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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란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어린이날이 되면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날아라 새들아 푸른 저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저 들판을…’이란 어린이날 노래와 함께 무의식적으로 제 머리에 맴도는 시입니다. 더욱이 무언가 함축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위의 문장은 저의 마음을 더욱 끌리게 하는군요.

이 시는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문장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윌리엄 워즈워스란 이름이 이 시의 제목 ‘무지개’와 함께 자동적으로 나오지만, 처음 이 시와 제대로 대면하기 직전에는 국어 시간에 배웠던 몇 개의 단어만이 머리 속에서 너울거렸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

그런데 왜 그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을까요? 표현에 대한 의미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그의 시 ‘무지개’를 함께 음미해볼까요?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

 

 

1.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 시 전문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 시 전문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 시 전문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 시 원문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 시 원문

 

 

2. 시인 워즈워스의 어린 시절

이 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어린 시절을 조금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인은 영국 북부의 호수 지방 컴벌랜드 코커머스에서 자라났습니다. 다섯 개의 큰 호수와 수많은 작은 호수들로 이루어진 곳. 파란 하늘과 푸른 대지로 이루어져 있는 곳.

그곳을 지나려면 굽이굽이 작은 길을 가야 한다고 하는군요.

그는 사실 8살에 어머니를, 1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맙니다. 다만 그의 친척들이 그를 끝까지 봐준 것으로 봐서 경제적으론 어려운 삶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물질이 따르는 곳엔 마음도 따를 수 있으니 친척들의 마음 씀씀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소년에겐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 어린 워즈워스의 외로운 마음을 채워 주었던 것은 자연의 대지였던 것 같습니다.

 

시인 워즈워스의 어린 시절
시인 워즈워스의 어린 시절

 

3. 자연은 시인의 내면을 어떻게 채워주었을까?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목동인 주인공이 자연 속에서 그의 마음을 순화하였고, 나중엔 골리앗을 물리쳤던 어린 목동 다윗도 자연의 대지 속에서 위로를 받았듯이, 어린 워즈워스 역시 호수와 들판, 숲을 거닐 때 그의 마음은 위로의 시간을 너머 자연의 신비로움, 역동성, 포근함 속에서 내적 기쁨을 마음 속에 쌓아 가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알퐁스 도데도, 다윗도 그랬듯이 자연 속에서 그의 내면에는 감수성이 채워졌을 것이며 나중에는 이를 시로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자연의 아이’라고 칭했는데 그는 자연 속에 있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 같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엔 ‘어린이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흔히 내 안의 어린아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요. 

워즈워스가 어른이 되어 이 시를 썼을 때 그의 ‘어린아이’는 여전히 자연의 신비로움, 역동적이고 포근함에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그의 어린아이는 ‘자연’이란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자라났으며 그 내면의 세계를 시로 표현하면서 더욱 그의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였을 것이기에, 그의 ‘어린아이’는 어린 시절의 불우함에 갇혀 있지 않고 점점 건강하였을 것이고, 그러하기에 그의 ‘자아’ 역시 건강하게 자랐을 것으로 여겨지는군요.

 

자연은 시인의 내면을 어떻게 채워주었을까?
자연은 시인의 내면을 어떻게 채워주었을까?

4. 시를 쓰게 된 시인의 심리적 배경 탐색하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왜 이런 표현이 가능했을까요?

그는 무지개 등 자연을 보면서 그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자연을 통해 채운 것은 그의 내면입니다. 그 내면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자연 그 자체를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세상에 나가서 보았던 사람들의 마음은 그 내면이 순수하게 채워지지 않고 뒤틀려 있는 그 무엇을 발견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 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그는 ‘어린이는 어른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지 않고 ‘아버지’라 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의 유년시절의 어머니의 기억이 매우 짧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의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은 의 마음을 채우는 커다란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 아버지는 자연과도 같은 존재이자 자신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 그런 존재로 기억된 것 같군요.

그가 이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내면의 어린아이가 건강하였기 때문이고, 자연이 보여 주는 그 무엇을 내면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예상되는군요.

또한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까움이 크지 않았을까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5. 정리 및 소감

이 시를 다시 접하고 있는 저의 나이는 워즈워스가 시를 썼던 20대 후반인 나이의 두 배쯤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나의 내면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란 자문이 먼저 됩니다.
그리고 나의 내면은 무엇을 보고 느낄 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자문해 봅니다.

또한 예수께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갈 수 없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 시를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서,

아…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이 뛴다’가 죽는 그 날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봅니다.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란 시에서”의 1개의 댓글

  1. 핑백: 박목월의 시1_가정_아버지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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