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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믿음13: 다윗의 생애

신념과 믿음으로 본 다윗의 생애

부제: 결핍 속에서 드러난 믿음의 일관성

다윗의 신념과 믿음

다윗은 성경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과 가장 신앙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수많은 전쟁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라를 안정시키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왕국의 기반을 다져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가정의 파괴와 자녀들의 반역, 그리고 자신의 죄로 인한 깊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생애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이야기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맞닿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을 신념과 믿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길입니다. 신념이란 인간이 삶의 경험 속에서 형성한 내적 확신말합니다. 때로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실패와 죄책감 속에서 굳어지기도 합니다. 신념은 우리를 지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묶어 두기도 합니다.  

믿음은 신념과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내적 확신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의탁을 의미합니다. 곧 믿음은 신뢰, 의지(의존), 순종, 충성(신실함), 관계적 헌신으로 구성된 하나님과의 관계적 태도입니다. 신념이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에 근거합니다. 신념은 때로 흔들리지만, 믿음은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힘으로 흔들림 속에서도 길을 열어 줍니다.  

다윗은 결핍과 상처 속에서 다양한 신념을 형성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신념과 믿음이 긴장 속에서 교차하는 이야기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결국 그의 생애를 이끌어 간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다윗의 생애를 신념과 믿음의 관점에서 묵상하며, 결핍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간 그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편과 전승이 증언하는 어린 시절의 결핍

성경은 다윗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몇 시편 구절과 유대 전승을 통해 그의 내면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께 맡겨졌고 모친의 배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시 22:10–11)  

이 고백들은 단순한 신앙적 수사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인간적 관계에서 안정된 돌봄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맡겨진 존재였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부모로부터 충분한 수용과 보호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유대 전승인 탈무드와 미드라쉬에는 다윗의 가족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의 아버지 이새는 그의 할머니 룻이 모압 출신의 이방인이었기에 자신의 혈통에 대한 의심으로 아내와 거리를 두었고, 자신의 혈통을 확인받고자 이방인 종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출산하려는 계획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자녀로 인정받는다면 자신도 유대인의 혈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종은 그 사실을 이새의 아내에게 말했고, 이새의 아내는 그 종과 이새가 관계를 가지는 그 날 밤에 종 대신 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기에 다윗의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의심받는 위치에 놓였을 것이며 나중에 그 사실을 말했다 할지라도 사람들의 의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형제들에게 “혈통이 의심되는 동생”처럼 취급되며 무시와 배척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는 성경 속 단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기름부으려 할 때 다윗은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고, 처음에는 불려오지도 않았습니다(삼상 16:11). 골리앗 앞에 나아가려 할 때도 큰형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 “네가 교만하여 악한 마음을 품고 왔다”고 꾸짖으며 그의 존재를 깎아내렸습니다(삼상 17:28).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하면,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의 결핍과 형제 및 주변인들로부터의 결핍을 동시에 경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가족 내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형제들에게는 이방인처럼 취급받았으며,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의심받는 위치에 있었기에 다윗 역시 그 그림자 속에서 자라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유기(버림받음)와 불안정의 심리도식을 내면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다는 내면의 불안을 말합니다. “도울 자 없나이다”라는 시편의 고백은 바로 그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의 내면에는 “나는 가족 안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라는 무력감이 신념으로 자리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결핍을 하나님께 매달리는 믿음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때 드러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지(의존)의 단계였습니다. 인간적 관계에서 경험한 소외와 무력감은 여전히 존재하였으나, 그것이 그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믿음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2)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기름부음을 위해 찾아갔을 때, 사람들의 눈에는 장남 엘리압이 가장 적합해 보였습니다. 그는 체격도 크고 외모도 준수하여 왕으로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이 말씀은 단순히 겉모습과 내면을 구분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방향성과 신뢰의 가능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그의 결핍 또한 외면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내에서 소외당하고, 형제들에게 무시받으며 자라난 다윗의 내면에는 가족에 대한 무력감과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의 신념과 믿음을 대비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신념: 다윗의 내면에는 “나는 가족 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자기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비롯된 신념이었습니다.  
  • 믿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결핍을 결격사유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믿음을 더욱 간절히 붙들게 하는 토양으로 보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결핍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중심 속에서 신뢰와 의지의 단계를 넘어 순종과 신실함(충성)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핍을 문제로 보지 않으시고, 그 결핍을 통해 믿음을 더 깊게 하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았고, 이후 그의 삶은 결핍에서 비롯된 신념과 하나님이 심으신 믿음이 충돌하고 성장해 가는 여정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3) 형제의 분노와 사울과의 첫 만남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아가려 했을 때, 그의 큰형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 격한 분노를 드러냈습니다. 그는 다윗을 꾸짖으며 “네가 교만하여 악한 마음을 품고 왔다”고 말했습니다(삼상 17:28). 이는 단순한 형제 간의 말다툼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무시와 배척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엘리압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윗을 인정하지 않는 심리적 거리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형제의 분노와 무시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골리앗을 향해 나아갔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단순히 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무시와 배척 속에서 자라난 소년이 하나님을 신뢰하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다윗은 사울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의 신임을 얻어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사람들의 외침은 사울의 시기심을 자극했고, 다윗은 도망자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다윗은 사울의 추격이라는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더욱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는 요나단과의 우정을 통해 위로를 받았고, 아둘람 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신념: 다윗의 내면에는 여전히 “나는 가족 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처가 남아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추격 속에서도 그는 “나는 버림받았다”는 신념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 믿음: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셨음을 기억하며, 사울을 향해 끝까지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손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충성(신실함)의 믿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결국 다윗의 첫 승리와 사울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형제의 무시와 사울의 시기, 도망자의 삶은 그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겼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는 결핍에서 비롯된 신념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믿음이 그 신념을 이기고 다윗의 삶을 이끌어가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다윗의 신념과 믿음

