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찾아보게 되는 시, 박목월의 ‘가정’을 사색해 보았습니다.
이를 소개합니다.
1. 시인 박목월 소개
시인 박목월은 1915년에 태어난 1978년도에 사망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가 약 30세 당시 해방, 35세에 6.25 전쟁을 맞이했지요.
본격적인 문단활동은 1940년이니 만 25세가 되며 시인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이란 시집을 공동 발표하므로 청록파 시인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1962년도에 발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연세로 보면 만 47세이지요.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으며 시기적으로 보아 가정에서 특히 자녀들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야 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시를 쓰지 않았을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시의 세계는 크게 3단계로 변화하는 듯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모습이 강했다면,
중년의 시기에는 뭔가 가정 등 생활 속에서 느낀 것을 시상으로 옮기셨으며,
나이들어서는 좀더 종교신앙과 관련된 시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럼 본격적으로 시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2. 박목월의 ‘가정’ 시 소개
지상에는
아홉 컬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컬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 구문 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 구문 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3. 시 ‘가정’ 사색
시 ‘가정’을 보니 선생님의 다른 시와 달리 유독 과장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선생의 시에는 ‘남도 3백리’와 같이 은근 슬쩍 은유나 상징, 과장을 살짝 섞어 써서 시의 맛을 내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는데 이 시는 다른 시보다 유독 과장법을 많이 사용하였네요.
1) 첫 연에 나오는 ‘아니’ 라는 부사구가 있습니다.
‘지상에는’이란 구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것을 계속 ‘아니’란 단어로 받아 아홉 켤레 신발이 있는 곳,
그 신발들이 여기저기 움직이는 모습이 연상되게 하였습니다.
신발이 움직이는 것은 가족들이 움직이는 것,
마치 어느 슬라브 벽돌로 만든 어느 작은 집,
노란 조그만 알전등이 한 밤에는 문앞에 켜져 있는 집,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집에 아이들이 바글바글 대며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2) 둘째 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의 신발은 19문 반.
옛날에는 신발에는 센티미터보다 문수를 사용했지요.
1문이 2.4cm라고 합니다.
19문반은 47cm가 됩니다. 말도 안되게 큰 신발이지요.
아홉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의 신발을,
아니 그런 아빠는 땅에 굳굳하게 서야 하며
절대 쓰러져서는 안 되는 그런 아빠인 것이지요.
그렇지요. 가장은 가정의 보루인데 보루가 쓰러져서는 안되겠지요…
3) 셋째 연을 보면 참 마음이 짠해지네요. 환한 아빠의 미소 그리고 19문 반!
그런데 그 미소가 존재하는 곳은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곳이라고 하는군요.
그는 그런 추운 밤거리를 걸어 왔는데 그 집도 마찬가지인 것을 표현한 듯합니다.
이럴 때 아버지로서 어떤 감정이 들까요?
두 마음이 교차할 것입니다.
추움에 대한 미안함과 그럼에도 아이들을 마주하는 그런 기쁨.
그는 이 두 교차하는 감정에서 미안함의 마음이 더 컸던 듯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욕구 중의 하나가 안전 욕구인데
이걸 제대로 못해주는 아비의 마음은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이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연의 마지막에 있는 십구문반은 더욱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4) 마지막 연은 이 시를 마주하기보다는 외면하고픈 내용입니다.
그의 격한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는, 박목월이란 시인도 어찌할 수 없는 가장이구나,
그의 내면의 날것, 아니 아버지들의 이중적 삶의 모습을 그대로 직면하는 듯해 정말 피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세상에 나가면 한없이 약한 존재이기도 한 아버지.
그 아버지가 집에서는 대단히 센척하는 모습!
이 이중적 모습에 가장 속타는 것은 아버지 자신!
결국 숨길 수 없는 마음의 한켠!
아버지란 것, 참 어설픈 존재!
이런 감정이 마구 섞여 있는
참 어정쩡한 미소…
그가 첫 소절부터 과장하듯 시를 써 내려간 것은 결국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과장해서 숨기고 싶은 마음으로 여겨지는군요.
4. 정리 및 소감
이 시를 사색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감정은 ‘부러움’이었습니다.
솔직히 시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비록 아버지로선 어설플지라도 ‘내가 아버지다’라고 자녀들은 물론 이 시를 읽는 만인들에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부럽다는 것이지요.
‘일만 스승은 있으나 아버지는 많지 않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훈육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이러한 스승의 모습으로 자녀에게 각인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스승과는 또 다르다는 것이지요.
시인 박목월 선생님은 스승이 아닌 아버지 역할을 참 잘 하신 것 같습니다.
현재 저의 모습을 본다면 이에 대해선 매우 부끄럽단 마음입니다. 이제라도 아버지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어 봅니다.
또한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이와 관련 글을 더 읽어보시고 싶으신 분들께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란 시에서를 추천드리고 싶군요.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