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족장시대인 창세기 15~16장의 ‘아브람의 갈림길_ 언약 앞에 선 믿음과 조급함‘를 공부하였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창세기 17장의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_ 삶이 새롭게 되다’이란 주제로 성경을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말씀 속에서 깊은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 족장 시대: 창세기 12-50장
4.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_ 삶이 새롭게 되다 (창세기 17장)
(1) 본문 줄거리
아브람이 99세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내 앞에서 행하며 완전하라”는 부르심을 주신다. 이는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살아가려는 신앙의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후 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을 새롭게 확정하시며,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으로 바꿔 주신다. 그리고 사래의 이름도 사라(열국의 어머니)로 바꾸시며, 그녀에게서 약속의 자녀가 태어날 것임을 밝히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엎드려 웃으며 현실의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웃음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 하라”며 웃음을 언약의 이름으로 품으신다.
하나님은 이삭과 언약을 세우실 것을 분명히 하시면서도,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언약의 표로서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받은 바로 그 날, 자신과 이스마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며 즉각적인 순종으로 응답한다.
(2) 주요 등장인물
① 아브라함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인물이다. 전에는 자녀 없는 현실에 흔들렸지만, 이제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새로운 존재로 부름받는다. 약속이 여전히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시행함으로 언약에 응답한다. 믿음은 과거의 흔들림을 딛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반응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심 인물이다.
② 사라
이전 이름은 사래였으며, 하나님이 새롭게 ‘사라’라 부르신다. 고통스러운 불임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열국의 어머니”로 세우신다. 비록 본문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 역시 언약의 동등한 주체로 불림받으며 하나님의 언약은 남성만이 아닌 여성의 존재도 새롭게 부르신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③ 이삭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본문 속에서 처음으로 이름과 존재가 예고된 언약의 자녀이다. 그의 이름은 ‘웃음’이며, 이는 아브라함의 반응과 하나님의 품으심을 상징한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이 사람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표지로서 등장한다.
④ 이스마엘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서 태어난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아브라함은 그를 통해 언약이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하나님은 언약은 이삭과 맺겠다고 분명히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약속하신다. 언약은 아니지만, 은혜는 여전히 흘러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⑤ 하나님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이라 소개하시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시며 언약을 재확인하신 분이다. 인간의 조급함이나 웃음조차 품으시며, 그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언약의 주체이자 포용의 하나님으로 등장하신다.
(3) 주요 사건 및 내용
1_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 언약 앞에 선 삶의 태도 (창세기 17:1–8)
1) 아브람이 99세 되었을 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신다.
- 처음으로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소개하시며, 아브람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명령을 주신다(17:1).
- 이는 단순한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분 앞에서 살아가라는 ‘신앙의 태도’를 요구하는 말씀이다.
2)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새롭게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신다.
- 이전에도 자손과 땅의 약속을 주셨지만, 이제 그 언약이 개인의 바람을 넘어 ‘언약 공동체’를 이루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시며, 아브람은 얼굴을 대고 엎드린다(17:2–3).
- 아브람의 반응은 경외, 순종, 준비된 믿음의 자세를 보여준다.
3) 하나님은 언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시 확언하신다.
-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 “내가 너와 네 후손 사이에 내 언약을 세워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며…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 땅의 약속 역시 반복되며, 하나님께서 ‘너의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언약 중심의 정체성이 선언된다(17:7–8).
4) 이 장면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심에 놓인 언약이다.
- 그 관계를 위한 조건은 “내 앞에서 행하며 완전하라”는 부르심이다.
-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살아가려는 태도의 방향성이다.
2_ “이제부터는 아브라함이라 하라” — 이름이 바뀌는 존재의 전환 (창세기 17:5–14)
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새 이름을 주신다.
-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음이니라.” (17:5)
- 아브람(높은 아버지) →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이름의 변화는 단지 호칭의 변경이 아니라, 존재의 소명과 정체성의 갱신을 의미한다.
2) 동시에 하나님은 사래에게도 새 이름을 주신다.
- “사래는 사라라 하라” (17:15)
- 사라(공주, 귀한 여인)는 장차 열국의 어머니로 부름받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의 언약은 남성 중심의 전통을 넘어 ‘사라’라는 여인을 동등한 언약 주체로 세우는 장면이기도 하다.
3) 이름의 변화에 이어 하나님은 언약의 표징으로서 ‘할례’ 제도를 제정하신다.
모든 남자는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며, 이는 세대 간에 이어지는 언약의 징표가 된다.
“이것이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7:10)
이는 육체에 새기는 표식으로, 신앙 공동체로서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소유됨을 상징한다.
4) 하나님은 언약에서 제외된 자들에 대해서도 명확히 경고하신다.
-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는 언약에서 끊어질 것이라 하셨다 (17:14).
- 이는 언약이 은혜로 주어지되, 공동체적 책임과 응답이 동반된다는 긴장감을 보여준다.
5) 전체적으로 이 소주제는 하나님이 부르신 존재로서 어떤 기준을 따르고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내용이다.