 

 

(4) 도망자의 세월, 연단의 시간 – 신념과 믿음의 교차점

사울왕을 피해 도망간 광야의 시기, 다윗은 극심한 긴장과 불안 속에 살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그를 붙들었습니다. 외부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이 사람들을 붙여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점차 신념이 믿음에 의해 다듬어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두 사건은 다윗의 내면에서 신념과 믿음이 어떻게 교차하고 충돌하며 성숙해 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① 사울을 죽이지 않은 사건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일이니라”(삼상 24:6)

  • 신념: 다윗은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여겼습니다. 이는 단순한 권위 존중을 넘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함부로 넘지 않겠다는 내면의 확신이었습니다.  
  • 믿음: 동시에 그는 하나님께서 때를 정하시고 길을 여실 것이라는 신뢰와 순종의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의 생존과 왕위 계승을 스스로 확보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 사건은 신념과 믿음이 함께 작용한 교차점이었습니다. 신념은 그를 행동의 경계 안에 머물게 했고, 믿음은 그 경계를 하나님께 맡기며 기다리게 했습니다.

② 나발과 아비가일 사건

광야에서 나발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다윗은 분노로 가득 차서 나발의 집안을 멸하려 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상처와 억눌린 감정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반응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을 막으셨습니다. 그녀의 지혜로운 말은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를 하나님의 뜻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오늘 나를 만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삼상 25:32)

  • 신념: 다윗 안에는 여전히 “나는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것이 순간적으로 반응했습니다.  
  • 믿음: 그러나 그는 아비가일을 통한 하나님의 개입을 받아들이며, 분노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이는 믿음이 신념을 제어하고 다듬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다윗은 단순히 신념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신념과 믿음의 긴장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면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겪고 있었습니다. 도망자의 삶은 그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윗공동체가 숨어 있었던 아둘람굴

 

(5) 왕으로서의 부름과 성전 준비 – 신념과 언약의 긴장 속에서의 순종

사울의 죽음 이후 다윗은 먼저 유다의 왕으로 세워졌습니다(삼하 2:4).
7년 6개월 후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며 통합 왕국을 이루었습니다(삼하 5:3).

도망자의 세월을 지나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은 다윗에게 있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들어 이끄셨음을 알았기에, 그의 믿음은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도망자의 시절에 하나님께 의지하며 신뢰했던 믿음은 이제 왕으로서의 삶 속에서 신뢰, 의지, 순종, 신실함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신념은 점차 약화되었고, 믿음이 그의 삶을 지배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께 성전을 짓고자 하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는 왕국을 안정시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로서 성전 건축을 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행위 중심의 신념에서 비롯된 열망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왕조가 견고히 서고, 그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바람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열망을 거절하시면서도, 오히려 더 깊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리라” (삼하 7:14)

이 말씀은 단순한 건축 허락의 거절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윗 가문 사이의 언약적 관계를 선언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행위 중심 신념을 넘어, 자신의 신실함에 근거한 관계 중심의 믿음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삼하 7:11)는 말씀과 함께, 다윗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 장면은 다윗 가문의 세속적 영원성에 대한 인간적 바람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영속성에 대한 언약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조가 영원하길 바랐지만,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한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직접 성전을 짓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뜻에 순종하며,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도록 모든 준비를 다했습니다. 금과 은, 목재와 돌을 풍성히 모아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를 마련했고, 백성들에게도 헌신을 독려했습니다(대상 22:14).

