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47: 시 을의 비밀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47번째 선물, ‘을의 비밀’입니다. 이애경님은 자신의 내면을 ‘갑과 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과연 갑은 무엇이고 을은 무엇일까요? 또한 시 제목을 왜 ‘을의 비밀’로 했을까요? 잘 마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애경의 을의 비밀

이애경의 을의 비밀

 

출구를 찾지 못한 감정의 파편들
마주 대할 용기 없어
버럭버럭 덜그럭 거린다

자기를 잃은 쓴 소리, 갑의 소리
자유를 잃은 아픈 소리, 을의 소리
상처입은 내 양면의 소리,
신음의 소리들..

그 소리 담고 있는
마음의 방문 열어 햇살 비추이고
따스한 눈빛 비추이니

움츠려 눈치보고 있는 내가 운다
사흘 밤낮을 울어 토해 낸다
비 워 낸 다

산소가 들어가 들숨을 쉰다
보듬어 머무는 날숨을 쉰다
     먼 저 손 내 미 는
             을 이 되 어 간 다.

 

이애경님의 시 ‘을의 비밀’을 마주해보았습니다.

이 시는 다른 시와 달리 이애경님이 별도의 글을 남기지 않았네요. ‘시와 관련된 힌트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란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또한 시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이 시를 통해 이애경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참으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시를 한 구절씩 음미하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출구를 찾지 못한 감정의 파편들
마주 대할 용기 없어
버럭버럭 덜그럭 거린다

시적 화자인 이애경님은 시가 시작하자마자 ‘출구를 찾지 못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 ‘감정의 파편들’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의 심리가 사방이 벽으로 둘러 싸여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요. 인간의 심리가 어디에도 출구가 없다는 것은 절망에 싸였다는 뜻이 되며, 자신과 타인, 더 나아가 세상 어디에도 도움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 감정이 격해질 것입니다. 이 경우 자신의 감정을 ‘토닥토닥’하면서 진정시켜야 하는데 자신의 감정을 대할 수 없기에 감정이 계속 격해지면서 ‘버럭버럭 덜그럭 거린다’가 된 것이지요.

어려움에 빠졌을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냥 울고 있는 어린 아이가 절로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자기를 잃은 쓴 소리, 갑의 소리
자유를 잃은 아픈 소리, 을의 소리
상처입은 내 양면의 소리,
신음의 소리들..

이 시구를 보면 화자는 상처입은 내 양면이 있으며 이들이 신음의 소리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소리의 주인공들을 찾아보니 갑과 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표현은 갑과 을은 서로 다른 존재이며 을은 갑에 비해 낮은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과 을 모두 상처를 입어 신음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지요.

갑과 을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를 깊게 살펴보니, 갑과 을은 바로 인간의 자아를 말함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자아를 초자아, 원초아, 자아로 나누었고 에릭 번은 어버이자아, 어린이자아, 어른자아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므로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하나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자아가 어울려져 하나로 보인다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음하고 있는 자아를 에릭 번의 자아로서 살펴보면, 어린이자아와 어버이자아로 볼 수 있습니다. 앞의 시에서 그렇게 울고 있는 자아는 바로 어린이자아가 되는 것이며, 그러한 상태에 있기에 어린이자아상태에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앞의 구절에 등장하는 어린이자아 외에 어버이자아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화자는 어버이자아의 신음은 ‘자기를 잃은 쓴소리’라고 표현했으며, 어린이자아의 신음은 ‘자유를 잃은 아픈 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버이자아의 주 역할은 ‘양심, 도덕, 윤리, 정체성’등을 확립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확립되지 않을 때에는 자기(Self)가 취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양심이 없는 사람, 법과 윤리를 무시하는 사람,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또한 이것들이 너무 강하면 양심, 도덕 등과 관련된 자신의 기준이 너무 높아져서 자신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어버이가 훈육하다 못해 매섭게 비판할 수도 있으며, 한편으론 양육하다 못해 이젠 자꾸 요구적인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이때 인간은 이를 참아내려면 페르조나(사회적 가면)을 자꾸 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걸 지나치게 많이 쓰면, 자기(Self)는 점차 가려지고 사라져 보이게 될 것입니다.

위의 내용들을 깊이 살펴보면, 화자인 이애경님의 갑은 어버이자아가 너무 강해서 생기는 심리적 문제와 관련되어 보입니다. 

또한 어린이자아와 관련해서 ‘자유를 잃은 아픈 소리’로 신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자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는 어린이로서 활동해야 하는데, 이렇지 못하고 오로지 순응하는 어린이 역할 혹은 어린아이가 지나치게 빨리 자라므로 생기는 어른 아이 역할을 하는 심리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 모두 자유를 잃은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자아, 어버이자아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어린 아이의 숨통을 조이며, 어린 아이는 그것이 너무 힘들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장면이 연상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소리 담고 있는
마음의 방문 열어 햇살 비추이고
따스한 눈빛 비추이니

움츠려 눈치보고 있는 내가 운다
사흘 밤낮을 울어 토해 낸다
비 워 낸 다

그런데 다행히 화자는 마음의 방문 열어 햇살 비추이고 따스한 눈빛 비추이게 됐다고 합니다. 아마도 누군가 화자에게 위로, 지지, 품어줌 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화자는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움츠려 있었기에 처음엔 서럽게 울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흘 밤과 낮을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울음은 첫 구절의 절망의 울음과는 다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쌓여 있는 상처의 응어리들을 토해내고 비워내는 울음이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때의 자아는 어떤 자아였을까요?

어버이자아도 눈물을 흘릴 수 있었겠지만 상처를 더 많이 당한 자아는 어린이자아였기에 훨씬 더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울면서 상처로 인해 생긴 마음의 응어리들을 다 토해내고 나니 이제 뭔가 진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산소가 들어가 들숨을 쉰다
보듬어 머무는 날숨을 쉰다
     먼 저 손 내 미 는
             을 이 되 어 간 다.

들숨과 날숨. 우리는 때로 자신을 진정시키코자 할 때 들숨과 날숨을 인위적으로 쉬곤 합니다. 숨통이 막혔는데 산소가 들어가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했으며 누군가 따뜻하게 보듬어 주니 날숨이 저절로 편하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나니, 이제 화자는 자신을 챙길 여력이 점차 생겼습니다.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와 같이 손을 내민 자아는 가장 상처가 많았던 어린이자아, 즉 ‘을’이었던 것이지요. 갑에게 화해를 요청한 것입니다.

을이 갑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그 이후엔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아마도 갑은 그제서야 을에게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과연 이와 같이 갑과 을이 서로 용서와 화해를 했다면 무슨 심리적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아마도 이 시를 쓴 이애경님의 경우, 자신의 마음을 짓눌렀던 죄책감을 비로소 내려 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버이자아의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생겼고 이 마음이 왜곡되어 생긴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수치심에 빠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병환 중이던 엄마가 더 아파가고 결국 사망하게 된 이유가 자신이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마음을 을인 어린이자아가 계속 붙들고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요.

이애경님이 시 제목을 ‘을의 비밀’이라고 지은 이유가 아마도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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