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의 시이자 송창식의 노래 ‘푸르른 날‘에 대한 글을 본 어느 분이 시인 윤동주님의 ‘눈 오는 지도(地圖)’를 추천하였고 기왕이면 이 시를 분석해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 역시 윤동주님의 시를 매우 좋아해왔으며, 그럼에도 이 시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매우 궁금하기도 했기에 이 시를 며칠간 찬찬히 읽어보다 이제 이 시를 분석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른 시도 그렇지만 이 시는 더욱 그의 내면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이는 것 같더군요. 윤동주란 사람 자체가 원래 마음이 깨끗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내면을 쉽게 보이는 간단한 분이 아니지요.
그의 시 전문과 함께 그의 시를 부분별로 나누어 그의 내면을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1.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 전문
2. 시 ‘눈 오는 지도’의 부분별 내면 이해
1) 순이와의 이별
순이(順伊).
시 전체 내용으로 보아 순이는 아마도 윤동주님과 한 가옥에서 살던 나이 어린 여자아이로 추정해 봅니다. 윤동주님의 전체 시들에서 순이가 세 차례 등장하는데 눈 오는 지도의 순이는 ‘떠나는 순이’로서 윤동주님에겐 이별, 슬픔의 대상이었던 것이지요.
이 시의 발표 연대가 불분명한 데, 전체 내용으로 볼 때 만주 북간도에 있었을 때 쓰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옥사하기까지 윤동주님의 인생 여정은 약 27년이었으며, 일본에서 체류한 기간이 약 2년이고 학교 다닌다고 서울에 있었던 기간이 5년 정도 되었으니 그의 만주 생활은 20년 정도 됩니다.
20년 기간 동안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많았겠지만 나라를 잃고 일본인들이 보기 싫어 북간도로 이주한 윤동주 집안. 그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헤어짐은 특히 많은 애상이 따를 수 있었을 것이며, 어쩌면 특히 귀여워했던 꼬맹이가 떠나는 것이라면 윤동주님의 성정 상 그 아쉬움이 매우 컸으리라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이만 떠나는 것은 아니었겠지요.
순이의 엄마도 아빠도 또 다른 사람도 있었겠지만 윤동주님의 눈엔 어린 아이가 밟혔나 봅니다. 아니 어쩌면 이 아이를 떠나는 전체의 대표로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필이면 그 날, 아침부터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도 알고 있습니다. ‘이럴 때 눈 내리면 안 되는데’하고 말입니다.
눈 내리는 날에 먼길을 떠나는 사람에겐 고생이 이만저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함박눈이 ‘이럴 때 내가 내려서 미안해’라는 마음으로 내린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사실상 이 문장은 윤동주님이 함박눈 내리는 것을 보고 ‘이런 날 순이가 잘 떠날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군요.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그런데 진짜 윤동주님의 속 마음은 많이 슬펐나 봅니다.
그런데 ‘지도(地圖)’란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영어로 ‘Map’이란 단어가 됩니다. 지도에는 땅의 지형, 높낮이, 형태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순이가 떠나는 윤동주님의 집과 주변 역시 땅의 지형, 높낮이 등으로 펼쳐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도의 특징은 넓은 지역의 크기를 줄여서 표시할 수 있습니다. 크기를 일정 비율로 줄이는 것을 ‘축척’이라고 하며 1:10,000이라고 하면 1만의 크기를 1로 줄이는 것이지요.
윤동주님이 ‘순이가 떠나는 곳 일대’가 아니라 ‘지도’라고 표현했으니 그 범위가 매우 넓어지는 것이며, 함박눈이 내리는 지역이 대단히 넓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기예보가 거의 불가능했던 시기에 옆마을조차 눈이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 가늠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주 넓은 지역에 눈이 덮힌다고 한 것’은 그 만큼 ‘그의 슬픔이 온 대지를 다 덮을 것 같다’는 의미로 쓴 것이지요.
결국 ‘지도’가 가리키는 종국의 단어는 바로 ‘나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윤동주님이 자신의 내면의 감정들을 은유적으로 자주 표현했었는데 그 감정들은 주로 ‘부끄러움’과 ‘슬픔’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의 내면엔 이 감정들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군요.
2) 이별에 대한 아픔
순이네가 살았던 방안을 돌아봅니다. 그런데 이젠 아무 것도 없는 빈방이지요. 공교롭게도 벽과 천정 역시 하얀색입니다. 밖에도 함박눈으로 하얀데 방안조차도 그렇습니다.
방안에 까지 눈이 내리는 것 같습니다. 순이가 떠난 방을 보니 참 마음이 더 슬픔을 느낀 것이지요.