다윗의 성전 준비는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순종의 믿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는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으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왕으로서의 영광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붙드는 믿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이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자신의 역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성숙한 헌신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6) 성공 뒤에 결핍이 드러나다 – 감정의 양가성과 정직한 믿음

왕으로서 성공과 안정의 절정에 있던 다윗은 어느 날 궁궐에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도망자의 세월이나 전쟁의 순간처럼 긴장감이 높을 때는 책임과 규율을 붙들며 큰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 돌아가던 이 시기의 안정 속에서 그는 내면의 결핍을 드러냈습니다. 긴장이 풀린 순간,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기중심적 자유의식에 빠져든 듯 보입니다. 이때 다양한 욕망이 자극될 수 있었지만, 특히 여성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촉발되었습니다. 한 여성의 목욕 장면을 본 그는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고, 결국 밧세바를 취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이 자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확실한 인정과 애착을 받지 못했으며, 어머니 역시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를 드러내고 지지하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짧은 순간 어머니와 함께한 애착은 강렬했기에 무의식 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성인이 된 후 여성과의 관계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가 작동했을 수 있습니다. 밧세바 사건은 바로 이 무의식적 결핍이 현실 속에서 드러난 대표적 장면이었습니다.

다윗의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왔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그를 책망했고, 그 결과 그의 가정은 파괴되었습니다. 집안에는 칼이 떠나지 않았고, 자녀들 사이의 비극이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아버지로서 자녀 문제 앞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암논의 범죄와 압살롬의 분노, 그리고 이어진 반역 앞에서 그는 무력하게 반응했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내면화된 “나는 가족 안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무력감의 신념이 다시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다윗의 내면에는 두 가지 신념이 교차하며 그를 짓눌렀습니다.  

  • 첫째, 무력감의 신념: 어린 시절 가족 내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은, 자녀 문제 앞에서의 소극적 태도로 이어졌습니다.  
  • 둘째, 죄책감의 신념: 밧세바 사건 이후 그는 “나는 죄인이다.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자기 인식을 강화했습니다.  

이 죄책감은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자녀들이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암논의 범죄,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은 모두 그의 죄 이후에 이어진 가정의 파괴였고, 다윗은 그 고난을 자신의 죄의 결과로 받아들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그를 다시 도망자의 길로 몰아넣었고,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그는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라며 깊은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양가적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편 3편에서 그는 압살롬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나의 대적”이라 부르며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했지만, 동시에 아버지로서 압살롬의 죽음을 누구보다 깊이 애통했습니다. 왕으로서의 책임과 아버지로서의 애착이 충돌하는 이 양가성은 다윗의 내면을 가장 섬세하게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시편 3편은 단지 믿음의 강도를 보여주는 시가 아니라, 다윗이 느낀 두려움과 분노, 신뢰와 간구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그대로 드러낸 정직한 토로입니다. 마찬가지로, 압살롬의 죽음을 향한 통곡 역시 믿음의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않는 신앙인의 진실한 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복잡한 감정과 상처, 죄책감과 애정을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았고, 바로 그 정직함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밧세바 사건과 압살롬의 죽음은 다윗의 내면 결핍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회개하며 믿음을 붙드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무너진 신념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 자비를 구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인간적 복잡성과 믿음의 끈을 함께 드러냈습니다. 다윗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었고, 바로 그 점이 그의 믿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7) 인구조사 사건, 탄원 속에서 신념이 깨어지다 –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의 나라’로 바뀐 생각과 느낌

