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수학에서 나오는 수와 관련된 개념을 통해 인생을 통찰해고자 하는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외로운 소수를 품어주는 세상입니다.
수학 내용 중 소수와 합성수란 내용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에 나오는 중요한 수학 개념이지요.
1. 소수의 개념
소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수점과는 전혀 다른 용어로서 그 의미는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2 이상의 자연수를 말하지요.
예컨대
2, 3, 5, 7, 11, 13, 17, 19, 23,29, 31…
등이 있고 백의 자릿수나 천의 자릿수와 같이 제법 큰 수에도 소수들이 존재합니다.
이에 해당되는 수는
101, 103, 107, 109, 113, 117 ……
1001, 1003, 1007, 1009, 1111, 1113…….
10001, 10003….. 11111…….
등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다른 수로도 나눠지는 자연수를 합성수라고 부릅니다.
4, 6, 8, 9, 12, 14….
등은 합성수에 해당되지요.
즉 소수란, 오직 1과 자기 자신으로 만 나눠지는 수, 실제 다른 어떤 수로는 나눠지지 않습니다.
수학에서 무엇에 의해 나눠진다는 것은 그 나누는 대상을 품을 때 가능합니다.
예컨대 12란 숫자는 2, 3, 4, 6으로 나눠지는데, 이 숫자들은 모두 12의 약수로서 12가 품고 있는 숫자들입니다.
결국 소수는 품은 것이 없기에 나눠지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품은 것이 있는 합성수는 나눠지는 것이지요.
2. 공약수와 서로소
이런 소수의 상태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공약수와 서로소이지요.
공약수란 두 개 이상의 수들이 각각 품은 수들을 비교하여
같은 것들이 있을 때 그것을 공약수라고 하죠.
예컨대, 12와 8의 관계를 보면,
12는 6, 4, 3, 2를 품고 있고
8은 4, 2를 품고 있습니다.
12와 8은 4와 2란 공약수가 존재하고 이들은 서로 같은 것을 품었기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수가 서로 품은 것이 없을 때 그 관계를 서로소라고 합니다.
서로 공감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
26과 27은 어떨까요?
26과 27은 모두 합성수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26과 27은 서로소에 해당되지요.
26의 약수는 2, 13, 26이라면
27의 약수는 3, 9, 27 입니다.
공약수가 존재하지 않는군요.
이들 역시 서로 같은 것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게 다르니 함께 하기 곤란한 존재들이군요.
그래도 이 숫자들은 다른 수와는 공약수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26은 28과는 공약수를 만들 수 있으며, 27은 24와 공약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같은 것을 품을 수 있는 대상을 만나면 서로 통하며 살아갈 수 있겠지요.
그러면 소수는 다른 숫자와 공약수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소수란 숫자는 애초에 자신이 품은 것이 없기에
남들과 서로 공유하고 공감할 것이 아예 없게 되는 것이지요.
3. 인간 세상의 소수
소수가 만약 인간 세상에 그대로 적용되면 어찌 될까요?
아마도 홀로 있는 존재, 독야청청한다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가 연상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들과 섞일 것이 없는 존재란 뜻이지요.
그 이유는 남들과 서로 품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누구와도 공유할 것이 없습니다.
공유할 것이 없으니 누구와 관계 맺을 수도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 같을 수도 있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같을 수도 있겠지요.
마치 광야에 나 홀로 있는 한 마리의 호랑이로 표현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한 마리의 고고한 학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혹시 너란 사람과 나란 사람이 인간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공통되고 공감할 것이 없다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각자 독야청청하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요?
4.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
이 세상은 많은 수들의 모임입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옆에 있거나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모두
자기 고유의 수가 있습니다.
이 수와 저 수들은 저마다의 약수가 있듯이
이 사람과 저 사람은 각기 자신이 품은 수들이 있습니다.
품은 수가 서로 같을 때 우리는 서로 공통된 점이 있다고 하며, 서로를 공감한다고도 합니다.
삶은 공생의 관계입니다. 서로 공통이 있을 때 공감이 되므로 진정한 공생이 가능하지요.
만약 인간이란 것 외엔 서로 공통된 것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일 땐 항상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입니다.
두드리고 쪼아서 뭔가의 공통을 찾으려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바램일 뿐 실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수란 숫자가 남들과 서로 소의 관계를 맺지 않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수가 소수의 배수가 되는 것입니다.
소수의 배수인 숫자는 그 소수를 품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7이란 소수를 품은 배수는 14, 21, 28… 이 있습니다.
이 수들은 7을 품고 있기에 서로소의 관계가 아닙니다.
외로운 늑대와 같은 소수(예를 들어 7) 이러한 존재를 품으려면,
그를 수용할 수 있는 배수(예를 들어 14,21,28)가 되어야 가능하단 뜻이 됩니다.
이 세상엔 외롭게 있는 소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진정 품기 위해서는 그들의 배수가 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습니다. 어쭙잖게 품어 주려 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린 이런 현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동물들.
이들도 그 누군가가 품어 주다가 이젠 버려진 존재들입니다.
비단 동물뿐이겠습니까, 사람도 그렇게 버려진 존재들이 많이 있지요.
외로운 존재들, 상처투성이인 존재들.
이런 존재들을 품을 수 있는 곳이 진정한 사회이지요.
또한 내가 어느 누구의 배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5. 소수가 되기 쉬운 기질성향
이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소수가 되는 경우이지요.
아래의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위의 사람은 기질적으로 내향형과 사고형, 실제형과 결과추구형이 모두 높아 오로지 하나의 기질만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어느 방면에서는 천재적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면 외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노출될 수 있는 사람이지요. 한 마디로 성향 자체가 도드라지게 뾰족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떤가요?
이 사람의 주 기질은 앞의 사람과 같이 내향형과 사고형, 실제형과 결과추구형으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보조기질들도 여러 개를 가지고 있지요. 자신의 다양한 기질을 그 상황에 따라 맞추기가 더욱 용이합니다.
비록 앞의 사람같이 한 방면에 뛰어나지는 못할 수 있어도 다양한 상황에 맞춰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지요.
하나만의 기질성향이 있는 사람은 자칫 타인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주 심리적으로 소외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넓이를 확장시키지 않으면 자꾸 고립될 수 있으며,
이러한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은 그의 성향이 그러함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이것 역시 서로를 품어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6. 정리 및 소감
비단 기질성향만 그렇겠습니까!
인간 누구나 스스로 타인과 함께 하지 못하고 스스로 서로소가 되거나 아예 소수가 되어 버리는 경우들이 있지요.
바로 스스로를 심리적 골방에 가두거나 타인을 밀어내거나 하는 심리상태에 빠질 때입니다.
심리상담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지요.
이를 저는 심리적 뒷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앞면 상태에서는 괜찮은데 뒷면 상태에 빠지면 누구나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이러한 상태에 오래 머물지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겠지요.
인간의 심리적 문제는 결국 관계의 문제를 낳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좀 더 깊게 살펴볼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심리란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이란 글을 추천해 드리고 싶군요.
이를 잘 살펴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군요.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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