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인 이수복님의 ‘봄비’를 살펴본 내용입니다. 시를 깊이 살펴보니 생각보다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더군요. 이를 잘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학교 당시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로 기억되는 이수복님의 봄비.
비가 그치고 화창하게 햇살이 비추는 날 자연스레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가 저절로 입안에서 나오곤 했지요.
그런데 이 시를 읊조릴 때마다 비온 다음 날의 화창함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감정들이 몰려 왔지요. 그 이유를 잘 몰랐었는데 최근 이 시가 제 눈에 들어와 다시 한번 깊게 음미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를 좀 알겠더군요.
중학교 때는 밑줄짝하면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비가 온 다음 날을 연상하시면서 이 시를 느껴보시면 좋겠네요.
1. 시 전문
2. 시인 이수복님 소개
이수복님은 1924년에 2남 1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교편생활을 하시다가 62세에 학생을 가르치다가 작고하셨더군요. 1954년 ‘동백꽃’이란 시로 문단에 등단하였고 1955년에 ‘봄비’를 발표하면서 현대문학상을 받으셨더군요. 이수복님은 생전에 시집을 단 한 권을 내셨더군요. 1969년 ‘봄비’란 책 제목으로 발간하셨습니다. 사후 2009년에 이수복 시선집이 발간되었습니다.
그럼 이수복님의 ‘봄비’를 좀더 깊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시인 이수복의 봄비 감상
1) 이 비 그치면~
이 문장을 읽으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음은 화창한 봄하늘을 바라보는 듯 합니다.
그런데 시인의 시점에서 보면
비가 오고 있는 상황이지요.
비가 오는 상황에서 비가 그친 이후를 느끼고 있지요.
사실 비오는 날,
빗줄기를 보면서
비가 그친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이를 하려면 좀 더 의식적으로 해야 가능하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상’이라고 합니다.
내담자가 자신의 과거에 일어났던 일과
그 때의 감정을 그 당시로 돌아가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는 시인의 ‘심상’을 통해
자신이 느낀 느낌을 적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심상은 심리상담 과정에서 실행하는
심상과 같을 지 아닌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연상도 일종의 심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연상이라면
과거의 일반적인 경험과 자신의 감정을 합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과거의 경험이란 이전에 비가 그친 봄 어느 화창한 날,
시골 어딘가를 걸어본 경험,
그 경험을 통해 생긴 기억과 자신의 감정이
서로 섞이어 이러한 장면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심상은 지금 ‘강나루 강 언덕’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풀이 물을 머금고 빛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도 일부러 비가 그친 날,
풀이나 나뭇잎에 물을 머금고 있는 장면을 보기 위해
다녀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생명을 품고 있어서
신기하고 참 아름다운 느낌이 들곤 했었는데,
시인은 저와 달리 장면이 ‘서러운’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시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서러운’이란 이 단어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서러운’이란 이 것이 마음을 후벼팠던 것이지요.
화창한 봄날, 풀을 머금고 있는 장면에서
‘서러움’을 느낀 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거든요.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뭔가 건드려진 느낌입니다.
2) 푸르른 보리밭길~
시인의 심상은 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나루 언덕에서 이제 푸르른 보리밭길로 장면이 바뀝니다.
삼월의 보리밭에 이제 제법 올라온 파란 보리밭이 있는 길.
그 길에 종달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심상에 들렸나 봅니다.
시인은 어쩌면 이 장면에 익숙했나 봅니다.
종달새 소리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굳이 시인은 그곳에 있는 생물들을 ‘종달새만’이라고 제한하였습니다.
오직 종달새 한 마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연상하고 있는 것이지요.
맑은 하늘 날, 새 한 마리가 뭐라고 지저귀는 모습.
사실 가끔 시골에서 이런 장면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럼 꽤 외롭고 적막해 보이지요.
대지에 오로지 홀로 있을 때의 느낌.
시인은 처음엔 ‘서러운’이라고 표현했었는데,
이제는 종달새를 통해 ‘외롭다’는 느낌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이 비 그치면 ~
시인의 심상은 다시 시작된 듯합니다.
이제 그의 심상은 고운 꽃밭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봄에는 꽃망울이 아직 피지 않은 상태일 수 있는데
그의 심상에는 환하게 꽃이 벌어진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꽃밭에 처녀들이 짝을 지어 서 있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앞에서는 뭔가 장면이 환함 속에 ‘서러움’, 밝음 속에 ‘외로움’이 떠 오르는데,
이 연에는 처녀들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
어쩌면 그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고 있는 것이지요.
4) 임 앞에 타오르는~
아, 그런데 그의 심상은 갑자기 바뀌어 버립니다.
앞에서 처녀들이 있는 장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매우 어색합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라고 표현하지,
‘타오른다’라고 표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뭔가 강렬한 무언가가 숨겨진 듯합니다.
그래서 앞의 내용 중, 향연이란 단어를 바라보며
이 때의 장면을 연상해 보았습니다.
어느 장례식장 영정사진이 보이고
그 앞에 향불이 향냄새를 내며 타오르는 장면이 연상되더군요.
그 영정사진의 주인공이 시인의 임일 수 있는 것이지요.
시인은 임이 사망하여 황망하고 슬픈 마음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이며,
비오는 어느 봄날 그 임이 생각난 가운데,
어쩌면 임과 함께 거닐었던 장면들과
그의 감정이 서로 합쳐진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시 종합
이 시는 봄의 향긋함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봄 어느 날 잃어버린 임을 그리워 하며 쓴 시라는 것이지요.
오랜 시간 앞부분만 읊조리다 전문을 보니 저 역시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수복님에 대한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에 대한 배경이 나오더군요.
1950년 대 초반 즉 그가 30살 전후 시절에 그가 사귀었던 어느 여성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기로 한 사이였더군요. 하지만 그녀는 급작스레 사망하였더군요.
이 시가 1955년에 발표되었으니 그 이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도 1955년 봄에 이 시를 쓰고 첫사랑이 떠난 시점은 몇 년 앞이었을 것입니다.
이를 보면 처녀들이 꽃밭에 있을 때 시인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고
어쩌면 시인은 그 처녀들을 사진 찍어 주었을 것 같더군요.
한편으론 이 시를 발표한 후 시인 이수복은
그녀와의 이별식을 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즉 이 시를 쓰면서 이전까지 그녀에게 매여있는 마음이 한결 풀어지며
그녀를 놓아줄 수 있었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이 시는 그녀를 향한 그의 마지막 추모사가 되겠지요.
5. 정리 및 소감
시인 이수복님의 ‘봄비’.
그의 봄비는 심상의 봄비였습니다. 마음이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는지 그 마음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지요.
그를 통해 자신의 맺힌 아픔을 풀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를 이렇게 풀어 보니, 시인이 참 부럽네요.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치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음의 연금술사인가 봅니다.
이와 관련 비슷한 장르의 시를 더 살펴보길 원하신다면
이전에 썼던 마음을 치유하는 시, 시인 김남조의 그대 있음에 한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핑백: 김용택 시인의 봄날_'꽃 구경 가자'란 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