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시인 김남조의 ‘내가 흐르는 강물에’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시는 시인이 자신의 마음을 깊이 관조한 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럼 먼저 시 전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내가 흐르는 강물에 시 전문
2. ‘내가 흐르는 강물에’ 시의 첫 인상
이 시를 몇 줄 읽어 내려가니 먼저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시인이 굉장히 당돌한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마치 투우의 나라, 빨간 색의 열정적인 나라에서 탱고를 멋들어지게 치는 여인이 어느 날 마음을 가라앉히고 글을 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시인 이름을 보니 ‘김남조’.
사실 이름 보고 시를 다시 보면 안 되지만 ‘김남조’란 석자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만만치 않기에
무엇을 말하려고 이리 도입부가 강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시의 깊이 탐구
구름은 하늘이 그 가슴에 피우는 장미.
이왕에 내가 흐르는 강물에 구름으로 찬들 그대 하나를 품어가지 못하랴.
시인은 구름을 ‘하늘이 가슴에 피운 장미‘라고 묘사합니다.
쪽배를 타고 가면서 하늘을 보는 시인이라면,
그렇게 드러내어 볼 수 있는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빨간 장미를 단 장면이 연상되었습니다.
또한 시인은 강물에 비쳐진 구름을 보며
강물이 구름을 품고 있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군요.
그러면서 누구를 연상했는지 모르겠으나 대단히 호기롭게
‘그대 하나를 품지못하랴’라고 말합니다.
모든 걸 단번에 거는 도박사의 멋으로
삶의 의미 그 전부를 후회없이 맡기고 가는 하얀 목선이다.
더군다나 시인은 자신의 말을 좀 더 구체화하려는지 바로 ‘도박사’를 연상했습니다.
아마도 라스베가스에서 모든 것을 올인하는 한 도박사의 모습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시인은 ‘도박사의 멋’이라고 표현했군요.
이것을 시인은 ‘인생’이라는 것으로 바꾸어 표현했습니다.
마치 모든 삶을 후회 없이 배팅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게다가 역시 시인 답게 ‘목선을 타고 가는 것’을 인생으로 바로 표현했군요.
여기까지 읽으니 아마도 ‘목선을 타고 가면서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낭만에 빠져 있지 않았나’란 생각도 드는군요.
차가운 물살에 검은 머리 감아 빗으면 어디선가 울려오는 단풍나무의 음악
꿈이 진실이 되고 아주 가까이에 철철 뿜어나는 이름 모를 분수
그런데 시인은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갑니다. ‘차가운 물살에 검은 머리를 감아 빗는다’고 하는군요.
쪽배일지라도 그 물가에 머리를 담아 감는다니 실제 행동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어찌 보면 대범하기조차 한 행동입니다.
대범한 행동을 하였기에 보였을까요?
단풍나무 음악, 꿈이 진실이 되고 철철 뿜어나오는 이름모를 분수. 환상의 세계…
옛날 같으면야 말만 들어도 사랑은 어지럼병
앞의 내용과 달리 이 구절에서 뭔가 흐름이 크게 전환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야’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어질어질했다고 하는군요.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했을까요?
지금은 모든 새벽에 미소로 인사하고 모든 밤에 침묵으로 기도한다.
‘지금은’,
모든 새벽엔 미소로 인사하고, 모든 밤엔 침묵으로 기도한다.
이 미소와 침묵을 모두 시인의 ‘기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어나는 새벽 시간, 그리고 잠자리에 들 한 밤의 시간에 기도하고 있을 시인은 아마도
‘무엇을 신께 요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길 소망하는 기도로 보이는 군요..
그러므로 ‘지금은’ 사랑은 자신을 어지럽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옛날과 지금은 전혀 달라졌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옛날과 달리 지금의 모습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군요.
내처 내가 가는 뱃전에 노란 램프로 여긴들 족하리라.
이왕에 내가 흐르는 강물에 불빛으로 찬들 그대 하나를 태워가지 못하랴.
그리하기에 이젠 ‘내처’, 즉 줄곧 한결같이,
시인은 자신의 삶이 마치 자그마한 배 앞에 희미하게나마
앞을 비추는 노란 등불이 되어도 족하다고 하는군요.
시인의 성품이 호기롭기에 ‘그대 하나를 품지 못하랴, 태워가지 못하랴’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이젠 시인의 마음이 어지럼병에 빠져 들지 않으며,
하늘의 구름이 장미꽃과 같은 어지러운 모습을 할 지라도
그것을 품은 강물은 그저 잔잔할 수 있음 같이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다스릴 수 있기에,
이제는 그 누군가를 품고 인생의 배에 함께 타고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백이자 다짐인 것이지요.
4. 시인의 마음 챙김
긴 세월, 시인의 새벽과 한 밤의 기도!
이것이 시인의 ‘마음 챙김’이었음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시는 결국 시인의 마음 다스리기,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할 땐 그대 한 사람도 품을 수도, 함께 갈 수도 없었음을 고백하는
역설(逆說)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듯 합니다.
5. 정리 및 소감
이번 글은 김남조 시인의 ‘내가 흐르는 강물에’를 통해, 마음 챙김과 그 중요성을 다루어보았습니다.
시의 내용은 마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들을 반영한 듯 하네요.
마치 인생을 호기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어지럼병으로 흔들려 버리는 우리.그 마음이 불안이든 두려움이든 아니면 분노이든,
마음이 제 자리에 있지 못하기에 단 한 사람도 제대로 품지 못하는 우리…
누군가를 품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상대방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그의 감정과 생각에 공감하며,
그가 필요로 하는 지지와 사랑을 넉넉히 베푸는 것.
때론 아무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
이렇게 단 한 사람이라도 품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잘 챙기고 다스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마음 다스림의 중요함과 방법을 시인은 나름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결국 ‘내가 흐르는 강물에’는 인생의 흐름 속에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글을 쓰면서 덕분에 나의 인생의 흐름 속에서 나의 마음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조차도 품고 살아갈 수 없는 그런 나인지 말입니다.
김남조 선생님의 다른 시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그대 있음에’를 살펴하시면 좋을 것 같군요.
상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마음의 치유 시이지요.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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