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현재 사회에 만연되어 있으면서 커다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감정들인 분노와 혐오감이 사회에 어떻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분노와 혐오감 중 어느 감정이 더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합니다.
분노라는 감정은 대개 ‘정당해야 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할 때, 당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못할 때, 정상적이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못할 때’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상대방을 마주했을 때 분노는 즉각적으로 표출될 수 있지요. 이러한 분노는 상황이 다시 정당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사그라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를테면, 동료와 갈등이 있더라도 오해가 풀리고 사과가 오갈 경우 다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지요.
반면, 혐오감은 역겨움에서 파생된 감정입니다. 역겨움은 썩은 냄새가 날 때, 이상한 맛이 나서 도저히 먹지 못할 때 등 내 몸의 감각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 감정을 느낄 때 ‘저건 너무 싫어, 거부하고 싶어’란 느낌을 가지게 되지요. 이것은 느낌이 수행하는 일종의 심리적 해석입니다.
혐오감은 감각의 거부감이기보다는 심리적 거부감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무조건 싫어. 무조건 거부할거야’ 등으로 심리적으로 상대를 무조건 밀어내려고 합니다. 이때 ‘왜 거부하려고 하지?’란 질문이 따른다면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그 감정이 크고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경우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싫어’와 같이 뇌가 아예 이성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혐오감은 마음속에서만 느끼고 외부에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특정 사람을 내심 싫어하더라도 겉으로는 친근하게 대하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반면에 분노는 쉽게 드러납니다. 분노가 빠르게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분노가 항상 위험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지요.
분노와 혐오감이 결합된 사례
가장 위험한 상황은 분노와 혐오감이 결합될 때입니다.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는 홀로코스트를 들 수 있지요. 나치 정권은 유대인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사회 전체에 퍼뜨린 뒤, 분노를 자극하여 이를 폭력으로 표출했습니다. 혐오감이 내면에 자리잡고, 분노가 동력이 되어 대규모의 증오 범죄로 이어진 것이지요.
또 다른 사례로는 개인적 관계에서의 파탄을 들 수 있습니다. 부부 관계에서 초기에 갈등과 분노로 시작된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변해 가는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오해와 다툼이었지만, 해결되지 않은 채 쌓이면서 “이 사람은 도저히 못 참겠다”라는 심리로 발전해 결국에는 이혼이라는 결말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혼 후에도 혐오감이 남아 있는 경우 자녀 문제나 재산 분할과 관련하여 끝없는 갈등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세상에 정말로 거부할 이유가 없는 사람은 없을까요? 아이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데,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서조차 좋은 점이나 수용 가능한 면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요?
분노와 혐오가 서로 결합되면 타협의 여지가 사라지며, 상대방도 방어를 위해 반대쪽을 혐오하며 무조건 거부하려 합니다. 끝장을 봐야만 한다는 태도로 변하지요. 부부의 이혼 원인을 보면,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이미 자리잡은 무조건적인 거부 심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태도가 자리잡을수록 화해의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게 됩니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나는 상대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혐오를 담아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요?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며, 이러한 심리적 차이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 사회 현상에서 자주 목격하는 사람들의 감정들은 분노와 혐오입니다. 이전에는 분노와 혐오가 지역성을 가졌으나 이젠 정치 정당들간은 물론이고 같은 종교임에도 분노와 혐오를 통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처음엔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따져볼 것도 없이 서로 거부하고 밀어내는 양태가 심각하게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원래 정치는 타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죽이고 살리네 하면서도 타협점을 찾고 서로 악수를 하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타협은 일종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협도 협상을 해야 가능성이 생깁니다. 혐오와 분노가 너무 자리잡아 협상조차 못하기에 타협이란 마치 물 건너간 것처럼 보입니다.
현재 과연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갈등들이 타협을 통해 다시 조화가 이루어질지 궁금해지는군요. 이를 위해선 앞에서 말한 분노와 혐오로 만들어진 감정들에서 먼저 혐오를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노는 낼 수 있지만 혐오는 떨구어 낼 수 있는 심리적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