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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편_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이 글은 성경 시편 1편에 있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묵상한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편 1편 1~2절 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개역개정)

God blesses those people who refuse evil advice and won’t follow sinners or join in sneering at God. 

Instead, the Law of the LORD makes them happy, and they think about it day and night. (CEV 성경)

 

시편 1편의 말씀은 시편 전체를 아우르고 대표하는 말씀으로 마치 권두언과 같다고 합니다. 매우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복 있는 사람’이란 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기 보다는 신께서 복을 주신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위로 본다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신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것들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표현하고 나면, ‘복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주님의 말씀을 좋아하겠지.’로 정리될 수 있으며,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로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잘 알기에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의 말과 같이 권두언으로서 상징적인 말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며, 어떻게 복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시편 1편
시편 1편

 

 

2. 인간의 자아의 작동 원리

위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아’란 개념을 이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자아란 개념을 살펴보면, ‘자아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나란 존재’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좀더 깊게 살펴보면,

인간은 생각과 느낌(감정)을 통해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심리적으로 건강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상황 등으로 주어진 어떤 자극에 대해

지금 여기에 맞는 합리적인 ‘생각과 느낌’ 과정을 거친 후에

이에 바람직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생각과 느낌’ 자체가 합리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른 행동 역시 잘못된 모습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성경 구절에 나오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은 행동들로서, 우리가

악인들의 꾀를 따를 수도 있는
죄인의 길에 설 수도 있는
오만한 자리에 앉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내용입니다.

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 그런 외부의 자극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나는 그러한 외부의 자극에 넘어가지 않고
올바르면서도 합리적인 사람으로서 내가 행동해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니 이 말씀은
외부에서 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 나에게 주어질지라도,
나는 이를 능히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아가 행동하기 이전에 생각과 느낌이 바르게 작동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편_생각과 느낌이 바르게 된 사람
시편 1편_생각과 느낌이 바르게 된 사람

 

 

예를 들어,

나는 누군가에게 대단히 억울한 일을 당한 상황에 있을 때에
나의 생각과 느낌은 나를 억울하게 만든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죽여버리고 싶다는 분노에 사로잡혀
그에 따른 계획을 생각했다면 나는 그런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게다가 누군가가 ‘너는 억울하지 않냐’,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죽여라’라고 꼬드긴다면
나는 더욱 그런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내가 억울함을 당했을지라도 ‘나의 생각과 감정’이 말하길,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신께서 대신 풀어주실 것이다’라고 한다면
나는 상대방을 죽일 계획도 세우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행동 역시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과 느낌을 바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율법을 묵상하다

성경에서는 바로 ‘율법을 묵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묵상이란 깊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의미하지요.

좀 더 깊게 살펴보면,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그 말씀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려는 지 깨달으며,
그 말씀을 자신이 수용하려는 것을

포함한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즉, 율법을 묵상한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깨닫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서
결국 그 말씀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복있는 사람이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이 없이 무조건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자아는 생각과 느낌의 과정이 생략된 채 행동만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 채 그저 따라하는 기계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이지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든 목적과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은 타인의 목소리에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편견이 많으며 자존심은 높으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코 복된 사람이 아닌 것이지요.

 

시편 1편_타인의 목소리에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시편 1편_타인의 목소리에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4. 잘못된 묵상과 잘된 묵상

만약 시편 1편의 말씀을 설교로 듣거나 묵상한 이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어떨까요?

‘나도 복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도 묵상을 잘하면 좋겠다’

만약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실상은 바른 묵상을 한 것과는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깨달음도 수용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깨달음과 수용함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인 것입니다.

‘막연한 것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님’과 유사할 것입니다.

오히려 생각의 방식이 잘못된 방식으로 패턴화 됨으로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꿀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시편 1편의 이 말씀을 묵상한다면,

나는 평소에 언제 어디서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볼 것이며,

말씀을 좀더 잘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묵상할 것이며,

묵상 중에 깨달은 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하며

어떤 방식으로 피드백 받아야 하겠다

등의 생각과 느낌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시편 1편_잘못된 묵상과 잘된 묵상
시편 1편_잘못된 묵상과 잘된 묵상

 

 

 

5. 정리 및 소감

시편 1편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의 묵상!

묵상이란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을 통해 내가 깨닫고 내가 실행하려는 것’을 전제가 된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나는 바른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생각과 느낌의 대상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는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그에 대한 결과물로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행동이 무엇인지 깨닫고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이자,

복있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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