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예수이야기 첫번째로 예수님이 누구인지와 그의 행적을 증거한 4복음서의 저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어떠한 사람인지와 예수님의 출생과 사망 및 부활시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4복음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이스라엘 역사와 특히 예수님의 탄생 이전에 이스라엘을 분봉왕으로 통치하였던 헤롯왕, 성경의 암흑시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신약에서 시기별로 볼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들
성경 누가복음 1장 5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개역개정)
이 내용은 4대복음서에서 오직 누가복음만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헤롯왕, 사가랴, 엘리사벳이 되지요.
이 말씀의 시점은 대략 BC 5~6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사가랴와 엘리바벳은 세례 요한의 부모님이지요. 그런데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인물은 유대 헤롯왕이며 그 시대의 배경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시대의 배경과 직접 관련이 되지요.
또한 4복음서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면 그 만큼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이스라엘 역사와 특히 헤롯왕을 통한 예수님과 직접 관련되는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 이스라엘 역사 흐름과 헤롯왕
1. 흐름별 주요 인물 및 내용 살펴보기
(1)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이란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아들 이삭을 낳았고 이스마엘 등 여러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들은 대부분 어느 지역의 조상들이 됩니다.
(2)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과 에서를 낳습니다. 에서가 장자이지만 이삭의 정통성을 잇지 못합니다. 야곱은 12아들을 낳습니다. 또한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습니다. 12아들은 곧 이스라엘의 12개의 부족이자 지파가 됩니다.
(3)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요셉이 있었던 이집트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야곱이 이집트에 들어가는 기간과 그 이후 노예생활을 한 기간을 합치면 430년 정도가 되지요. 그 이후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큰 민족을 이룬 상태입니다. 이때가 약 BC 1400년 즈음으로 추정됩니다.
(4)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40년간 지냈던 이스라엘인들은 여호수와와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와 그곳에 살았던 가나안 원주민들과 싸워 그곳을 차지합니다. 이때의 국가구조는 12부족으로 이루어진 부족연합체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는 부족연합체의 대표를 사사(판관)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서는 사사기(판관기)에 사사(판관)들의 활동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기간이 약 180년 정도 됩니다.
(5)
지도자가 사사에서 왕으로 바뀌며 이스라엘이란 왕정국가가 시작됩니다. 사울왕의 통치가 시작되었는데 BC 1020년 즈음입니다. 그 이후 다윗왕, 솔로몬왕이 통치를 합니다.
(6)
솔로몬왕이 사망한 이후 통일 이스라엘은 두 국가로 나누어집니다. 이때 12개부족(지파) 중 북쪽에 위치한 9개의 부족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북이스라엘을 만듭니다. 또한 남쪽에 위치한 유다와 베냐민 2개 지파와 제사장역을 한 레위 지파는 남유다로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7)
북이스라엘은 BC 931년에 시작해서 19명의 왕이 재위했으며 BC 722년에 앗시리아(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앗시리아의 포로로 끌려갔으며, 일부사람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의 배려로 남유다로 귀화했습니다.
또한 험한 지역에 주로 살았던 일부 사람들은 앗시리아의 영향권이 아니었으므로 그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산악지역에 가까운 갈릴리 북부지역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등 북이스라엘 전역에도 사람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이 당시 앗시리아는 다른 나라를 정복했을 때 혼혈정책을 썼기에 앗시리아로 끌려간 사람들은 혼혈화가 되면서 끌려간 지역의 사람들로 동화됩니다.
또한 북이스라엘에 남아있었고 앗시리아의 통치를 받아야 했던 사람들도 앗시리아가 해당지역에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북이스라엘 지역으로 옮겨 혼혈정책을 썼습니다. 이들 역시 혼혈화되어 타민족의 문화와 종교들이 들어왔습니다. 다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종교가 우세하였습니다. 다만 문화와 종교가 타민족의 것과 혼합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도 문화와 종교도 혼합되므로 정통성을 잃은 것이지요. 이때 북이스라엘에 남아 혼혈화된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8)
남유다는 BC 931년부터 21명의 왕이 재위했으며 BC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포로로 끌려갑니다.
(9)
남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지역으로 포로로 갔을 때는 바벨론제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바벨론은 앗시리아와 달리 혼혈정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제국은 메디아-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멸망당했으며, 메디아-페르시아제국은 페르시아인들이 메디아인들을 제압함으로 페르시아제국이 됨으로 사실상 페르시아제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성경에서는 메디아를 메대, 페르시아를 파사라고 적었습니다.
(10)
페르시아제국은 당시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을 자신의 원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남유다 사람들도 세 차례에 걸쳐 귀환하게 됩니다. 바벨론으로부터 포로가 된 이후 70년이 된 시점부터입니다.
