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아홉 번째 선물인 시 ‘영원한 현재’입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현재는 금방 과거가 되어버리지요. 그러니 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영원한 과거는 있을 수 있어도 영원한 현재는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애경님은 왜 ‘영원한 현재’란 말을 썼을까요? 이애경님의 영원한 현재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영원한 현재
고드름 끝에 매달린
찬란한 햇살이
영롱함을 더 해주는 아침밤새 내려
내 허리만큼 쌓인
흰 눈 사이로 펼쳐지는
하얀 환상의 나라 속
주인공이 되어누군가 내어 놓은
눈 길 위에
내 발자국 꾹 눌러 본다
달린다 춤을 춘다물도 불도 끊긴 지붕 아래
시린 손 호호 불며
연탄불 피워 해주셨던
엄마의 무나물 밥지금도 눈만 내리면
영원한 현재로 남아
사랑하게 한다.
달린다 춤을 춘다.
이제 이틀 후면 올 한 해도 먼 뒤안길로 물러나게 되네요.
지나가게 될 한 해에게 나는 무엇으로 작별의 인사를 말해볼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다사다난 했던 날들..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따듯한 위로의 한마디”는 어떨까요?
늘 이맘때면 아직 못다 한 이야기 전해드리고 싶은 분이 저에겐 계신 것 같네요. 바로 어머니인 것 같습니다. 그 어머니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한 편 꺼내어 시로 옮겨 보았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영원한 현재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으시고
무조건 믿어주신 어머니
얼마나 큰 사랑인지
그 땐 왜 몰랐을까요?..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랑인지..
얼마나 힘을 주는 사랑인지..
나이 든 후에야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살아생전 한 번도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지 못한 아쉬움은
눈물로 항아리를 하나 둘 채우더니
그리움의 꽃들로
사시사철 내내 피워내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남은 이야기 다 한 후
이별의 강을 건너
다시 만나는 날엔
꼬옥 고백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이애경님의 이 시와 글을 읽으니 마음이 먹먹해지더군요.
이애경님의 어머니, 저에게는 장모님의 살아 생전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애경님의 양가적 감정 속에서 깊은 아픔이 다가오는 듯해 더욱 그런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더군요.
앞의 시에서는,
어느 꼬마 아가씨가 밤새 엄청나게 눈내린 날 아침, 하얗게 눈이 덮인 동네와 자연을 흥이 넘치도록 다니면서 자신의 발자국도 남기며 즐겁게 놀라가, 집에 돌아오니 물과 불이 끊겼을지라도 엄마가 연탄불에 밥을 해주셔서 무나물 반찬과 함께 밥을 맛나고 행복하게 먹는 장면이 저절로 연상될 정도로 즐겁고 기쁜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뒤의 글에는 그러한 엄마와 이생에서 영영 헤어졌는데 서로 의미있는 대화를 한 번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회한이 고스란히 이애경님의 가슴에 남아 있음을 보입니다. 아마도 저도 모르는 어느 때에 눈물을 흘리고 삼키곤 했던 것 같습니다.
이애경님이 중학교 때부터 대학원까지 강릉으로, 서울로 나와서 유학했다가 바로 저와 결혼했으니 실제 어머니와 이야기 나눌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애경님이 대학생 때 교통사고 당해서 병원에 장시간 입원했다가 집에서 휴식을 취했을 때가 가장 긴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군요. 그 때도 온통 병간호에 집중했을테니 서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 자체가 부족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이애경님과 연애를 하고 함께 살면서 의아해 했던 것은 자신의 감정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란 그 흔한 말 한마디를 처음엔 전혀 듣지 못했었지요. 아마도 그 이야기를 들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즈음으로 기억됩니다.
타인의 감정은 잘 공감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많은 한국 가정이 그러하듯이 ‘정서적 억제’란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간나면 엄마에게로 가 엄마의 병수발을 그렇게 했건만, 그리고 집에 돌아와선 엄마의 아픔이 자신의 감정에 신체화로 나타나 매우 힘들어 했건만, 왜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했을까란 안타까움…
이제 하늘 나라에서 어머님을 만났다면 과연 두 분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요?
서로를 향한 깊은 진심은 있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애둘러 보여주기만 했던 두 분이, 이젠 스스럼없이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곳은 편히 쉴 수 있는 하늘 나라니까요.
저도 이젠 그녀의 뒤안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녀와의 미해결 과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애경님보다는 사정이 좀 더 낫다고 생각되는군요.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 보낸 이후에야 마음공부를 시작했지만, 저는 그녀 덕에 진즉에 해왔으니 말입니다.
저는 제 마음을 가득 담아, 하늘을 향해
‘사랑해, 미안하고 고마웠어, 애경아, 천국에서 만나자~’
라고 소리 지를 수 있으니까요.
저의 ‘영원한 현재’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