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은 예수이야기 두번째로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헤롯왕 등을 살펴보았었지요.
이번 글은 세번째로서 누가복음 1장 5절에서 25절의 내용, 신께서 사가랴의 의심함을 보고 침묵을 요구하시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누가복음 1장 20절 성경구절
2. 사가랴와 엘리사벳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 먼저 세례 요한의 탄생을 주목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태어난 특별한 인물들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고,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이끌었지요.
성경에 보면 사가랴를 소개할 때에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다윗 시대에 제사장을 24개의 반열로 나누었으며 이중 아비야 반열은 8번째 반열이었지요(역대상 24:10 참조).
24개의 반열은 1년에 2번,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성전봉사를 했습니다. 한 차례마다 1주일간 봉사활동을 한 것이지요.
사가랴는 상반기 혹은 하반기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1주일 동안 성전봉사 역할을 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눅1:7)’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민수기 8:23~26에 보면 레위인들이 성전봉사를 할 수 있는 연령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25~49세입니다.
이러므로 사가랴의 나이는 48~49세 정도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의 아내는 40대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두 부부는 성경에서는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어로 ‘디카이오스’이며 영어로 ‘just, lawful, righteous’의 뜻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남
성경에 보면 사가랴가 대표로 성전 안에 들어가 분향을 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13)’라고 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계시가 사가랴에게 임재하는 장면이지요. 또한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30년간 하나님의 계시가 멈추어 암흑시대라고 불렸던 시대가 종료되었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어찌보면 매우 놀라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바뀔 커다란 사건을 나이 많고 곧 퇴직해야 하며 아이가 아직 없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사가랴에게 나타난 것이지요.
또한 천사는 태어날 아들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4. 사가랴의 의심
하지만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부인합니다. 자신과 엘리바벳은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천사가 앞에서 말한 내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사가랴는 왜 그랬을까요?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그는 자신에게 나타난 천사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암흑시대가 430년 동안 이어왔으며, 그 기간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전혀 없었기에 자신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그 때의 상황을 부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 계시의 내용과 현실 사이에서 큰 괴리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가랴는 자녀에 대한 소원과 기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낳을 확률이 적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소원과 함께 기도를 오랜 기간 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도가 깊었으나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셋째, 심리적으로 어느 틀 안에 갇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의 괴리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도의 내용과 다르게 ‘우리는 이미 아이를 갖는 것이 늦었어. 우리는 불가능해’란 심리적 틀에 갇힐 수 있습니다. 결국 그것만이 정답으로 스스로 갇히게 되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와 같은 것들이 사가랴의 마음 속에 암암리에 자리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천사는 정색을 하며 먼저 자신의 가브리엘이라고 이름을 밝힙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가랴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비록 암흑시대를 거쳐 왔을지라도 사가랴는 그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가나안땅으로 갔으며, 늦은 나이에 이삭을 낳았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삭을 낳은 나이는 100세와 90세였으므로 사가랴와 엘리사벳 나이보다 훨씬 많았지요.
지식적으론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현실로 다가오자 그것을 믿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상실하고 자신의 마음의 틀,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이지요.
5. 사가랴의 침묵의 시간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이와 같이 말합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눅 1:20 )
이때 ‘말 못하는’에 해당되는 헬라어를 살펴보면 그 단어가 ‘시오폰’이며 이 단어의 뜻은 ‘침묵하는’이 됩니다.
또한 누가복음 1장 20절 ‘말을 못하리니’와 22절에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에서 ‘말을 못하니’는 헬라어로 ‘아포노스’로서 ‘소리가 없는, 목소리가 없는’의 뜻을 가집니다. 즉 벙어리가 됨을 이야기합니다.
즉 침묵하도록 하기 위해 ‘벙어리’가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그때부터 시작해서 그의 아들 요한이 탄생할 때까지 계속 벙어리가 되어 ‘침묵’하게 된 것이지요.
6. 신께서는 사가랴를 왜 침묵하게 하셨을까?
이를 묵상해 보면 여러 이유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사가랴가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 말을 외부에 발설했을 때 자신의 말을 스스로 변호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말이 옳다는 ‘확증편향’을 할 수 있습니다. 설령 자신의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보다는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변명하는 경향 역시 높습니다.
신 앞에서 이러한 행동은 결국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사가랴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도 자신의 의심을 좋은 쪽으로 말하여 자신을 변호하거나 변명했거나 심지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 침묵은 성찰의 기회가 됩니다.
사람들이 쉬지 않고 말을 할 때는 자신을 바라보거나 어떤 문제를 깊이있게 바라보기 힘듭니다. 신께서는 암흑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계획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가랴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신의 뜻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느껴서 깨달음을 가져야 했을 것입니다. 신께서는 사가랴에게 10달동안 그런 깨달음의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셋째, 신께서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암흑시대’가 종결되었음을 마음으로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당대의 사람들은 신의 계시가 없음으로 매우 갑갑하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때 사가랴 사건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을 것임을 느꼈으며 그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는 신께서 자신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다시 다가와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임을 느끼는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신의 말씀과 계시가 없는 암흑시대가 종결되고 이제 주의 말씀이 인류에게 주어짐을 알리는 새로운 첫출발임을 서서히 느꼈을 것입니다.
7. 정리 및 소감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잘 따르려고 노력하며, 저 역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가랴가 하나님의 계시가 자신에게 특별하게 왔을 때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렀지요.
사가랴의 경우는 자녀를 구하는 기도를 했음에도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수 없다’란 생각, ‘우리는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운명이야. 이젠 끝난거야’란 심리에 갇혀서 결국 하나님의 뜻을 놓칠 수 있는 그런 실수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사가랴의 모습에서 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또한 성경말씀을 읽는 것과 실제 그 말씀이 현실세계에서 적용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현실은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타인과의 관계, 나의 심리 등이 반영된 것이지요.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겨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하기에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 것 같습니다.
이러할 때 신께서 사가랴에게 ‘침묵’하게 하셨듯이 우리 또한 ‘침묵’의 시간이 충분히 가져야 함을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을 돌이켜 보더라도 침묵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곤 했습니다. 그 침묵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새로운 기회가 있었음도 느꼈습니다.
사가랴를 통해 저 자신을 보았고 또한 삶 속에서 침묵의 때가 있어야 함을, 그것이 매일의 삶에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를 깊이 묵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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