그런데 윤동주님은 ‘잃어버린 역사처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가 망국의 시절이기도 하지만 굳이 이것에 빗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순이가 떠나는 것이 슬퍼서 망국에까지 빗댄다면 살짝 오버하는 느낌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순이가 떠나는 이유는 잘 되어서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대로 잘 안 되어서 더 안 좋은 곳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잘 되어서 떠날 때는 아쉬움이 있더라도 그렇게 마음이 먹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이네 상황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3)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은 순이
순이가 떠나기 전에 뭔가 일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순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지만 실상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뒤 늦게 편지라고 써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순이가 어디로 이사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순이가 이사 가는 지역, 그 지역의 어느 집을 정확히 정해 놓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평생 순이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4) 내 마음에 내리는 눈
발자국 앞에 ‘네 쪼그만’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조그만’도 아니고 ‘쪼그만’이라고 했습니다. 매우 작다는 의미를 가지지요.
거기에다 ‘네’ 즉 ‘너의’란 단어를 썼습니다. 웬만해서는 타인에게 반말을 쓰지 않을 윤동주님이 시에다 반말을 쓴 것은 그 만큼 나이차가 크다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에서 가장 안타까운 내용은 ‘따라갈 수 없다’로 보입니다.
그렇게 안타까우면 못 가게 하거나, 따라가서 도와주거나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윤동주님의 그 당시 처지로선 불가능했나 봅니다. ‘인간의 한계성’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인간의 한계성’으로 두는 것과 ‘나 자신의 한계성’을 두는 경우 내적 심리가 전혀 달라집니다.
‘인간의 한계성’으로 둔다면 ‘어찌할 수 없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이 되는데, ‘나 자신의 한계성’으로 둔다면 그는 ‘나란 사람이 못나서, 부족해서’가 됩니다.
결국 ‘내 책임이야’가 마음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에서 윤동주님의 마음은 후자인 ‘나 자신의 한계성’에 가까운 듯합니다.
처음엔 이를 모면하기 위해서 그가 따라가지 못한 이유를 ‘쪼그만 발자국에 눈이 금방 덮여 보이지 않아 따라 갈 수 없었다’로 합리화해 보았습니다. 심지어 봄이 되면 발자국이 있던 곳에 꽃이 필 것이라고도 해 보았습니다.
순이가 밟고 간 자리에 꽃이 필 것이라고 했으니 순이가 꽃길을 걸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합리화는 여기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다고 그의 ‘내 책임이야’라는 죄책감이 없어지지 않음을 스스로 안 것이지요.
비록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간다 할 지라도 일년 열 두달 그의 마음엔 계속 눈이 내릴 것이라고 했지요. 눈에는 상서로운 눈인 서설(瑞雪)이 있지만, 여기에서 윤동주님의 함박눈은 슬픔의 눈입니다.
그러하니 그는 순이를 찾는 동안, 또한 찾더라도 슬플 수 밖에 없음을 예감한 것이지요. 순이를 결코 다시 만날 수 없거나 종국은 불행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감 말입니다.
만약 윤동주님이 순이의 떠남을 ‘자신의 한계’가 아닌 ‘인간의 한계’로 적용했다면 어땠을까요?
나이 어린 윤동주님이 순이를 책임지기도 어려웠고 그를 따라 도와주기도 어려웠으며, 이는 비단 윤동주님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에 모든 인간들의 한계임을 인정했다면 그 안타까움은 안타까움으로 한계를 두고 그 마음을 접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오히려 언젠가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때까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귀결시켰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 한계를 자신의 한계로 두었기에 그는 한 없이 부끄럽고 서글프며, 자신이 부족하여 생긴 문제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이 시의 주제가 일반적으로 ‘순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순이에 대한 그리움’이기보다는 윤동주님 내면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고 있으며, 순이를 통해서 그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지는군요. 아주 가감 없이 말입니다.
3. 정리 및 소감
윤동주님의 시, 눈 오는 지도.
이 시를 해설하고 있는 제 자신이 애도 기간에 있기에 이 시가 더욱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마음 속엔 이 시의 마지막 구절같이 ‘일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가 차라리 내 마음을 편하게하지 않을까란 느낌도 들었지요. 한 없이 죄책감 속에 사는 것이 오히려 개인적으론 더 마음이 편하겠다는 느낌이지요.
하지만 나를 떠난 이가 나를 괴롭게 하려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
내가 스스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만들어 놓은 마음의 덫이지 떠난 이의 소망이 아니라는 것이 너무 자명하기에 이 시가 역설적으로 저에게 위로가 되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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