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애정하는 영화배우 이선균님을 애도하고 추모하기위해 제 마음을 담아 작성하였습니다.
오늘 인터넷에서 갑자기 영화배우 이선균님의 비보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웠지요. 그러다 참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알게 되었을 때 연기자 이선균과 등장인물 ‘박동훈’과 서로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동일화해서 보았었고, 그 다음에야 이들을 서로 분리해서 ‘이선균’이 누구인지 찾아 보기 시작했었지요. 그 이후 ‘검사내전’ 등 그의 작품들을 하나 하나 보면서 그를 알아 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연기스펙트럼이 넓었기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이선균님을 보면서 배우 이선균을 좀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기자의 역할은 자신의 자아에서 전혀 없었던 것을 창조하기 보다는 일부분을 끄집어 내어 좀더 극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저씨와 같이 회사와 집안 안팎의 고난을 잘 참아내는 것도, 파스타에서처럼 겉은 냉정하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기생충의 박동익의 모습도 그의 한 모습일 수 있으며, 그가 젊은 시절에 TV드라마시티에서 자주 보여 주었던 ‘껄렁껄렁한 모습’도 그의 내면에서 꺼내온 모습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선균님에 대해서 한 인간으로서 애정의 마음도 싹이 텄던 것 같습니다.
올해 언젠가부터 그와 마약을 연관짓는 소식들이 들려 왔을 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선균이라면 혹시 젊은 시절의 철없는 모습이 나올 수 있지만, 그렇다고 법을 어길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나이들어 혹시 가정에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그가 자신을 제대로 추스리고 정상으로 돌아오려 할 때, 기꺼이 기다려 줄 뿐만 아니라 그를 지지해 주겠다란 마음이 생겼었지요.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은 저의 맹목적인 마음이기 보다는 심리상담을 하면서 자주 목격했던 인간의 연약함과 인간이 저지르는 다양한 잘못들. 그것들에 대한 원인을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서만 찾고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란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누군가와 인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이선균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선균님이 그 사건의 주모자에게 상당액수의 돈을 보냈을 때, “그 당시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였지요.
만약 분노였다면, 상대방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을 정상적으로 돌리도록 노력했을 것입니다.
만약 두려움이었다면,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았거나 자신의 존재 혹은 소중한 그 무엇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커다란 위험을 느꼈다는 뜻이 됩니다.
만약 슬픔이었다면, 자신의 소중한 대상이 자신을 떠났거나 나란 존재가 무의미하거나 가치가 없어지는 상황에 놓였음을 느꼈다는 뜻이 됩니다.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 혹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지요.
오늘 그의 소식을 듣고 한동안 제가 느꼈던 감정은 ‘애통함’과 더불어 ‘비참함’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서 그가 죽게 된 것을 방조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지요. ‘혹시 내가 도우려고 했다면…’이란 생각이 제 마음을 눌렀습니다,
또한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이선균님이었으면 나도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리고 그 대답은 “예스… 아마도”였지요.
다시 스스로 자문해보았습니다. “적어도 나는 종교가 있고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인데?”
이 질문을 하니까 더욱 선명하게 그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염려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영화계를 떠나서 살 수 있어. 힘들긴 하겠지만 그건 참을만 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
만약 수입이 없어지는 것이 염려됐다면, “현재까지 모아놓은 돈으로 살다보면 뭔가 요량이 생기겠지”
그런데 “가족의 눈초리가 나를 원망하고, 나로 인해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다면”이란 생각에 제 마음이 요동쳤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가족들이 나를 경멸하듯 쳐다보거나, 나로 인해 나의 가족들이 많은 피해를 받아야만 한다면, 나도 그땐 죽을 수 있겠단 마음이 들더군요.
이때 제 마음에 들었던 감정은 바로 “절망감”이었습니다. 절망감은 사방이 완전히 막혀 버려 출구가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요. 저에겐 다른 것들은 괜찮은데 가족의 눈초리와 가족의 피해가 함께 닥친다면 그땐 그 감정이 시키는 대로 나 역시 결단을 내릴 것 같더군요.
그는 거짓말탐지기로 조사하자고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엔 이미 ‘절망감’이 자리잡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출구인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낀 것이지요. 아마도 그 마지막 결정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었을지도요.
이선균님의 마지막 결정이 어쩌면 절망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결정과 같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런 상황을 나중에 마주할 사람들의 결정일수도 있으며, 거기엔 어쩌면 나 자신도 포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 역시 이런 심리속에 빠질 수 있다란 것과 그런 심리에 빠지면 자칫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음을 미리 알아차린 것은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내가 애정하던 사람, 이선균님이 떠났습니다.
임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이 글을 쓰며 깊이 추모합니다.
임의 유족들에게 위로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한동안 영상에서 그가 눈에 띄었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할 것 같네요.
먼저, 하늘의 별이 된 이선규님을 애도하며 하늘에서나마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또한 남은 유족들에게도 큰 위로와 또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주어지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감정’을 중심으로 그의 마음을 표현해주시니 더 마음에 와 닿아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뉴스에 비친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서리낀 안경 너머 비친 그의 눈빛은 정말 끝없는 후회와 절망감이 진실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극단의 선택을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드니 정말 애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한편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과거 그토록 멋진 프로포즈를 받고 눈물흘렸던 아내가 현재의 남편으로부터 배신감을 느꼈을 때의 절망감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물위로 떠오른 이번 사건에 대해 중요한 것은, 현재 벌어진 사건을 어떤 시각에서 해석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때일수록 서로 얼마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있는지가 매우 의미있어 보입니다.
또한 부부가 서로 반대의 입장에서 아내는 남편의 신을 신어보고, 남편은 아내의 신을 신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 그 무게감을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무엇보다 공인인 연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극한의 직업인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모든 카메라가에 큐 사인이 떨어지고 오롯이 홀로 서서 세상에 발가벗겨진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라는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해 내는 전사!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온저히 쉬고 싶은 한 나약한 사람! 이 두 양면의 겝을 어찌 할 바 몰라 한 쪽 발은 윤리 저편에 나도 모르게 발을 디디고 서있는 고통스러운 전사!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이렇게 표현하니 넘 마음이 아프네요.
이제 더 이상 고통의 옷을 훌훌 벗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영상에서 경찰청에 오고 갈 때의 예의바르면서도 지쳐있는 그의 모습을 저도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모습이었지요. 이제 고인이 되었기에 그의 새로운 모습을 이 땅에선 볼 수 없겠지요.
그가 남긴 많은 영상들이 있음은 위안이 되네요. 영면이란 말을 쓸 때 이 땅에서 지쳤으니 편히 쉬라는 말로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직까진 참 쓰기 어렵네요. 이땅에 있었을 때 좀더 마음을 쉬게 하고 자신을 진정시키며 스트레스를 줄일 수만 있어도 여전히 살아있을텐데 하는 마음에 매우 아쉽고 아프고 하네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핑백: 나의 아저씨 대사 속 심리이야기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