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전 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팔복의 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이어서 마태복음 5장 5절의 말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마태복음 5장5절의 단어 의미 파악
A:
마태복음 5장 5절의 중심단어 ‘온유’ ‘땅’ ‘기업’에 대해 원어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며 어떤 뜻을 포함하고 있나요?
B:
이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인 “온유,” “땅,” 그리고 “기업”은 각각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 온유 (πραεῖς / 프라에이스)
- “온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πραεῖς (프라에이스)는 온화함, 겸손함, 그리고 자제력을 포함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 이것은 단순히 약하거나 소극적인 것을 뜻하지 않고, 자신을 통제하며 상대를 품으려는 강한 내적 힘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 예수님께서 온유를 복으로 삼으신 것은 이런 내적 태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② 땅 (γῆ / 게)
- “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γῆ (게)는 일반적으로 물리적 땅, 토지, 또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 그러나 유대적 배경에서는 이 표현이 약속의 땅, 즉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상속지의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 이 구절에서는 단순한 물리적 재산 이상의 영적 상속이나 축복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③ 기업 (κληρονομέω / 크레로노메오)
-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동사 κληρονομέω (크레로노메오)에서 왔으며, 이는 “상속하다” 또는 “유업을 받다”는 뜻입니다.
- 이 단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땅을 유업으로 받은 것을 연상시키며, 신약에서는 천국의 영원한 유업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기업은 하나님의 축복과 영원한 나라를 상징합니다.
2. 온유한 자란
A: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하셨을 때 그 앞에는 갈릴리 지역의 사람 중 하층민들이 주로 모였을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란 말을 했을 때, 그들은 그 말의 뜻을 자신의 상황에 맞춰 직관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온유한 자’는 너무 추상적이지 않으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온유한 자는 누구일까요?
B: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하실 때, 갈릴리 지역의 청중은 주로 농민, 어부, 그리고 로마 제국의 사회적 구조 속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하층민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일상에서 어려움과 억압을 경험하며 살아갔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삶과 현실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했을 때, “온유한 자”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1)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대조로서의 온유함
그들이 이해하는 온유함은 아마도 로마의 권력이나 부유한 상류층의 가혹하고 억압적인 태도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약자를 존중하고, 자신의 힘을 겸손하게 사용하며, 억압 대신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2)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순종으로의 온유함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권리나 욕망을 주장하기보다는 겸손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했을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그들의 일상에서 물질적 부족과 억압을 견디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3) 일상 속의 품성과 태도로서의 온유함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온유함”은 다가가기 어려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실제적인 태도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분쟁을 피하고, 이웃과 협력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온유함으로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온유함은 단순히 성격적 부드러움이 아니라, 인내와 배려를 포함한 행동적 특성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로서의 온유함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은, 로마 제국의 권력 아래 살고 있던 그들에게는 큰 희망과 약속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물리적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롭고 정의로운 나라에 대한 영적 유업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억압받는 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계획 아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청중이 이해한 “온유함”은 단순히 세속적 성공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태도였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웃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도록 도전을 줍니다.
4. 온유한 자의 예시
A:
앞에서 제시한 4가지의 온유한 자와 관련 성경에서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B:
앞서 제시한 내용과 관련된 “온유한 자”의 특징을 가진 성경 속 인물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들은 각각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대조,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순종, 일상 속의 품성과 태도, 그리고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에서 온유함을 실천한 사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대조로서의 온유함
- 요셉: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렸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힘을 복수에 사용하지 않고, 형들을 용서하며 가족을 구원하는 데 힘을 사용했습니다(창세기 45장). 그의 삶은 억압을 넘어 평화를 이루는 온유함을 잘 보여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순종으로서의 온유함
- 사무엘: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백성을 다스렸지만, 모든 결정을 하나님께 맡기며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습니다(사무엘상 3장).
- 모세: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겸손의 본보기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나 권리가 아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이스라엘을 이끌었습니다(민수기 12장).
