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12: 시 낙하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열 두 번째 선물, 낙하(落下)입니다. 낙하, 떨어져 내린다는 뜻이지요. 인생에서 올라가는 것은 좋은데, 낙하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요. 이애경님의 낙하는 어떤 낙하인지 마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낙화

이애경의 낙하

 

 

숱하게 외면하며 거부했던
추락의 기억들로 몸서리쳐 대던
어느 스산한 겨울 초입

갑자기 영혼의 눈 깊숙이 들어와
떨어지는 낙엽들 앞에
내가 멈춘다

마디마디 파인 골과
찬란히 물든 황혼의 흔적들

가던 걸음 멈추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한다

이제야
낙하하는 법을 배운다

지나간 세월의 주름이
무심하지만은
않았나보다

 창가에 펼쳐지는 전경은 온통 붉게 물들어 가는 가을풍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네요. 

집을 나서도… 길을 걸어도… 산을 보아도… 온통 붉게 또 노랗게 물든 낙엽들… 한동안 그 낙엽들을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었던 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왜 낙엽 보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왜일까요?.. 해를 거듭할수록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떨어진 낙엽 앞에 시선이 멈추었고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지요..

잎사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삶의 의미가 있고 땅으로 떨어져 생명이 다 했으니.. 그 죽음과 같은 의미를 마주하기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는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할 수 있었지만 이별은 할 수 없었던 나…
지나간 이별과 상실들을
이제는 하나씩 하나씩 Say good-bye…하며 직면하고 이별합니다.
안녕, 안녕…

심리학자 Robert Fierestone은 「Fantasy Bond」에서, 우리 자신의 정서적 욕구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마다 양육자와 자신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마치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사랑의 환상을 만들며 신체적, 언어적 폭력, 성적학대 등 정서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버림받을수록 연결의 환상을 강하게 만들고 어린 시절 양육자에 대한 환상을 이상화하며 강하게 집착하게 된다고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든 정서적 박탈감으로 인해 건강하게 이별하여 ‘홀로서기’도 ‘연합하기’도 그만큼 힘들었나 봅니다.

작은 바람에도 유유히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존재의 실체 앞에 고스란히 섭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오늘도 잠시 머물러 가면을 벗고 참자기를 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애경과 낙엽

이애경님의 시를 먼저 읽었을 때 왠지 깊은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저와 함께 있었을 때의 이애경과 혼자 있을 때의 이애경의 큰 간극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내면은 사람에 따라 넓거나 좁기도 하며, 얕거나 깊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들에 따라 그 내면에는 나와 유사한 것들이 채워져 있거나, 반대로 나와는 전혀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서로 내면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인생을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저는 정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것들에 의해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고 자신의 관점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마음의 틀’이라고도 부르지요.

기질성향 측면에서 보면 이애경님의 기질성향은 내향과 직관이 매우 높습니다. 거기에 정서와 유연함이 이들을 받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향과 직관이 높은 것과 관련, 분석심리학을 통해 이러한 이론을 처음 세상에 공포한 칼 융은 ‘무의식적인 지각기능이 발달되어 있으며, 관심의 방향이 자신의 내면이나 주체를 향해 나아가는 유형’이라고 했으며 ‘이들은 무의식의 가장 깊은 층에서 자료를 끄집어 내고 탐색하길 즐겨한다‘라고 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자신의 내면이나 주체를 향한 내면의 깊이가 대단히 깊고 이를 탐색하는 것을 즐겨한다’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의 내면엔 남들이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자신의 세계가 구축되어 있으며, 그 세계의 깊이는 마치 깊은 우물과 같이 대단히 깊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애경님의 이 시를 읽었을 때 처음에 한숨이 나왔던 것은 그녀의 심연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보는 느낌, 그 깊은 곳에 제가 모르는 그 무언가들이 가득 담겨 있는 느낌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애경님은 시의 첫구절에서 ‘숱하게 외면하며 거부했던 추락의 기억’을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이애경님이 어린 시절 등 과거의 경험에서 생겨난 기억인데 외면하며 거부했던 추락의 기억이라고 했으니 그녀에겐 매우 아프고 고통스런 기억들일 것이며, 그 기억이 깊은 가을이 되자 그녀를 건드리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질적으로 매우 깊은 마음의 우물을 가지고 있는 이애경님, 이 우물에 아픈 기억들이 숨겨져 있으며, 이런 기억들이 무의식적으로 이애경님을 건드리고 있는데, 그녀는 그 고통을 저에겐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혼자 감내하고 있었던 것을 이 글을 통해 발견했을 때 처음엔 한숨이 나왔던 것이 점차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으로 변하더군요.

그나마 다행한 것은 어느 순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불현듯 자신의 고통과 관련된 그 무언가에 대해 깨달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내향과 직관이 높은 사람들이 무의식적 순간에서 갑자기 내면의 깨달음을 잘 가지는데 이애경님도 역시 그랬던 같습니다. 이애경님은 이와 관련 자신의 내면을 ‘영혼의 눈’으로 표현했고,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낙엽에 눈이 무의식적으로 꽂혔으며 낙엽이 마디마디 조금씩 찢기어 나간 것과 예쁘게 물들었던 잎사귀가 이제 완전히 빛바랜 모습을 보면서, 낙엽과 마음의 대화를 했다는 것이지요.

이때 이애경님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다행히 그 단서를 글로 표현해 두었군요.

사랑은 할 수 있었지만 이별은 할 수 없었던 나…
지나간 이별과 상실들을
이제는 하나씩 하나씩 Say good-bye…하며 직면하고 이별합니다.
안녕, 안녕…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찾아낸 것입니다. 

‘사랑은 할 수 있었지만 이별은 할 수 없었던 나’

‘낙엽은 스스로 낙하하여 나무와 이별을 하는데 나는 낙하를 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되자,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들을 이제는 놓아주어야겠구나. 이것이 순리구나’란 마음으로 정리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애경님의 마음 중엔 ‘아, 나는 엄마를 사랑을 할 수 있었지만, 엄마와 이별하는 것이 두려워 이를 외면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바로 심리학자 Robert Fierestone의 ‘우리 자신의 정서적 욕구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마다 양육자와 자신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입니다.

이를 언급한 것은 이애경님이 자신이 심리적으로 홀로서지 못하고 이별을 두려워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은 듯 합니다.

이애경님의 이 글을 정리하면서, 그녀가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자기야, 혹시 내가 먼저 죽으면, 나를 부여잡지 말고 놔줘, 그리고 자기는 자기 삶을 잘 살아” 

둘이서 죽음에 대한 대화를 할 때, 나눴던 이야기들인데…

이 글을 읽어보니 그녀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었군요…

이애경과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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