- 이름의 변화는 단지 부름의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소명적 전환이다.
- 동시에 할례는 믿음이 삶의 흔적으로 새겨지는 방식을 보여준다.
3_ “하나님은 웃음을 품으셨다” — 불가능 속에서도 이어지는 언약 (창세기 17:15–27)
1)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시며, 그녀를 통해 아들이 태어날 것을 분명히 약속하신다.
- “열국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백성의 왕들이 그에게서 나리라.” (17:16)
- 하나님은 사라 역시 언약의 주체로 세우시며,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도 구체적인 소망을 주신다.
2) 아브라함은 엎드려 웃는다.
- 그의 웃음은 백세와 구십세라는 조건 앞에서 놀람, 의심, 기쁨이 뒤섞인 인간적인 반응이었다(17:17).
- 그는 이스마엘을 통해 언약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표현한다(17:18).
3)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반응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 하라”고 말씀하신다(17:19).
- 즉, 아브라함의 웃음마저 하나님의 언약 안에 품어 그 이름으로 새기시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인간의 믿음 없는 반응도 배제하지 않고 끌어안으시는 포용의 하나님으로 드러난다.
4) 이삭과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확답하신 후에도,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17:20).
- 언약의 대상은 이삭이지만, 하나님의 자비는 이스마엘에게도 흐른다.
- 하나님의 언약은 엄격하되, 하나님의 마음은 자비롭고 따뜻하다.
5)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한다.
- 말씀을 들은 그 날로, 자신과 집안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언약에 응답한다(17:23–27).
- 웃음 뒤에도 그는 순종했다. 믿음은 흔들릴 수 있지만, 말씀 앞에 돌아오는 방향성으로 자란다.
(4) 말씀을 따라 느끼고 살아내기
1)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① 교훈 요약: 하나님은 99세의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 소개하시고, “내 앞에서 행하며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단지 무언가를 믿는 마음을 넘어, 하나님의 얼굴을 의식하며 살아가겠다는 삶의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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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서적 질문: 내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갈 때, 내 안에서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나요? 혹은 그런 상태가 익숙하게 느껴지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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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느낌의 뿌리: 혹시 하나님은 너무 멀게 느껴지고, 내 삶은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내면의 거리감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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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실천 적용: 오늘 하루 중 짧은 시간이라도 “지금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고백을 한 번 입 밖으로 내어보세요. 믿음은 그분의 시선을 다시 기억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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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를 새 이름으로 다시 세우신다
① 교훈 요약: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는 단지 호칭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불림받았다는 상징입니다. 믿음은 지금의 나를 넘어서, 하나님이 보시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결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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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서적 질문: 하나님이 “너는 나의 자녀다”, “나는 너를 부른다”고 하실 때, 그 부르심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부담되거나 피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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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느낌의 뿌리: 혹시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거나, “하나님의 기대에 걸맞지 않다”는 자격지심, 자기 실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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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실천 적용: 스스로를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믿음의 사람이다’라고 한 번 불러보세요. 하나님이 부르시는 이름대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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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은 내 웃음조차 언약으로 품으시는 분이다
① 교훈 요약: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웃었습니다. 믿으면서도 의심하고, 바라고 싶으면서도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이중적인 마음이 그의 웃음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웃음을 거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응마저 품으시며 언약을 이루어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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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서적 질문: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고 마음속으로 웃거나, 애써 감정을 눌러버렸던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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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느낌의 뿌리: 그 웃음은 혹시, 실망하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 본능이나 너무 오래 기다린 끝에 포기하는 습관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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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실천 적용: 오늘 하루, “말도 안 돼…”라고 여겨지는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한 번 다시 떠올려보세요. 믿음은 의심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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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창세기 17장을 따라 드리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 앞에 섭니다. 스스로 전능하시다 말씀하시며 “내 앞에서 행하라”고 하신 그 음성을 제 삶에 다시 새기고 싶습니다.
약속은 분명하지만 현실은 자주 흔들리고, 저는 여전히 연약해서 조급한 선택에 마음이 끌릴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라 불러주시고, 사라라 불러주시며, 이름을 넘어 존재를 새롭게 하시는 아버지를 다시 신뢰하고 싶습니다.
제 안에도 오래된 이름들이 있습니다. 불신, 체념, 포기… 하지만 이제는 그 이름을 내려놓고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이름대로 다시 살아가고 싶습니다.
때로는 웃음처럼, 믿으면서도 의심하는 마음이 올라오지만 그 순간조차 포용하셔서 ‘이삭’이라는 이름으로 언약을 이루시는 아버지의 인내를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응답으로 오늘을 순종하며 걷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사라라는, 이삭이라는 이름을 직접 붙여주시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름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때론 작명소에서 짓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이름 속에 좋은 의미를 담아서 짓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이름을 지어주신다면 어떻게 지어주실까? 궁금해지더군요. 어찌되었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불려질 이름이면 좋겠다란 마음이 드는군요.
성경공부를 마치신 분들께 독수리가 날개침같이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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