1) 1차 포로귀환 (BC 538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모든 포로 민족들에게 자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때 유다 백성들 중 약 5만 명이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대표로 삼아 예루살렘과 유다 땅으로 귀환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2) 2차 포로귀환 (BC 458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포로귀환 조서를 내리고, 제사장 겸 서기관인 에스라를 통치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때 유다 백성들 중 약 2천 명이 에스라를 따라 예루살렘과 유다 땅으로 귀환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키고, 타민족과의 결혼을 금지하였습니다.
3) 3차 포로귀환 (BC 445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이때 유다 백성들 중 약 4천 명이 느헤미야를 따라 예루살렘과 유다 땅으로 귀환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복음을 보호하였습니다.
(11)
페르시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을 당하면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이스라엘은 그리스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때가 BC 331년입니다. 알렉산더가 사망한 후에는 그의 장군들에 의해 여러 제국으로 나뉘어 졌으며, 이때 네 개의 왕국이 생깁니다.
세레우코스 제국, 톨레마이오스 제국, 마케도니아 왕국, 아티고노스 제국입니다.
유다 땅은 세레우코스 제국과 톨레마이오스 제국 사이에서 오랫동안 다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 그리스 문화와 종교가 유대에 침투하면서, 유대인들은 헬레니즘화와 유대화 사이에서 갈등하였습니다. 이때 마카베오 가문이 이끈 유다의 독립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카베오 가문은 결국 당시 유다를 지배했던 세레우코스 제국을 물리치므로 독립국가를 쟁취하였고 하스모니안 왕국을 세우지요. 이때가 BC 140년이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는 유대의 종교적,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주변 지역을 확장하였으나, 내부 분쟁과 로마의 압력으로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이 왕조는 103년동안 유지되었다가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이때가 BC 37년이지요.
(12)
하스모니안 왕국을 멸망시킨 사람이 바로 누가복음 1장 5절에 나오는 헤롯왕입니다. 보통 헤롯대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헤롯 왕국을 세운 셈이지요. 하지만 이 왕국은 독립된 왕국이 아니라 로마에 종속된 왕국입니다. 그래서 헤롯왕의 직위는 분봉왕입니다. 로마는 유대지역에 헤롯을 세웠으나 별도로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을 두어 감시하도록 하였습니다. 헤롯은 당시 하스모니안 왕국의 한 지역인 이두메(옛날 에돔땅)의 총독인 안티파스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하스모니안 왕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 헤롯은 로마의 장군 폼페이에게 유대의 총독 안티파스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로마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 헤롯은 로마의 원로원에게 자신을 유대의 왕으로 임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헤롯은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유대의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로마의 승인을 받은 헤롯은 하스모니안 왕조를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멸망시켰습니다.
- 헤롯은 로마의 군대와 함께 유대를 공격하고, 하스모니안 왕 안티고누스를 격퇴했습니다.
- 헤롯은 하스모니안 왕가의 살아남은 가족들을 모두 죽이거나 흩어뜨렸습니다.
- 헤롯은 하스모니안 왕조의 유물과 기록을 파괴하고, 자신의 왕조를 세웠습니다.
(13) 헤롯은 자신의 왕국을 세운 후에 다음과 같이 하였습니다.
1) 종교 측면
헤롯왕은 이두메(옛 에돔)인으로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정치적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종교를 지원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점점 로마의 우상숭배와 헬레니즘 문화를 강요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성전회랑 정문에 로마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거대한 독수리 상을 세우고, 로마 황제를 위한 희생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는 신성모독이자 국가적 모욕이었습니다.
2) 사회 측면
헤롯왕은 건축 사업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성전을 확장하여 개축하고, 예루살렘 외에도 여러 도시들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고, 헬라 양식의 극장이나 원형 경기장, 나체 경기 등을 도입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에게는 타락과 타국화의 상징이었습니다.
3) 경제 측면
헤롯왕은 무수한 건축 사업과 로마의 재정후원을 위해 많은 세금을 거두고 강제 부역을 동원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엄청난 경제적 착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헤롯왕은 자신의 부인을 열 명이나 두었으며, 그의 왕궁과 궁전은 사치와 호화로 가득했습니다. 이는 백성들과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4) 왕권유지 측면
헤롯왕은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모든 자를 무자비하게 처형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아내 미리암네와 그의 두 아들, 그리고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인 안티파텔을 모두 반역의 혐의로 죽였습니다. 헤롯왕은 자신의 죽음을 기뻐할 사람들이 많을 것을 예상하고, 자신이 죽기 직전에는 각 가정마다 한 사람씩 처형시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는 헤롯왕의 잔인함과 광기를 보여줍니다.
