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27: 시 꽃 등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27번째 선물, 시 ‘꽃 등’입니다. 여기서 등이란 ‘등경’ ‘등불’에서 사용하는 ‘등’으로서 불을 비추는 역할을 하지요. 이애경님은 꽃이 불과 같이 무언가를 밝힌다는 의미로 쓴 것 같습니다. 왜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한 번 마주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애경과 꽃 등

이애경의 꽃 등

방안 깊숙이
어둠 들어오니

열두 달 내내
창가 자리 지키고 있던
산세베리아

어느새
꽃망울 하나하나
터뜨려
온 몸으로 온 방 가득
꽃 향 채우며
불 밝힌다

꽃 등 되어
내 마음도 밝힌다
불 밝힌다

이 꽃 다 져도
마음에 담은 꽃 향은
일 년하고도 열두 해
향기로 가득하겠지

벌써 긴 향수되어
마음의 불 밝히어 간다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향기로 가득히 방을 채우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산세베리아 꽃은 올 해도 꼬박 기다리고 있는 친구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반갑게 찾아와 향기로 말을 걸어줍니다.

다시는 밝아지지 않을 것만 같은 어둠이 내릴 때 소리 없이 향기 가득 채우며 방을 밝히고 또 마음까지 밝혀 주고 있음이 소중하여 지금의 마음을 남겨 놓습니다.

이 친구는 꽃나라에서 일 년에 딱 한 번 찾아오네요.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다보면.. 소리없이 꽃대 오롯이 올라와 피었다가, 어느새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가는 뒷모습에… 이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늘 망설이는 나를 이렇게 홀로 두고 훌쩍 떠나갑니다.

그래도 그대 주변에 머무는 꽃 또는 마음에 유난히 다가오는 그 어떤 단상이라도… 그 때마다 솟아 오르는 나의 마음을 이렇게 적어본다면 매년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또 그 때의 나의 심경은 어떠했는지… 정리가 되겠지요.

나의 내면의 억압과 갈등들을 무의식의 상상력을 동반하여 표현함으로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관조하는 여유를 애써 가져본다면… 오히려 현실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는 훌륭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억 저편에 왜곡과 굴절로 잃어버린 언어들을 마음을 챙겨 하나씩 찾아 시로 정화시키고 이야기로 풀어본다면, 파편으로 조각 나있던 내가 조금씩 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멋진 벗이 되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이애경의 밤의 벗꽃

 

이애경님의 시와 글을 읽으니 이전의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저에게 와서 화분에 꽃이 피었다며 저를 그곳으로 데리고 간 장면입니다.

일반 식물과는 달리 잎사귀인지 줄기인지 구별이 안 되는데 그것들이 매우 두툼해서 ‘우리 나라 식물이 아니네?’란 인상을 주는 식물에서 꽃이 피어있더군요. 그게 산세베리아임을 그때 처음 알았었지요. 

솔직히 그 당시엔 ‘그게 그렇게 상기될 정도로 신기한 일인가’란 느낌도 들었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괜히 신기한 듯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산세베리아는 일 년에 한 차례 꽃이 핀다고 했는데, 실상 그 한 번도 안 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원래는 열대 혹은 아열대 기후의 지방 특히 사막과 같은 척박한 땅에서 뜨거운 태양과 거친 바람 속에 자라나는 식물로, 생존을 위해 몸에 물을 가득 담아 놓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사시사철 온대 기후 상태이고 태양을 지속적으로 쐬지 못하는 그런 집에서 자랄 때는 꽃이 안 피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이를 볼 때 화초 키우기에 진심인 이애경님이 지극 정성으로 화초들을 키웠기에, 산세베리아는 물론이고 선인장 등 각종 식물들도 때가 되면 꽃망울을 피우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와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의 소재는 ‘꽃망울을 피운 산세베리아의 향기’이며 이 향기가 ‘등불이 되어 환히 비춘다’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임을 알아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애경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여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말하고 싶은 것은 또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는 ‘중의적’으로 표현한 시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시를 살펴 보면,

어둠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 향기가 가득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산세베리아의 꽃망울에서 피어난 향기지요. 이 향기를 맡으니 마치 온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입니다. 이 향기가 마치 온 세상을 밝히는 환한 등불과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지요.

그 느낌이 무엇일까 돌이켜 보니 자신의 마음이 청량해지고 환해진 것임을 알아차립니다. 이 꽃 향기가 자신을 이렇게 환하게 한다는 것이 한편으론 신기하고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꽃망울은 언젠가 떨어져 없어질 것임을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향기가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애경님은 이 향기가 ‘일 년하고도 열두 해 향기로 가득하겠지‘라고 했지요. 

이 꽃이 곧 질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그 향기 자체를 마음에 가득 담아 절대 잊지 않으려는 이애경님의 몸부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시의 문구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차적으론 꽃망울이 필 때면 자신의 마음을 환히 밝힐 수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단기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밝히는 것은 또 다른 것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이와 관련 이애경님은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대 주변에 머무는 꽃 또는 마음에 유난히 다가오는 그 어떤 단상이라도… 그 때마다 솟아 오르는 나의 마음을 이렇게 적어본다면 매년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또 그 때의 나의 심경은 어떠했는지… 정리가 되겠지요.’

즉 실제 자신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밝히는 것은 ‘주변에 머무는 꽃 또는 마음에 유난히 다가오는 어떤 단상들을 이와 같이 시를 쓰거나 글을 써보며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 보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잠시 자신의 마음을 환히 비췄다’이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늘 망설이는 나를 이렇게 홀로 두고 훌쩍 떠나갑니다’와 같이 훌쩍 떠나버려 진한 아쉬움이나 슬픔을 느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시와 글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였을 때일 년하고도 열두 해 향기로 가득하겠지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애경님은 다음과 같이 이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지요.

‘나의 내면의 억압과 갈등들을 무의식의 상상력을 동반하여 표현함으로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관조하는 여유를 애써 가져본다면… 오히려 현실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지는 훌륭한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이애경님의 이와 같은 작업을 일종의 ‘시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애경님의 시치료가 일반적인 시치료와 다른 것은 그녀가 말한,

‘이렇게 기억 저편에 왜곡과 굴절로 잃어버린 언어들을

마음을 챙겨 하나씩 찾아 시로 정화시키고

이야기로 풀어본다면,

파편으로 조각 나있던 내가

조금씩 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멋진 벗이 되어주리라 기대합니다.’

와 같이 그녀에게서 시치료란 ‘시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넘어, 숨겨져 있고 흩어져 있던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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