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신념과 믿음 시리즈 중 성경 인물 글로서 이번에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등장하며 창세기에서부터 신명기까지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는 모세 이야기입니다.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신념과 믿음으로 본 모세 이야기
인간의 삶은 늘 신념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신념은 경험과 환경 속에서 세워진 자기 해석이며, 때로는 우리를 지탱하지만 동시에 묶어 두는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을 붙드는 것이며, 우리의 약함과 혼란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모세의 삶은 이 갈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신념을 품었지만, 하나님은 그 신념을 깨뜨리시고 믿음으로 새롭게 세우셨습니다. 이제 모세의 여정을 따라가며, 신념에서 믿음으로 옮겨가는 길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억압 속의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느 순간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요셉과 그의 가족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들어온 이후, 약 430년 동안 그 땅에 머물며 번성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요셉의 영향력 덕분에 고센 땅에서 평화롭게 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억은 희미해졌습니다. 성경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출애굽기 1장). 이스라엘은 더 이상 보호받는 외국인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왕은 급속히 증가하는 이스라엘의 인구를 위협으로 보았습니다. 애굽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고, 왕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신적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 체제 안에서 이스라엘은 점차 억압과 통제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노예로 전락하였습니다. 강제 노동과 인구 억제,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까지 이어지며, 생명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인구 증가가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의 원인이 되는 역설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백성을 빚어내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의 약속은 애굽 한복판에서 실현되었고, 바로의 탄압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가 등장합니다. 바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살려냈습니다(출애굽기 1:15~22). 보이는 권력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한 그들의 선택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믿음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태도를 기뻐하시고 그들의 집안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고난의 시대에도 믿음으로 살아낸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가 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애굽의 왕은 권력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생명을 억압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노예로 살아가며 “우리는 저들에게 철저히 복종해야 살아갈 수 있다”라는 체념의 신념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의 행동은 그 틀을 깨뜨리는 믿음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지 않으시는 듯 보이지만, 억압의 구조 안에서 구속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셨습니다. 사람의 신념은 생명을 막으려 했지만, 믿음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바로 그 믿음의 작은 불씨가 훗날 모세의 이야기를 열어가는 하나님의 구속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2) 두 엄마, 두 정체성
모세의 탄생은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생명을 지켜내시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바로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나일강에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출애굽기 1:22).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그를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워 보냈습니다(출애굽기 2:1~3).
그 순간, 하나님은 놀라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의 딸이 강가에서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기를 건져 올렸습니다. 그녀는 모세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세의 친어머니 요게벳은 젖을 먹이는 사람으로 불려와 아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모세에게는 두 엄마가 생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엄마는 어린 모세에게 하나님과 언약, 그리고 민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뿌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애굽의 공주는 모세를 왕궁의 아들로 키우며 애굽의 문화와 권력의 이야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모세는 어린 시절부터 두 정체성 사이에서 자라났습니다.
왕궁의 교육은 철저했습니다. 문자와 기록, 수학과 천문학, 법률과 행정, 전쟁 전략과 무기 사용, 수사와 연설술, 종교와 제의 체계까지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제국의 언어와 질서를 익히며 성장했지만, 동시에 내면 깊은 곳에는 “너는 히브리인이다”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쪽은 하나님을 믿는 민족의 이야기, 다른 한쪽은 세상의 권력과 영광의 이야기였습니다. 모세의 마음에는 두 세계가 동시에 자리잡았고, 이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내면에 혼란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났지만 애굽 왕궁에서 자라났고, 두 정체성은 그의 소년기와 청년기까지 이어지며 삶 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3) 정체성의 갈등과 도망
모세가 장성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 그의 내면에는 두 세계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애굽 왕궁에서 자라난 왕자였지만, 혈통으로는 히브리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던 그는, 결국 어느 날 그 갈등을 행동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모세는 동족 히브리인이 애굽 사람에게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본능적으로 히브리인의 편에 서서 애굽 사람을 처치했습니다(출애굽기 2:11~12). 그러나 이 행동은 곧 드러났고, 히브리인들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라는 말은 모세의 마음을 깊이 찌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동족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바로는 그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 순간 모세는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임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애굽에도 속하지 못하고, 히브리인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그는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왕궁의 화려한 교육과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 그는 광야의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4) 미디안 광야의 이방인
모세는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우물가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딸들을 도와주었고, 그 인연으로 이드로의 가족과 함께 머물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십보라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며 목자로 살아갔습니다(출애굽기 2:15~21).
겉으로 보면 그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안정된 삶을 시작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나는 나그네다”라는 고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었는데, 이는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라는 뜻이었습니다(출애굽기 2:22). 이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모세의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애굽에도 속하지 못하고, 히브리인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그는 미디안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 자기 인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의 삶을 규정하는 신념으로 굳어져 갔습니다. “나는 나그네다,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생각은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아, “그러므로 나는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해석으로 이어졌습니다.
광야에서의 40년은 모세에게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양을 치며 애굽의 질서와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이방인으로 규정하는 신념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이 신념은 그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조차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말로 드러나게 됩니다.
미디안 광야는 모세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내면에 깊은 혼란을 신념으로 굳히는 장소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신을 이해했고, 그 신념은 그를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광야에서 모세를 빚어내고 계셨습니다.
