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34: 시 달팽이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34번째 선물, 시 ‘달팽이’입니다. 이애경님은 이 시를 통해 자신의 에피소드와 함께 ‘달팽이’를 인간 심리와 연결시켜 무언가를 전해주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달팽이

이애경의 달팽이

 

눈 감으면 영혼의 눈 떠지고
내면의 귀 열린다
좁은 마음의 문 열린다

그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외면당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진실의 세계를

늘 짊어지고 다니는 집 안에
달팽이의 몸이 꿈틀거리듯
저마다의 집 안에
저마다의 비밀이
꿈틀거린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질 때
딱딱한 집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버리는 달팽이

내 작은 집에는
영혼의 더듬이만으로 감지되는
비밀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느림보 걸음으로.

비가 내리는 날… 우산 들고 산책을 나가다 보면 달팽이들이 곳곳에서 대이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달팽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꼬물꼬물 느리게 기어가다가 무언가 더듬이에 감지되면 움츠려드는 모습들… 달팽이들의 모습을 통해 내가 보는 현실과 내 안에서 느끼는 현실의 만남…

위 시에서는 안과 밖의… 진실된 관계의 경험을 기대하고 있네요.

오늘은 달팽이를 보며 느끼며 표현해보았던 나의 마음을 옮겨보았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나의 길.. 나의 숨결..

비록 느릴지라도.. 그 숨결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연결되는 매일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애경과 달팽이

 

이애경님의 시와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괜히 웃음이 나오더군요. 한편으론 이애경님과 함께 가졌었던 달팽이와의 에피소드들이 새삼 생각났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이애경님의 색깔이 물신 묻어있는 이 시를 읽으며 ‘참 오묘하다’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기 북부 어느 신도시에 살았을 때 5~ 6월경 비오는 날 혹은 그 다음날, 수풀이 무성한 길을 걸으면 어린 달팽이들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이 녀석들이 자기 죽는 줄도 모르고 숲에서 나와 인도를 지나 차도로 가려고 애를 쓰는 장면들을 보았을 때, 아내와 저는 그것들을 모두 주워 나뭇잎 위나 풀잎 위에 올려주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경기 이남으로 이사했더니 달팽이 보기가 어렵더군요. 대신 지렁이들이 같은 노력을 하다 인도에서 말라 죽어가는 것을 보고 집게를 만들어 풀밭으로 옮겨주곤 했었는데요. 

이애경님이 사망하기 전 해의 여름까지도 이렇게 길바닥에서 지렁이 살리는 공작을 벌리곤 했었는데 그 이후론 제가 그러질 않았더군요. 혼자 다니니 걷기 보다는 자전거 위주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애경님의 ‘달팽이’란 시를 음미했을 땐 함께 한 추억과는 전혀 다른 느낌, 처음엔 ‘아, 정말 나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구나’. 제가 몰랐던 이애경님만의 어느 독특한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지요.

그녀의 시를 보면, 그녀는 자신을 달팽이로 이입시켰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달팽이와 같은 객체를 보면 그 객체에 대한 특징들을 먼저 살펴보고 좀 더 진행하면 객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찾는 게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앞에서 쓴 글을 다시 보면 달팽이가 5~6월에 태어나서 이동을 하며 자기 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특징이고, 달팽이와 관련되는 에피소드는 일종의 자기만의 특화된 이야기가 되지요. 이 모든 이야기는 달팽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끝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애경님은 자신을 달팽이에 대입하였고, 달팽이의 여러 특징들을 자신의 내면과 연결시켜 보이지 않는 자신의 실체를 찾아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시 대부분을 보면 어떤 객체에서 내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바로 자신의 내면으로 직행시키는 방식을 택하곤 했지요. 어쩌면 이것이 이애경님의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매력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시의 첫 구절을 살펴 보면, 이애경님은 자신의 심리적 구조를 단숨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눈 감으면 영혼의 눈 떠지고
내면의 귀 열린다
좁은 마음의 문 열린다

인간은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5감각’이라고 표현하지요. 감각 즉 센스는 실제 존재하는 것들을 느끼는데 사용됩니다. 또한 감각이 느끼는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실제적인 정보가 되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5감각으로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살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애경님은 ‘눈 감으므로’ 현실세계가 아닌, 즉 5감각으로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빠져 들어간다는 뜻이 됩니다. 이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직관’입니다. 보통 육감, 영감, 혹은 마음의 눈으로도 표현하지요.