헤롯왕은 BC 4년에는 예수의 탄생을 시기하여 베들레헴의 사내아이 중 2살 이내의 아기를 죽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각종 질병으로 죽게 되지요. 예수님 탄생 기준 약 6개월 후입니다.
(14) 헤롯왕이 사망한 이후 그의 아들들과 여동생에 의해 4두정치가 행해졌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헤롯 아르켈라오스(Archelaus) / 헤롯왕 장남 (출생: 약 BC 23년 – 사망: 약 AD 18년)
- 통치지역: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 통치기간: BC 4년 – AD 6년
- 성경 언급: 마 2:22
그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통치자로서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서기 6년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퇴위되고 강제로 프랑스로 추방되었습니다.
2) 헤롯 안티파스 (Herod Antipas) / 헤롯왕 막내아들 (출생: 약 BC 20년 – 사망: 약 AD 39년)
- 통치지역: 갈릴리, 페레아
- 통치기간: BC 4년 – AD 39년
- 성경 언급: 마 14:1-11, 막6:14-29, 눅 3:1, 3:19, 13:31-33, 23:7-12
그는 자신의 생일날 세례 요한을 죽였으며 예수님을 재판한 통치자로서 복음서에 언급됩니다. 서기 39년에 로마 황제 칼리구라에 의해 퇴위되고 강제로 스페인으로 추방되었습니다.
3) 헤롯 빌립2세(Philippus Ⅱ) / 헤롯왕 아들(출생: 약 BC 26년 – 사망: 약 AD 34년)
- 통치지역: 갈릴리 바다 북쪽, 동쪽
- 통치기간: BC 4년 – AD 34년
- 성경 언급: 눅 3:1
그는 평화롭고 공정한 통치자로서 복음서에 언급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를 건축했습니다. 서기 34년에 사망하고 그의 영역은 로마의 직접 통치하에 들어갔습니다.
4) 살로메 1세(Salome) / 헤롯왕의 여동생(출생: 약 BC 65년 – 사망: 약 AD 10년)
- 통치지역: 얌니아 등
- 통치기간: BC 4년 – AD 10년
- 『유대고대지』 제XVII 권2장2절에서
헤롯왕의 여동생인 살로메가 얌니아 등을 받아 통치하였습니다. 그녀는 오빠 헤롯왕이 죽은 후 12~14년 정도 더 살았으며 사후 자신의 지역을 황후 율리아 아우구스타에게 기증하므로 그 지역은 로마의 직접 통치하에 들어갔습니다.
헤롯왕국의 사두정치 후 대부분의 영역은 로마에 편입되었습니다. 헤롯왕국이 멸망한 것이지요.
(15)
헤롯왕조의 4두정치가 각각 마치면서 모든 영토는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제1차 유대-로마전쟁(AD 66~73년)과 제2차 유대-로마전쟁(AD 132~136년)에서 패배한 후 유대인들은 유대지역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이를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돌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한 것은 1차 전쟁을 의미합니다.
2. 이스라엘 역사 흐름과 헤롯왕 연대기 정리 내용
3. 성경의 암흑시대
암흑시대란 구약성경의 선지자 말라기의 활동 이후인 BC 430년경부터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탄생까지의 약 425년간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시기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끊어져서 성경적인 기록이 없었으며, 이스라엘은 여러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겪으며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요.
또한 이스라엘은 타국민들과 동화되어 그들의 우상 숭배와 타락한 풍속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목격했던 세대들이 사라지고, 성경을 읽지 않고, 지도자들을 세우지 않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지요.
역사적으론 3차 포로귀환 이후 몇 십년 이후로서 페르시아제국 후반기와 알렉산더 대왕에 복속된 이후 그리스의 통치기간과 하스모니안 왕조와 로마의 분봉왕이었던 헤롯왕이 사망하기 약 2년전 즈음까지를 말합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보면, 암흑시대가 종료된 첫 사건이 바로 누가복음 1장 5절에 나오는 제사장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나 하나님의 계시를 준 것입니다.
4. 정리 및 소감
이번 글은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특히 헤롯왕과 그의 왕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거의 2000년 역사를 함축한 것 같은데요.
특히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애를 썼던 헤롯왕. 그는 당시 제사장들과도 가까웠으며 예루살렘 성전 재건 등에도 많은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암흑시대에서 가장 어두운 시점인 인물로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은 트더군요.
암흑시대가 끝나고 동이 트는데 첫 등장한 인물이 사가랴와 엘리사벳입니다. 이들은 나이는 많고 권력은 없으며 경제적으론 가난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들을 의인이라고 하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에 마음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글은 본격적으로 4복음서의 성경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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