(5) 하나님과의 만남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어느 날 호렙 산에서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그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갔고,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출애굽기 3:1~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과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모세를 그들의 인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부르심 앞에서 주저했습니다. 그는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 혼란을 드러냈습니다(출애굽기 3:11). 오랜 세월 동안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는 나그네다, 나는 이방인이다”라는 신념은 그를 끊임없이 뒤로 물러서게 했습니다. 그는 “나는 말이 느리고 입이 둔하다”라며 사명을 피하려 했습니다(출애굽기 4:10).
하나님은 그의 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의 내면 깊은 두려움과 결핍에 하나씩 답해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고(출애굽기 3:12),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는 표징과 손에 나타난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출애굽기 4:1~9). 또한 그의 형 아론을 동역자로 세워 함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4:14~16). 하나님은 모세의 신념을 깨뜨리시고, 그 자리에서 믿음을 세워가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말씀하심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가족과 함께 길을 떠난 그 밤,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고, 그 순간 그의 아내 십보라가 돌칼을 들어 아들의 포피를 베어 하나님의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출애굽기 4:24~26). 이는 모세의 가정이 아직 언약의 표징인 할례를 행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명을 받았지만, 그의 삶은 아직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에 온전히 들어와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십보라의 행동은 그 틈을 메우는 지혜였고, 모세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이 단순한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모세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은 신념을 흔들고, 믿음으로 새롭게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나그네다”라는 자기 인식은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믿음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강점뿐 아니라 그의 약함과 혼란까지도 사용하시며, 그를 구속의 도구로 빚어내셨습니다.

(6) 바로의 신념과 모세의 믿음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애굽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바로와 맞서야 했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왕으로서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신적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의 마음은 권력과 체제를 지키려는 강한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그의 고집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권위와 신적 지위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신념의 표현이었습니다(출애굽기 5:2).
바로는 “누가 여호와이기에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념은 눈에 보이는 권력과 질서, 그리고 애굽의 신적 체제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열 가지 재앙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며 끝까지 버티려 했습니다.
반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는 여전히 연약하고 두려운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붙들었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그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출애굽기 3:12).
열 가지 재앙은 바로의 신념과 모세의 믿음이 충돌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애굽의 신념은 끝내 무너졌고,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굳건히 세워졌습니다.
(7) 광야에서 드러난 신념과 모세의 마음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오랜 세월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자유인의 마음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로서의 신념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불편을 만나면 참지 못하고 즉각적으로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애굽의 고기를 그리워했고, 길이 험하면 애굽의 삶을 다시 떠올리며 원망했습니다(출애굽기 16장, 민수기 11장).
그들의 신념은 “우리는 주인이 제공하는 것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문제 해결할 수 없다”라는 자기 인식이었습니다. 자유를 얻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노예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의 불평을 들으며 연민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도 그들과 같이 노예로 자라났다면 똑같이 불평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엎드려 그들을 위해 탄원했습니다(출애굽기 32:11~14). 모세의 마음에는 단순한 지도자의 책임감만이 아니라, 백성의 신념을 이해하는 깊은 공감이 있었습니다.
광야의 40년은 사건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드러난 백성의 신념과 그것을 품고 기도하는 모세의 마음이 핵심입니다. 이스라엘은 노예의 신념을 버리지 못했지만, 모세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서 중보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백성의 연약함을 껴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로까지 나아갔습니다.
(8) 모세의 죽음과 변화산의 모세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모압 땅에서 생을 마쳤습니다(신명기 34:1~5).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 믿음의 삶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여정을 마무리하며,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 채운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나타났습니다(마태복음 17:1~3). 이는 모세가 죽음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자로서, 하나님의 산 자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예수님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율법과 선지자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됨을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
모세의 죽음과 변화산의 등장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믿음의 완성이었고, 변화산에서의 모습은 그 믿음이 죽음을 넘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속에서 살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안에서 산 자로 존재하는 증거가 된 것입니다.
(9) 신념에서 믿음으로
모세의 삶은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는 두 엄마 사이에서 자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고, 애굽과 히브리 사이에서 갈등하다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는 “나는 나그네다”라는 자기 인식을 신념처럼 품고 살았고, 그 신념은 그를 끊임없이 뒤로 물러서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신념을 깨뜨리시고, 믿음으로 새롭게 세우셨습니다. 떨기나무 앞에서 모세는 “내가 누구이기에”라며 주저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으로 그의 내면을 바꾸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약함과 혼란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바로의 신념은 끝내 무너졌고, 이스라엘의 노예 신념은 광야에서 드러났지만, 모세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의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백성의 연약함을 껴안으며 중보하는 자리로까지 나아갔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끝났지만, 변화산에서 그는 다시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이는 그의 삶이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모세의 여정은 혼란스러운 신념에서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함과 상처, 혼란까지도 사용하시며,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내셨습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우리의 신념이 때로는 우리를 묶고 뒤로 물러서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 신념을 깨뜨리시고 믿음으로 새롭게 세우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
우리의 신념이 아닌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해 나가겠습니다 할렐루야 축복합니다 아도나이 내사랑 축복합니다 🙏 ♥️
이와 같이 함께 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