(3) 일상 속의 품성과 태도로서의 온유함
- 룻: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하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충실하고 헌신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보다 가족의 생존과 행복을 우선시하며, 고난 속에서도 인내와 배려를 보여주었습니다(룻기 1-2장).
-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롯과의 갈등 속에서도 분쟁을 피하고,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한 일이 있습니다. 이는 그의 평화롭고 온유한 성품을 드러냅니다(창세기 13장).
(4)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로서의 온유함
- 하박국: 하박국 선지자는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온유한 자세로 믿음을 유지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라는 유명한 말씀을 통해 그는 하나님께서 결국 정의를 이루실 것임을 믿으며 소망을 가졌습니다(하박국 3:17-19).
- 바울: 바울은 선교의 여정을 통해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겪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소망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고백하며(고린도후서 12:9), 억압받는 자들에게 희망을 전했습니다.
(5)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 성경속의 인물 예
A:
위의 네 가지 조건을 and조건으로 모두 만족한 사람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B:
요청하신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인물은 성경에서도 드물지만, 그래도 특정 인물이 떠오릅니다. 다음은 각 조건을 만족하는 성경 속 한 인물을 제안해봅니다:
① 기준 정리
1_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대조로서의 온유함: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힘을 온유하게 사용하는 사람.
2_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순종으로서의 온유함: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며 겸손히 행동하는 사람.
3_ 일상 속의 품성과 태도로서의 온유함: 평화롭고 배려 깊은 일상의 태도를 가진 사람.
4_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로서의 온유함: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소망을 전하는 사람.

② 온유한 자의 대표인물: 모세
모세는 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각 조건에 부합하는 모습으로 빛을 발했습니다.
1)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대조로서의 온유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강력한 리더였지만,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으며 항상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민수기 12장에서 “온유한 자”로 불릴 만큼, 힘을 통해 억압하거나 자기 욕심을 채우는 대신 타인의 유익을 추구했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순종으로서의 온유함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겸손히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3) 일상 속의 품성과 태도로서의 온유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불평과 반역을 일삼는 상황에서도, 인내하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백성을 섬기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4)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로서의 온유함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한 소망을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심어주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으며 백성을 희망으로 이끌었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의 모습과 완벽히 부합하며, 그의 삶은 우리에게 온유함의 모델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모세를 민수기 12장 3절에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겸손한 리더십과 인내는 모든 시대의 신앙인들에게 도전을 주는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6) 역사속의 온유한 자 예
A: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아닌 역사적 인물로서 위의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인물이 있나요?
B:
역사 속에서도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먼저 떠오르네요.

①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
-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대조로서의 온유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종식시키기 위해 싸웠지만, 폭력이 아닌 화해와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순종으로서의 온유함: 그는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위해 겸손히 투쟁하며, 자신의 삶을 인류애와 평화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 일상 속의 품성과 태도로서의 온유함: 만델라는 감옥에서의 긴 세월 동안에도 인내와 배려를 잃지 않았으며, 석방 후에도 화합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로서의 온유함: 그는 남아프리카 국민들에게 평등과 화합의 희망을 심어주며, 전 세계적으로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② 테레사 수녀 (Mother Teresa)
-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한 대조로서의 온유함: 테레사 수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며, 자신의 영향력을 약자를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순종으로서의 온유함: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겸손히 봉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 일상 속의 품성과 태도로서의 온유함: 그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며, 모든 사람을 존중했습니다.
- 희망과 약속의 메시지로서의 온유함: 그녀는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과 봉사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인물들은 각기 다른 시대와 상황 속에서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며, 온유함과 겸손,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5.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
A: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었던 사람들은 유대인들로서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땅을 기업으로 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그들의 땅은 대대손손 기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희년’이란 제도에서 보면, 땅을 팔더라도 그 땅은 원주인의 후손들이 먹고 사는데 근간이 되는 땅이기에 희년이 될 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들었을 것 같고, 예수님도 이를 바탕으로 이 말씀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B:
지적해 주신 배경은 매우 중요한 맥락을 제시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을 때, 그 앞에 있는 유대인 청중들은 분명히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율법적 개념 속에서 이 말씀을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게요.
