 교실로 뛰어 들어가던 그 때의 날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는 것 같아.”
“아, 그랬구나.. 지금이 마치 그때의 심정 같았구나.”
‘서로가 가장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던 바로 그 과거의 때에 아이의 마음은 지금 머물러 있었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힘들었던 시간들.. 위로받고 싶었던 나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참치 통조림’이라는 중간 대상으로 위로하고 있었음을 아이는 스스로 깨닫게 되었네요.
힘겨움, 슬픔, 상실 등에 대한 아픔을 피하지 않고 대면할 때 우리의 영혼이 위로를 얻고 자유롭게 되는 시간이었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애경님의 시와 글을 여러차례 읽어보았습니다.
처음에 시를 읽었을 때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신앙시’로서 깊이 있는 시 내용이 좋아 보였습니다. 또한 글은 참치 김밥을 소재로 한 엄마와 딸 사이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와 함께 딸에게 왠지 ‘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와 글이 모두 좋았지만 서로 연결감이 없어 보여 고개를 갸우뚱해서 시와 글을 분류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 간격을 두고 이 시와 글을 또 읽고 읽어보니, 제 마음이 참 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는 신앙시이기도 하지만 ‘긴 시간 동안에 있었던 자신의 심리 변화 과정’을 시로 쓴 것이며, 또한 글 역시 이와 깊게 연결된 글이라는 것, 특히 ‘우리 가정 모두 가장 아픈 시절이었을 때’를 배경으로 하였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이애경님의 글들을 처음부터 줄곧 읽어 오신 분들은 이애경님의 시와 글들이 자신의 시를 사람들에게 뽐내려 하거나 인간 심리에 대해 뭔가 직접적으로 가르치려고 쓴 글이 아님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이것을 처음부터 알았다기보다는 이애경님의 글에 이와 같이 여러 차례 댓글을 달고서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었지요.
이 시와 글들은 이애경님이 자신의 생애에 걸쳐 자신에게 상처로 남은 경험들과 이로 인해 생긴 자신의 심리를 치유해온 과정을 담담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간증하듯이 쓴 것이 아니라 대단히 내향적이고 직관적인 그녀의 방식대로 글을 이어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녀가 새벽에 길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가 입원했으며, 또한 장모님의 생명이 눈에 띄도록 줄어감을 느꼈던 그 때, 한편으론 집에서는 저 역시 아내의 모습에 예민해져 있었기에 아내의 이러한 상황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주기 보다는 어느 순간부터는 그 예민함이 아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으로 한창 중요한 때였고 아내와 함께 했던 일도 아내가 번 아웃됨으로 이전보다 몇 배 더 힘들게 신경을 더 써야했으며,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 왜 일어나고 있는가’란 짜증스런 마음이 축적되었기에 제 입에서 ‘감정적이고 까탈스런 말들이나 못난 비언어’가 나왔을 것이며, 아내는 그 무엇보다 그런 저의 태도가 더 원망스러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솔직히 아내가 저와 만났을 때 대학원을 졸업하면 외국으로 유학하는 계획이 이미 잡혔었던 때였지만,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난 믿음 좋은 사람’이란 말을 듣고 그런 사람과 환경 속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혼했었지요.
하지만 ‘믿음 좋다’란 이런 말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이애경님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과는 달리 대단히 사고적이면서 문제가 생기면 이를 뚫고 나가는 스타일인 사람에게 자신의 힘든 마음을 공감받는 것이 불가능하단 경험도 많이 했을 것이기에 특히 그러한 마음이 무척 커져 있었을 것입니다.
급기야 이애경님은 더 이상 집에서 살 수 없다며 처음엔 지인의 집에서, 이후엔 친정집으로 가서 약 1년 반 정도 서로 별거를 했었으며 별거 와중에 장모님이 돌아가셨고 그 이후 1년 후에야 집으로 돌아와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 1년 반의 시간이 저에겐 가장 쓰라린 시간이었고 또한 돌이켜보면 이 시간이 저에게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기간 중에 이애경님은 심리공부를 시작했었더군요. 그녀의 성향으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가장 어울리는 학문이 심리학이었을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 자신을 진정시키기는 했었는데 자신이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의 부정적인 자극들이 몰려오자 감당하지 못했던지라 ‘자신도 그렇고 사람들은 왜 이러고 저러는지’를 알고 싶어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위의 시는 그러한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심리와 신앙의 과정을 함께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의 표현에서는 ‘하나를 잃을 때, 또 하나 상처 받을 때, 눈이 안 보일 때, 귀가 안 들릴 때’와 같이 그러한 상황을 ‘때’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때 얻음이 있었음을 고백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때’로 읽히지 않고 ‘~지라도, ~임에 불구하고’로 읽히는군요.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과 자신을 마주하는 힘이 더욱 생겼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또한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심리 회복이 많이 진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리적 어려움이 쓰나미같이 생긴 사람들에겐 심리적 과장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나는 이제 끝났어, 더 이상 희망이 없어’ ‘세상이 나를 버렸어’와 같이 자신의 힘든 심리가 과장됨으로 스스로 절망의 수렁에 더 들어가는데, 이 시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위의 시를 다시 볼 때, 위의 시는 이애경님만의 시가 아닌 저의 시도 되겠다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시를 만약 제가 썼다면 그 마음은 많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봐야 정신 차리고 그 사람을 아낄 수 있으며, 그런 상황에 닥쳐 보아야 정신차린다’라고 말입니다. 현재의 제 상황이기도 하지요.
이애경님은 이 시를 통해 이애경이란 한 사람이 큰 아픔과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심리를 알아차리며, 그러한 가운데 신의 의지를 알아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심리가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딸의 에피소드는 자신이 그렇게 아파하고 힘들어 했던 그 당시, ‘딸 역시 많이 아파하고 있었구나’를 느꼈던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역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훈련을 하며 자신을 찾아가고 있구나’를 표현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