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이애경의 선물35: 꽃과 나비

이번 글은 이애경님의 35번째 선물, 꽃과 나비 입니다. 이애경님은 딸애의 동시를 통해 젊은 청춘들을 위해 용기를 불어 넣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 같군요. 이를 마주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애경의 하나를 잃었을 때

이애경의 꽃과 나비

작시 오서진 어린이

점심 꿀 먹으려고
꽃으로 날아온 나비

이꽃저꽃 여기저기 다니며
맛있게도 꿀을 먹는다.

사뿐사뿐 나는 나비
잡으려고 다가가니

활짝 놀라며
멀리멀리 도망가네.

다음에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만 해야지.

꽃과 나비

 

온 산이 싱그러운 푸르름과 만개하는 꽃들로 가득해지는 5월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 아이 어렸을 적, 답답하던 차에 아이 손잡고 동네길 돌면서 꽃구경하고 돌아와 아이가 동시 쓰기 하도록 도와 준 때가 있었답니다.

그 때 아이가 써 놓았던 동시집을 이사할 때마다 애지중지하며 보물처럼 보관해 두었지요.

어제는 오랜만에 시간이 되어 함께 밥 먹으려 다녀오면서 그 때가 무척 생각이 나 이렇게 아이의 동시집을 꺼내어 읽어보며… 그 중에 하나를 올려봅니다.

그 땐 저의 친정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의 위급한 상황에 있으셨고 그래서 친정으로 달려가 병수발을 조금 오랜 기간 돌봐드리며 회복하여 퇴원시켜드리고 집으로 돌아온 때로 기억한답니다.

이제는 별이 되셨지만…

큰 위기를 겪고 돌아와 긴 투병으로 늘 고생하시는 친정어머니 생각에 무엇으로 이 맘을 위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와 함께 동네 꽃구경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꽃들에게 살짝 앉은 나비 잡으려다 놓쳤던 아이의 마음을 물어 보며 그 때 느낌이 어땠는지 나누며 종이 위에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그 아이가 이제 자라 성인이 되었고 나름 열심히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며…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드네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데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야 할 푸르른 청춘들이여… 아프지 말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 내고 있음을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애경과 노란 꽃

 

이애경님의 글을 보니, 위의 시는 저희 딸애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 쓴 시로 보입니다.

몇 주일 전 딸애가 집에서 엄마 이애경님이 모아 두었던 어린 시절 자신의 사진들과 시집을 찾아서 저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시가 위의 시더군요. 사진첩엔 어린 시절 아이들과 찍은 엄마의 사진들도 다수 나왔는데 딸애가 이를 보물같이 여기고 자신이 관리하겠다고 하였지요.

이애경님 역시 자신과 딸애와의 추억이 가득한 동시집을 찾아내어 읽어보면서 딸애와 함께 동네를 돌았던 기억이 났겠지요. 또한 딸애가 이제 장성하였음을 새삼 느꼈을 것이고, 이애경님의 청춘 시절에 그녀의 성향상 세상이 뭔가 추상적이고 마냥 밝지 만은 않았을 것임을 느꼈을 것이기에 그 때의 심리가 새삼 생각났을 것이며, 요즘 젊은이들은 더욱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환경에 있었고, 딸애 역시 그런 고통 속에서 인내하며 살고 있었을 때였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유명한 문구가 생각나 이를 인용하여 용기를 더욱 불어 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위의 시를 기억한 이유는, 그 당시 이애경님이 딸애의 시를 보여주면서 놀라워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당연히 엄마가 손좀 봐줬겠지’ 했었는데 전혀 아니라고 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시 내용이 어린아이의 어여쁜 감성과 함께 자신의 호기심을 스스로 조절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호기심이 나비에게는 위협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이를 통해 아이의 인성이 점점 잘 형성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이애경님이 딸의 시를 인용해서 위의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젊은 친구들은 물론 딸에게 용기를 북돋는 말을 하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녀 자신도 진짜 이유를 모른 채 마음이 이끌리어 이 글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진짜 이유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애경님의 글 내용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더군요.

바로 돌아가신 엄마가 새삼 생각났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시는 엄마 이애경과 딸 아이가 손을 잡고 풀밭을 거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엄마와 딸의 심리적 교류가 무언가에 가려지거나 막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 시가 밝으면서 편안함을 주는 이유는 아이가 그렇게 느낀 상황에서 글을 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이애경님은 작고하신 엄마와 자신과의 교류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랐을 것입니다. ‘나도 엄마랑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행복한 적이 있었지’ 혹은 ‘나는 엄마랑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네’ 등의 다양한 느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글의 정황 상 후자에 좀 더 가깝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린 시절에 엄마와 이와 유사하게 교류한 기억이 있었다면 바로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갔겠지요.

이애경님은 과거는 어찌했든 마치 이 시를 읽으면서 ‘엄마와 어린 이애경이 함께 꽃구경 가는 장면, 나비를 따라 가는 어린 이애경, 그것을 뒤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의 장면’이 마음 한구석엔 흘렀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이애경님은 이 글을 썼을 때 이런 느낌 속에서 엄마와 자신과의 못내 아쉬웠던 부분들을 채우면서 위로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저의 딸애가 자신의 자녀를 낳았을 때, 언젠가 ‘엄마와 나’와의 깊은 교류의 시간을 어느 순간 연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엄마 이애경은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증명해줄 수 있는 글들과 사진들을 준비해 두었네요. 딸은 엄마와 같이 대리 만족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엄마가 이제 사망하였기에 더 이상 함께 할 시간은 없겠지만, 엄마가 나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글로 스토리화 되어서 이렇게 눈 앞에 증명되고 있으니, 딸애에게는 그 기억은 가물거리지 않고 언제든지 또렷할 것입니다.

인간의 심리는 모두 기억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되기 마련이지요. 특히 인간은 나쁜 기억은 더욱 나쁜 쪽으로 왜곡되어 기억이 잘 나는데, 상대적으로 좋은 기억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결국 ‘엄마와 어린 이애경’의 추억을 회상하고 싶은 이애경님의 무의식이 이 글을 쓰게 한 진짜 이유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엄마와의 추억을 그렇게 그리워하였듯이, 언제가 그런 입장에 있을 딸을 위해 좋은 선물을 남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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