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8: 시 ‘연거푸’

이번 글은 이애경의 여덟 번째 선물, 시 연거푸입니다. 시를 통해 결심하고 배반하고를 반복하는 마음, 그러한 가운에 다져지는 이애경님의 결단을 마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애경의 연거푸

이애경의 연거푸

 

결심하고 돌아서
스스로 배반하기를
연거푸 하는 결단은
늘 근심하고
또 고민합니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손에 쥔 욕심을
털어 낼수록
당신이 주시는 하늘빛 열매로
채워지는 비밀이 내 안에 있어
좌절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어제처럼
물구나무를 섭니다

소리 없이 쌓여 있는 먼지도
털어내고 발끝에 고여 있는
탁한 피도 바꾸면서
하늘빛 결심을 연거푸
합니다

 


새 해를 맞이하면서.. 
당신에게 실제로 바뀐 것이 있다면 무엇이 바뀐 걸까요?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바뀌면서 눈에 띄게 바뀌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는 새 해를 맞이하면서 새롭게 결심하고 목표도 세우고 마음자세도 새롭게 다짐해보게 됩니다.

위의 시적 화자는 나름대로 결심하고 좌절도 하지만 하늘빛 소망을 품기에, 다시 용기를 내어 쌓인 먼지 털어내면서 새 결심을 하며 살아내고자 하네요.

그렇다면.. 올해는 어떤 결심을 하며.. 나에게, 또 이웃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시나요?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단어들을 진솔하게 모아 나의 스토리를 써 보기 시작하므로,

나의 그림자 깊게 드리워진 그 곳에도 빛이 들어가는 회심의 도화선이 되어,

주어진 한 해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며 소중한 비전을 발견하고 설계하는 연초이면 좋겠습니다.

 

이애경의 내면

 

이애경님의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마음에서 일어난 것은 ‘내가 아직 이애경님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나?’라는 의문이었지요. 그래서인지 겁이 덜컥 났었습니다.

결심하고 배반하기를 반복하는 그녀의 결심 내용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이 시를 쓴 당시의 이애경님의 결심이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이 시를 다시 여러 차례 읽었을 때, 제 마음은 안심이 되더군요. 솔직히 그녀의 결심이 무엇인지가 주제도 아니며 그리 중요한 포인트가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위의 글들에서 이애경님은 결심과 배반의 반복된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성찰 속에서 자신의 욕심을 털어내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굳이 욕심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저 시적 용어로 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아차렸기 때문에 쓴 것일 겁니다. 그러니 그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낭패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과정에서 당신이라고 칭한 분, 즉 이애경님이 믿는 하나님께서 하늘빛 열매로 채워주고 있음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결심하고 배반하고 하는 과정이 그녀에겐 은혜의 시간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첨언하면, 이애경님은 대학교 당시 지독한 교통사고를 당해 중대한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아 목숨은 물론 심하게 상처난 얼굴을 복원할 수 있었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회심하게 되었고 그 이후론 그녀의 중심엔 하나님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분과 소통하며 살아왔었습니다.

이 시를 통해 이애경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한 것은 ‘무언가를 결심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녀의 경우 자신의 결심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라 그 결심을 배반하곤 했던 것이지요. 결국 그 결심은 오히려 자신을 해칠 수 있는 것임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실제 우리의 결심엔 항상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결심은 자신의 욕심이나 탐욕을 위한 것이라면 그로 인해 무언가를 얻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을 잃어야 하는 대가를 치루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애경님은 이를 털어내는 작업, 물구나무를 선다고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외적으로 나를 더럽게 하는 것들은 물론, 자신의 내면의 흐름을 막히게 했던 것들을 털어내었더니, 새롭게 하늘빛 결심이 자신에게 찾아옴을 고백한 것이지요.

그녀의 내면의 흐름이 눈으로 보이듯 형상화 시켰으며,

특히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내면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제 눈엔 이 시는 두 개의 장르가 결합된 시로 보이는군요. ‘심리 시’이자 ‘신앙 시’인 것이지요. 그녀가  좋아하고 잘하는 두 가지가 겹친, 참으로 보배로운 시로 보이는군요.

 

이애경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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