(1) 가나안 땅과 하나님의 약속
유대인들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물려받았습니다(창세기 12:7, 15:18). 이 “땅”은 단순한 물리적 영역을 넘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청중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기업으로 삼았던 역사를 깊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의 기업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들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2) 희년의 제도와 땅의 의미
레위기 25장에 기록된 희년 제도는 땅의 소유권에 대한 매우 특별한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땅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이었으며, 희년이 되면 경제적 이유로 빼앗기거나 팔린 땅이 원 소유주에게 반환되었습니다. 이는 땅이 단순한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와 생계를 이어가는 기초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청중은 이 제도를 통해 “땅”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회복하시는 축복의 상징으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3) 온유한 자와 땅의 영적 의미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물리적 토지를 넘어서는 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전체를 보면, 천국의 가치와 영적인 축복에 대한 언급이 지배적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함과 겸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축복을 가르치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듣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는 가나안 땅과 희년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회복과 약속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4) 당시 로마 시대의 억압 속에서의 맥락
예수님의 청중은 로마 제국의 억압 아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땅은 농업 경제에서 생존의 핵심이었지만, 대부분의 땅은 부유한 소유주나 로마의 권력자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었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단순히 미래의 천국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억압받는 이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개념을 사용하셔서, 온유함이라는 영적 덕목과 땅이라는 상징적 약속을 연결하셨습니다. 이는 듣는 이들이 그들의 율법적 전통과 조상들의 경험에 기반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천국의 더 깊은 영적인 진리를 소개하려는 의도였다고 생각됩니다.
6. 디아스포라와 땅을 기업으로 받다
A:
사실상 예수님께 이 말씀을 들은 청중들 중에는 아마도 아무도 물리적인 땅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디아스포라를 통해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이 사람들 중에는 온유한 자가 없었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말씀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다’를 좀 더 재해석해 본다면 어떨까요?
B:
말씀처럼,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당시의 청중들 중 그 누구도 실제로 물리적인 땅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이 없다는 점은 매우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지적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을 더 깊고 영적인 차원에서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디아스포라로 인해 흩어지고 고난을 겪었던 유대인 청중들에게 이 말씀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땅의 영적 재해석
땅은 성경에서 물리적 자산 그 이상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징이자, 하나님의 복과 임재를 경험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리적인 땅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더 깊은 영적 유업에 대한 시각을 열어주셨습니다(마태복음 6:10). 따라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며 그분의 평화와 정의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디아스포라, 땅을 기업으로 받다
디아스포라로 인해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진 상황에서, 이스라엘 땅은 물리적으로 멀어졌지만, 그들의 신앙은 오히려 땅의 개념을 영적인 것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어려움과 흩어짐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영적인 유업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해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땅은 더 이상 단순히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평강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상태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3) 온유함과 관계된 천국의 가치
온유함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 가치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그들이 주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삶의 태도를 요구합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며 억압과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는 자세
-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는 태도
- 힘을 소유했더라도 그것을 겸손하고 평화를 위해 사용하는 삶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청중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단순히 물리적인 땅의 회복이 아닌 하나님의 정의, 평강, 그리고 그의 나라에서의 삶을 약속하는 위대한 메시지입니다.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속에서도,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이 말씀은 온유한 자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 보니, 땅이란 결국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주기도문의 말씀, “주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옵시며”라는 간구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온유함’이 아닐까요?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친화력, 그리고 대중을 이끄는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온유함 앞에서는 모두 무력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듭니다. 온유한 자는 자신의 힘을 억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적 유업을 상속받는 자들이며, 그 삶 속에서 평화와 사랑을 이루어갑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어떠셨나요? 온유함이라는 덕목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 나누며 더 깊이 묵상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