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몇 차례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타인의 강의를 듣기도 하며 목회자의 설교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좋은 강의고 무엇이 좋은 설교인지 의문이 많이 생겼습니다.
무엇이 좋은 강의고 좋은 설교일까?
이를 심리적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이번 글은 ‘나쁜 강의, 나쁜 설교’를 먼저 살펴보고 다음 글에 ‘좋은 강의, 좋은 설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심리적 측면에서 강의와 설교란
강의나 설교란 강의자나 설교자(이하 ‘강의자’)가 타인들과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타인들에게 무언가를 알려 주며 설득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심리적 측면에서 보면, 강의나 설교를 하는 나란 사람의 자아와 다른 사람들과의 자아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아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나란 존재’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체계화해서 타인들에게 잘 전달하려고 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강의자가 전달하는 그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 받으면서
‘그것이 좋은 것인지, 혹시 거짓이 섞여 있는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등 자신의 여과지를 통과하게 하는
과정을 거침으로 결국은 ‘타인의 것을 잘 정돈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강의자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할 때 언어와 비언어를 기반으로 헹동합니다.
언어란 ‘말’을 의미하며, 비언어란 ‘제스처, 표정, 자세, 언어톤 등’이 해당되지요.
또한 인간의 자아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심리학자 에릭 번은 인간의 자아를 크게
어버이자아, 어른자아, 어린이자아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건강한 인간일수록 상황에 맞게 세 자아를 잘 사용하는 반면,
그렇지 못할 경우 주로 한 자아에 오래 머물거나 어버이자아 혹은 어린이자아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잘 사용합니다.
2. 강의자의 어버이자아상태
어버이자아란 부모님 등 타인의 목소리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나란 존재를 의미합니다.
만약 강의자가 어버이자아 상태에서 전달하고 있다면,
강의자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체계화해서 타인에게 전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어버이자아상태에서 강의나 설교를 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은,
■ 첫째, 자신이 타인에게 전달하고 있는 내용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내용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이해는 하지만, 그것은 지식적인 측면이고 그것의 진면목까지는 자신도 정확히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 둘째, 이들의 내용은 장황하거나 논리 비약적일 수 있습니다.
알기는 알지만 자신도 정확히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강의나 설교를 하게 되면, 말이 정돈되지 못하고 장황하거나 논리 비약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억지로 증명하려 할 때 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 셋째, 이들의 내용은 신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념이란 ‘변하지 않은 굳은 생각’으로서 자신의 생각이 굳어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신념에는 자칫 오류, 편견, 고정관념이 쉽게 들어갈 수 있으며, 이러한 신념이 포장되어 전달됨으로 듣는 사람 역시 자칫 오류에 빠지게 하거나 편견에 사로 잡히게 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표적인 사람들이 많은 유교학자들이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굳은 생각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것을 교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신념(관념)의 틀에 갇힌 것이지요.
■ 넷째, 그들의 표정 등 비언어는 항상 비장하거나 엄숙해질 수 있으며,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전달할 때 자주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 동작 역시 강하게 나타납니다. 심지어 앞에 있는 탁상을 치기도 하지요.
심한 경우 사람들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다섯째, 자신의 강의나 설교를 듣고 있는 자를 은연중에 자신의 아래로 바라봅니다.
즉 자신은 ‘어버이’이고,
강의나 설교를 듣는 타인들은 자신의 돌봄이나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이 말한 대로 따라야 하는 ‘어린아이’로 바라보는
심리상태에 빠지곤 합니다.
이러한 자아상태에 강하게 빠지게 되면,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너희는 내 말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돼’라고 하며 이것을 잘하는 사람을 ‘순종’을 잘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여섯째, 타인이 질문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이 말한 내용을 타인이 이러쿵저러쿵하며 재단 받기 싫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위가 그 만큼 깎인다는 심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질문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깨닫지 못한 부분을 질문할 때 그에 대해 대답할 능력이 못됨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3. 강의자가 어린이자아상태에 있을 때
어린이자아란 ‘어린 시절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 행동하는 나란 사람’의 의미를 가집니다.
중요한 것은 비록 시간과 몸은 현재를 살고 있지만
심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된 상태라는 것입니다.
강의자가 어린이자아상태에 있을 때는 크게 세 종류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 첫째, 재미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자유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를 잘 사용하면 강의나 설교가 재미날 수 있고 호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사용하면 자칫 알맹이가 없을 수 있습니다.
■ 둘째,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감정적 모습을 강의나 설교시간에 재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다양한 심리들이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들 중 상당부분이 자신이 상처받거나 위험에 처했던 경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특정 상황에서 어떤 강의자는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화를 내어 소리를 치듯 강의나 설교를 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 셋째, 심한 경우 누구를 타깃으로 해서 저격하기도 하며, 은연중에 망신을 주기도 합니다.
이 모습은 어렸을 때 자신의 생존이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자주 행했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은 겉으로는 어버이자아상태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과거 어린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재연할 가능성이 큰 것이지요. 매우 위험한 모습이기도 하지요.
4. 좋은 강의자(설교자)가 되는 것이 어려운 이유
강의자가 앞의 어버이자아와 어린이자아를 많이 사용하게 될 때
부정적인 측면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강의나 설교를 듣는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정지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의나 설교를 통해 더 나은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듣고 있는데,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병리현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특히 종교에서 어떤 사람은 인간은 신의 말씀을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식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신을 빙자해서 자신의 말을 무조건 따르게 하고 싶어서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지요.
또한 이는 좋은 강의, 좋은 설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을 대하는 직종에서 하는 행위들,
특히 심리상담 분야에서도 이를 거의 그대로 적용해도 될 것 같군요.
또한 부모가 자녀에게 대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은 좋은 강의, 좋은 설교에 대해 심리적 측면과 연결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