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마음에 음악이 흐르시나요?
저도 그러니 다들 그럴지도요.
다만 이런 이야기는 서로 하지 않지요.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추어 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저의 경우, 평상시에 흐르는 음악은 가사가 없는 곡일 때가 많습니다.
대개 이 경우 금방 잊혀지지요.
가끔 길을 가다가 그 음악을 입 밖으로 끌어낼 때도 있지요.
때론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어떨 땐 독주를 하듯이
제 마음에 흐르는 소리가 세상에 나왔다 곧 어디론가 흩어져 나가는 순간이지요.
그런데 어떨 땐 가사가 붙어서 나올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 없는 가사와 곡조가 합일을 이루어 제 마음에 흐르는 것이지요.
이 때도 때론 입으로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금방 어디론가 흩어져 나가지요.
다시 그것을 주워담으려 한 적도 있었지만 거의 불가능하더군요. 그냥 저에게 잠시 왔다가 그냥 사라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고 말입니다. 오직 나만의 세계가 되니까요.
그런데 최근에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나도 모르게 흘러 나온 노래가 있었지요.
이 노래는 제가 억지로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노래입니다.
제가 재수했을 때 선배의 집에서 반년 정도 머물렀는데 선배가 모아 두었던 레코드판을 통해 들었던 노래이지요.
바로 가수 송창식님의 노래인데요.
누가 그녀를 보았는가,
아무도 모른다네, 나도 모른다네.
사슴을 닮아서 눈이 맑은 그 여자.
혼자서 먼 길을 떠나버렸네…
난 그만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꽃보다 더 아름다운 나의 여인아~’
젊은 송창식의 음성으로 들었던 그 노래가 그 당시 왠지 제 마음을 후벼팠는가…
여러 차례 가사를 보며 불러보았던 노래였는데요.
제목도 모른 채 불렀던 노래, 찾아보니 ‘꽃보다 귀한 여인’이더군요.
물론 그 이후로도 가끔 혼자 조용히 길을 가다 불러보았던 노래,
이 노래가 하필이면 요즘 제 마음에서 흘러나오다니요.
아마도 앞에 언급한 나만의 노래나 음률이 흘러나왔던 것은 저의 우뇌의 복합적인 창작활동과 관련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 녀석들은 감정적인 부분을 직관적으로 창작하는데 능숙하니까요.
그런데 송창식의 노래는 제가 온전히 기억을 해야 가능하지요.
기억이 되려면 각 가사가 암호화되어 뇌세포에 각각 저장되었다가
다시 밖으로 리뷰나 인식, 회상 중의 어느 과정을 통해 여러 차례 회수되므로 가능하게 되지요.
이 노래는 틀림없이 이런 과정을 통해 머리 속에 보관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뇌 속의 기억은 일사천리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파편처럼 기억되는데, 그 이유는 각 뇌세포에 흩어져 기억된 내용들이 하나씩 여기 저기 우후죽순 기억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노래가 다른 시기가 아닌
이 시기에 제 마음에 찾아온 것은
뇌의 복합작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의 뇌에 보관된 저의 히스토리는 이 시기가 슬프고 두려웠던 시기이기도 하지요.
곰곰이 작년 이 시기를 더듬어 보니 저는 망망한 바다를 눈물을 머금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바다가 아내를 품에 안은 것이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제 1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뇌는 이 노래를 아내의 추모곡으로 선택했나 봅니다.
어렸을 때 뭣도 모르고 감성에 취해 기억에 담았었는데,
뇌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이 즈음 이 노래로 아내를 추모하길 바랬나 봅니다.
이 노래의 가사와 같이 사슴을 닮아 눈이 크고 맑은 여자,
떠난 것도 이 노래의 가사처럼 혼자 먼 길을 떠났었지요.
하지만 이 노래는 그녀가 간 곳이 아무도 모른다고 했는데,
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녀가 간 곳을 말입니다.
이 노래가 제 마음에 지금 흐르고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참 좋아했던 이 노래가 이제 제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추모하게 하는군요.
오랜 만에 진한 눈물도 흘려보고 말입니다.
제 사정을 잘 아는 뇌란 녀석이 연출해낸 작품인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