노년의 다윗은 오랜 전쟁과 도망자의 세월을 지나 왕국을 안정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의 끝자락에서 또 다른 결핍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인구조사를 명령하며 자신의 군사력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성취를 드러내려는 내면의 변화였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더 깊은 문제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나라’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였고, 다윗은 그분의 대리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인구조사를 통해 드러난 다윗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착각, 곧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뀐 생각이 점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사울이 하나님보다 자신의 권위를 앞세우며 버림받았던 길과 닮아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몰락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이 왜 버림받았는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은 그 길을 따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인구조사를 명령한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사울과 같은 길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구조사를 명령할 때는 자신의 나라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내면에 숨겨져 있음을 부정하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알면서도 이를 회피하고 바라보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깊은 깨달음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심각한 죄로 여기시고 큰 징계를 내리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즉각적으로 임했습니다. 다윗에게 세 가지 징벌 7년 가뭄, 다윗이 원수들에게 3개월 도망다니는 것, 다윗의 땅에 3일간 전염병이 생기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징벌들은 모두 밧세바 사건에 준하거나 더 강력한 징벌들이었습니다. 다윗이 선택한 것은 3일간의 전염병이었고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퍼져 단 하루 만에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너의 나라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다윗이 세운 왕조와 군사력, 정치적 안정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주권이 인간의 손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현실 앞에서 깊은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이는 밧세바 사건 이후 가족이 고난을 당했던 경험과 겹쳐지며, “내 죄 때문에 다른 이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금 자각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른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 백성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 죄를 나와 내 집에 돌리소서”(삼하 24:17)라고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

이 기도는 단순한 회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바른 인식을 되찾는 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기도를 통해, “설령 나와 내 집이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된다 하더라도, 이 백성만은 주님의 백성으로 남게 해 달라”는 자기 희생적인 간구를 드러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조를 하나님 나라의 중심으로 삼으려 했던 이전의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금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며 자비를 구했고, 그 자리에서 재앙이 멈추었습니다. 타작마당은 단순한 제사의 장소가 아니라, 다윗의 통치관이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된 자리였습니다. 그의 결핍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결핍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고, 자신의 왕조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책임과 헌신으로 전환한 순간이었습니다.

 

(8) 왕위 계승과 마지막 선택 – 회복된 믿음으로 내리는 결단

다윗의 노년은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시기였습니다. 이때 그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전처럼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도 방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왕기상 1장에 따르면, 그는 아도니야의 행동을 밧세바와 선지자 나단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즉시 반응했습니다.  

이 장면은 다윗이 자녀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과거처럼 무력감에 사로잡혀 주저하거나 회피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인구조사 사건 이후,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인식을 회복했고,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된 신념들도 상당 부분 치유되었습니다. 아도니야의 반역에 대한 즉각적 대응은, 그의 내면에서 더 이상 “나는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신념이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요청과 나단의 조언을 듣고, 곧바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책임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이나 결핍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과 백성의 안정을 우선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 결정은 다윗이 노년에 이르러 보여준 가장 성숙한 믿음의 열매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조용히 생애를 마무리했습니다. 그의 삶은 결핍과 죄, 무력감과 양가적 내면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를 위한 결단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다윗의 죽음은 단순한 생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다듬어 가신 여정의 완성이자, 깨어진 신념이 회복되고 책임 있는 믿음으로 전환된 삶의 마침표였습니다.

 

(9) 결론: 깨어진 신념에서 회복된 믿음으로

다윗의 생애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결핍과 실패, 죄와 고통, 회개와 회복을 거쳐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정받지 못한 경험 속에서 “나는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신념을 내면화했고, 그 신념은 도망자의 삶과 왕으로서의 통치, 가정의 위기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신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정직하게 반응했습니다. 밧세바 사건 이후의 회개, 압살롬의 반역 앞에서의 애통, 인구조사 사건에서의 책임 고백, 그리고 마지막 순간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 결단까이 모든 장면은 다윗이 점차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인구조사 사건은 다윗이 하나님 나라를 자신의 나라로 오해했던 결정적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 붙드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백성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제 죄를 나와 내 집에 돌리소서”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왕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책임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기도는 다윗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다시 인식하고, 자기중심적 통치에서 하나님 중심의 관계적 헌신으로 돌아선 고이었습니다.

노년의 다윗은 더 이상 무력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결정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과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책임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생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다듬어 가신 여정의 완성이었습니다.

다윗의 삶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결핍이 있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그 결핍을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정직함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다윗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 앞에 진실했던 사람이었고, 그 진실함이 그의 믿음을 완성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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