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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1: 신념과 믿음의 분별 ―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할 수 있을까?

이 글은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글로서 믿음과 신념의 차이점 등을 살펴보고 이해하려는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이것이 분별되지 않을 땐 신앙적 혼선은 물론 정체성 혼란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분별하는 측면에서 유의깊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념과 믿음의 분별

 

신념과 믿음의 분별 ―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는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영불전쟁처럼 말입니다. 두 나라는 서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그런데 결과는 한 나라가 이겼습니다. 마치 프랑스가 영불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말입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더 믿음이 깊었던 것일까요? 혹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편이셨던 걸까요?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예를 좀 바꾸어 두 나라의 믿음의 수준은 동일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은 서로 비기는 걸까요?

그런데 애초에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 말은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그 분께 기도를 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누구 편을 들어줄 상황이 아니기에, 서로 화평하라고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전쟁을 했고, 왜 자기 나라가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을까요? 그것은 정말 믿음 때문이었을까요?

프랑스 사람이 영국이 이기게 해달라는 마음을 가질 가능성은 매우 적고, 영국 사람 역시 프랑스가 이기게 해달라는 마음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즉,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나라를 편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구조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기도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념에 기반한 자기 확신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드리는 기도보다 그 기도 안에 담긴 마음의 구조를 더 깊이 보시는 분이십니다.

 

신념인가 믿음인가

 

그렇다면 이들의 기도는 믿음이 아닌 무엇을 바탕으로 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신념’입니다.

신념이란 인간의 자아, 즉 무언가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무엇이 옳거나 당연하다고 굳어진 그 무엇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러한 생각과 느낌을 통해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으로 인해 그 생각과 느낌은 더욱 공고해지고, 신념은 더욱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영국이,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가 더 잘 되는 것이 옳고 당연하다는 생각과 느낌을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이 경험했겠습니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심지어 매스컴에서…

그러니 그들의 기도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신념으로 인해 생긴 인간의 욕망의 표출일 수 있습니다.

만약 신념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신앙생활을 죽을 때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신앙인이라면 근본적으로 중요한 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을 신념과 대비해서 이야기한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즉, 신념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자라난 환경이나 상황 등과 맞물려 공고해진 그 무엇, 즉 ‘나의 것’이라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신념의 출발점은 나의 생각과 느낌이라면, 믿음의 출발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이 경계가 애매합니다. 믿음인지, 신념인지, 아니면 이것들이 혼재된 것인지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참 곤란해집니다. 심지어 앞의 사례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그래서 사람들을 죽이고 하였는데… 이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표방하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신의 뜻대로 행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념에 갇혀 믿음과 분별할 수 없었고, 그 신념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신념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 잘 되길 바라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애국심이 높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신념에 의한 것인지, 믿음에 의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습니다.

내 삶이 믿음으로 사는 것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형성된 신념으로 사는 것인가?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는가, 신념으로 키우는가?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사는가, 신념으로 사는가?
우리의 교회들은 믿음의 교회인가, 신념의 교회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신앙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이 고민을 더 깊이 나누고자 합니다. 신념과 믿음의 경계를 분별하는 여정,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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