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신념과믿음10: ‘이게 뭐야’에서 믿음으로

이 글은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신념과 믿음의 충돌 등으로 생기는 혼재 현상의 사례를 적어 보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란 마음입니다.

신념과 믿음

‘이게 뭐야’에서 믿음으로

 

며칠 전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특히 제가 최근에 쓴 책을 필요한 분들에게 발송하기 위해 출력하고 제본을 한 후 저녁 7시경 그 책들을 택배로 보내기 위해 편의점에 가려고 자전거를 타려 했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뒷바퀴가 터져 있더군요. 소위 ‘빵꾸’난 것이지요. 그런데 한 달에 벌써 세 번째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첫 번째는 시골길에서 뒷바퀴가 터져 1시간 이상 끌고 가서 수리를 했었지요. 그때 저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수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는 집에서 운동을 하러 가는 코스에서 바퀴가 굴러가는 느낌이 이상해 확인해 보니 앞바퀴가 구멍이 난 듯했습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가장 가까운 자전거 수리점으로 가서 수리를 했습니다. 이때도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과 함께 빠르게 잘 대처해서 금방 수리한 나 자신에게 “잘 대처했어”라고 칭찬을 해주었지요.

그리고 나서 2주가 못 되어 이번에는 다시 뒷바퀴가 구멍이 난 것입니다. 추운 날, 어두컴컴하고 책들은 무거운데 이것들을 가방에 넣어 둘러 매고 제법 되는 거리를 걸어서 편의점에 도착하여 택배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길에서 제 마음에 “아, 이게 뭐야. 왜 자주 빵꾸가 나…”라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편의점 가기 전에 세웠던 계획은 ‘책들을 발송한 후 집에 돌아와 식사한 후 연재하고 있는 성경글을 하나 쓰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전처럼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게 뭐야~”라는 마음이 들면서 우울해지고 무력해지더군요.

식사를 평소보다 과식한 후 컴퓨터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 했지만 바로 포기하고, 기분을 전환해야 할 것 같아 의자를 뒤로 젖혀 잠시 수면 모드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일어나 보니 밤 1시더군요.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침대에 들어가 잔 후, 다음 날 아침 성경글을 쓰려고 집중하려 했는데 자전거 생각이 다시 떠올라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뒷바퀴가 완전히 바람이 빠져 끌고 가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제 마음에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다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마음이 생기는지 잘 몰랐습니다.

세 번이나 연거푸 그런 일이 생겼으니 짜증이 날 수는 있지만, 대개 다음 날이면 리셋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것을 멈추고 제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적용했던 방법이 “나의 이런 현상은 신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여기서 신념이란 ‘나의 자아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거의 자동적으로 패턴화되어 생각·느낌·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일종의 충동처럼 일어나는 것이지요.

만약 단회성으로 일어났거나 잠시 그런 느낌에 빠졌다가 금방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면 일시적인 심리현상으로 볼 수 있겠지만, 반복적으로 패턴화되어 나타난다면 그것은 신념화 과정에 있거나 이미 신념으로 굳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다시 질문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런 모습을 신념과 믿음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어떨까?” 그때 제 마음에 “그래, 이건 확실히 믿음과 반대되는 나의 신념에 해당되네”라는 확인이 왔습니다.

숨겨져 있던 내 마음의 본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게 뭐야~”라고 한 것은 사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는 마음에서 앞부분이 숨겨지고 뒷부분만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앞부분이 숨겨진 이유는 제 마음 속에 들어 있던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께 불경한 것이야. 그러니 드러내면 안 돼”라는 신념이 무의식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신념을 발견했는데,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나를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실 거야. 그러니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거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에서, “이런 마음을 가지면 불경하다”라는 것은 믿음이 될 수 없음을 먼저 깨달았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만들어 적용한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가 저의 내면을 숨기려는 태도는 하나님과 은혜의 관계가 아니라 저의 기준으로 ‘이래야 한다’고 규정하는 패턴일 뿐이었던 것이지요.

믿음은 우리의 연약함과 불경스러운 마음까지도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조차 품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신념은 내면을 숨기려 하지만, 믿음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엘리야가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이제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절망을 토로했을 때, 그것은 믿음의 고백이라기보다 좌절된 신념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먹이시며 회복시키셨습니다. 엘리야는 신념이 무너진 자리에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하였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고, 그 은혜 속에서 믿음이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하나님을 조건적으로 이해하는 기대일 수 있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 교육과 경험 속에서 형성된 조건적 신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믿음은 “하나님의 일을 해도 어려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인도하신다”라는 고백으로 자라납니다.

성경, 특히 잠언과 율법의 말씀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을 받는다’는 조건절적 표현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질서와 원리를 보여주는 지혜의 언어이지, 하나님을 거래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믿음은 조건을 넘어서는 은혜의 관계로 자라납니다. 말씀 속의 복은 단순히 어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붙들려 살아가는 은혜의 복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것을 지식적으론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삶에 적용시키지 못했던 것이지요.

곰곰이 저를 돌아보니 이러한 두 가지 신념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교회 예배를 거의 빠짐없이 드려왔습니다. 그때 설교나 교육을 통해 위의 것들이 각인되어 내면화되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신념들은 이젠 ‘그것이 당연한 거야’라는 당위성 기반 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신념들이 깨지자 저는 급격히 우울해지고 무력해졌는데, 이것 역시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정서적 패턴이었습니다. 이를 이름 붙인다면 정서 기반 신념에 빠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제 마음에 막힌 부분이 훌훌 털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제 마음에는 당위성 기반 신념과 정서기반 신념이 돌아가며, 혹은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들에 빠질 때마다 믿음에서 더 멀어진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제라도 제가 ‘제 안에 굳어져 있던 신념들이 드러나 믿음으로 전환되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삶 속에서 깨달아 가며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인생의 길이며 이때에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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