그녀는 오감이 아닌 직관으로 들어간 세계를 ‘내면, 좁은 마음’이라고 표현했으며 직관을 통해서 내면의 귀가 열리고 좁은 마음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외면당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발견한 것은 오감이 아니라고 이애경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진실의 세계를

진실의 세계는 오감으로 발견될 수 없으며 오직 직관만이 가능하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이제 이애경님은 자신에게 시의 영감을 준 객체인 ‘달팽이’를 여기에 대입시킵니다.

늘 짊어지고 다니는 집 안에
달팽이의 몸이 꿈틀거리듯
저마다의 집 안에
저마다의 비밀이
꿈틀거린다

달팽이는 자신의 집을 이고 다닙니다. 이는 일반적인 특징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제 이애경님의 직관이 표현됩니다. ‘저마다의 집 안에 저마다의 비밀이 꿈틀거린다’. 

그런데 ‘저마다의 집안에 저마다의 비밀이 있다’가 아니라 ‘꿈틀거린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직관을 통해 그 무언가를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개 집안에 비밀이 있다면 그 비밀은 내밀한 것이며 드러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밀이 꿈틀거린다는 것은 ‘그 비밀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몸부림친다’란 뜻이 될 것입니다. 전혀 비밀이 비밀같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애경님은 드러내고 싶어 꿈틀거리던 비밀이 여전히 비밀로 남게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질 때
딱딱한 집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버리는 달팽이

이 시구는 인간의 내면을 아무리 직관으로 보려고 해도 쉽지 않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직관을 통해 꿈틀거리는 내면의 비밀을 알아채려고 하는데, 이 비밀은 겁이 많아 마치 인기척 소리에도 숨어버리는 달팽이와 같다는 뜻이지요.

인간이 실제 자신의 내면을 숨기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바로 ‘회피’입니다. 억압되어 숨겨져 있는 것을 비로소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그것이 위험하다는 인기척이 있을 때 ‘금방 모르는 척, 아닌 척’ 회피해 버리지요. 그래서 사람들 중엔 자신의 내면을 직관을 통해 직접 들여다 보려는 것을 아예 회피하는 것이 몸에 베여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지요.

이런 분들은 자신의 내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면 항상 당황스러워 하거나 혼돈스러워 하거나 하면서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멀찍이 떨어져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하기에 이애경님은 다시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작은 집에는
영혼의 더듬이만으로 감지되는
비밀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느림보 걸음으로.

이 시구에서 ‘영혼의 더듬이’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영혼의 더듬이는 마치 비밀병기와 같지요. 그 비밀병기는 ‘비밀’을 잘 감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비밀병기가 매우 빠르게 비밀을 찾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느림보 걸음과 같이 느리게 찾아간다는 것이지요. 또한 이애경님은 그 비밀을 찾아가는 작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과 같이 여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더듬이란 이애경님의 직관에 해당되지만 일반적인 ‘직관’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영혼의 더듬이는 매우 은밀하게 그리고 느리게 움직이지만 결국은 그 비밀을 잡아내는데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글을 통해서 보면 이애경님은 영혼의 더듬이가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나의 길.. 나의 숨결.. 비록 느릴지라도.. 그 숨결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연결되는…’

즉 마음속에 나의 길이 있으며, 그 길엔 이전에 뿌려 놓았던 내면의 숨결들이 있고, 그 숨결들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연결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작업은 매우 섬세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영혼의 더듬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이애경님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음의 길을 찾아내고 그 속에 뿜여져 있는 숨결의 조각들을 찾는 작업을 한다’는 힌트를 주었지요. 이것이 무엇인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스스로 생각해 보신다면 좋을 듯하군요.

그런데 이러한 작업을 할 때의 효과가 무엇인지 이애경님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는 현실과 내 안에서 느끼는 현실의 만남…

위 시에서는 안과 밖의… 진실된 관계의 경험을 기대하고 있네요.

위의 말은 오감으로 느끼는 현실세계와 직관으로 느끼는 ‘내 안의 비밀’의 세계.

내안의 비밀이 계속 숨겨져 있을 때는 나의 현실 세계와 내면의 세계는 서로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무엇을 하지만 그 속엔 나의 무의식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어, 나는 때론 이상하게 공허하기도 허무하기도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없어지려면 내 안의 비밀이 드러나 오감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 이래서 내가 열심히 하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공허했구나’와 같이 그 비밀을 눈으로 보는 것이지요. 이것을 이애경님은 ‘안과 밖의… 진실된 관계의 경험’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이 시에서 보듯이 이애경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대단히 ‘센시티브’ 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센시티브가 직관의 센시티브’ 이며, 또한 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각자 자신의 직관을 통해 내면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찾아보시길 권유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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