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불과 얼음’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관지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과 얼음> -로버트 프로스트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 끝나리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끝나리라 말한다.
욕망을 맛본 나는 불을 택한 사람들 편에 섰다.하지만 만일 세상이 두 번 망해야 한다면
이미 증오에 대해 알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얼음도 불 못지않아 충분히 세상을 파멸시키리라고.Some say the world will end in fire;
Some say in ice.
From what I’ve tasted of desire
I hold with those who favor fire.
But if it had to perish twice,
I think I know enough of hate
To know that for destruction ice
Is also great
And would suffice.
위의 시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짤막한 시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시인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이 시는 미국의 유명한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입니다.
아마도 로버트 프로스트는 몰라도 ‘노래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로 시작하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는 기억날 것입니다.
교과서에 실렸던 시였으니까요.
이 시인은 일상생활 중에서 자주 보는 사물을 대상으로 시를 썼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농장에서 생활을 했기에 시골과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지요.
다만 그 사물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은유와 상징의 방식으로 표현하길 좋아했습니다.
‘가지 않은 길’에서도 ‘인생’을 길로 표현했 듯, 위의 시에서도 욕망과 증오를 ‘불’과 ‘얼음’으로 표현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그의 시표현 방식이 대부분 이러하므로, 그는 사물을 그저 사물로 본 것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새로운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요.
이것은 그의 기질성향이 감각을 주로 사용하는 ‘실제형’이기보다는 직관과 영감을 주로 사용하는 ‘이상추구형’의 성향이 좀 더 많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상추구형만 대단히 높은 사람은 아닌 듯 합니다.
이상추구형의 시는 보다 만연적이고 은유적이며
추상적인 단어나 표현이 많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이상추구형의 사람들은 어렸을 때는 추상적인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영감 혹은 직관을 통해 새로운 것을 느끼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 능한데
어린 시절에는 모르는 것이 많은지라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추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즉 생각은 많지만 좀 막연하며 때론 몽상적일 수 있는 성향이지요.
실제로 그가 시인으로 정착하기 이전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보다는, 무엇을 해야할지 그 길이 맞는지 등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상추구형의 사람들은 실제형의 사람들보다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요.
그의 경우도 하버드대 중퇴, 기자생활, 농사생활 등을 거쳐 36세가 되어 영국으로 건너가 시를 본격적으로 배우며 시인으로 등장하지요. 시인이 되기위해 그는 먼 길을 걸은 셈이지요.
물론 그러한 경험들은 그가 자신을 찾으며 자신을 통찰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성향이 이상추구형은 물론 유연형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성향은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통찰능력이 더욱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시를 보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것 두 개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욕망, 다른 하나는 증오입니다.
이것을 각각 불과 얼음으로 표현했지요.
흔히 욕망의 화신, 냉혹한 증오라는 표현을 쓰므로
욕망을 불로, 증오를 얼음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2. ‘맛보다’와 ‘이미 알다’
저의 경우 이 시를 읽으면서 눈길을 멈추었던 대목이 바로 ‘맛보다’와 ‘이미 알다’였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욕망을 맛보고 증오를 이미 안다고 했는데
이를 맛보고 안다고 해서 그가 실제로 욕망 덩어리도,
증오에 가득 찬 사람도 아닐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가 이 시를 발표한 나이가 만 46세였으므로 충분히 인생에 있어서 욕망과 증오의 장면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고 자신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그는 이것들에 대해 깊은 통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과 관련 핵폭탄, 식량기아, 병원균 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실제형이라면 이런 것들이 먼저 연상되었을 가능성이 크지요.
또한 꼭 욕망과 증오가 세상을 멸망시킬 1순위 2순위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통찰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기에 뭐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인간의 욕망과 증오가 세상을 멸망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앞에서 말했던 핵폭탄, 식량기아, 병원균 등도 모두 인간의 욕망과 증오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3. 심리적 관점에서 살펴본 ‘욕망’과 ‘증오’
그렇다면 욕망과 증오를 심리학과 잠깐 연결해서 살펴보면 어떨까요?
1) 욕망(Desire)
정신분석학자 라캉에 의하면 욕망이란 욕구과 요구의 간격이라고 했습니다.
욕구(Need)는 생리적 충동으로 인해 생긴 무의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요구(Demand)란 욕구를 언어를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했지요.
무의식의 욕구를 언어로 모두 표현할 수 없으므로 그 간격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채우지 못한 그것을 욕망이라고 했으니 이는 더더욱 무의식에 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간격이 크면 클수록 나는 욕망이 클 것이며, 그 욕망을 채우려는 무의식적 휘둘림은 더 커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휘둘림이 크면 클수록 나로 인해 다치는 사람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세계 제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어쩌면 자신의 무의식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 욕망덩어리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며, 이러한 욕망 덩어리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휘둘림의 크기는 커질 것이며 세상은 더 멸망할 가능성이 커질 것입니다.
2) 증오(hatred)
그렇다면 증오란 감정은 무엇일까요?
증오란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감정을 좀 더 나눠 살펴보면 역겹다 못해 혐오하는 마음이 자리 잡아 있습니다.
또한 그것에 대해 격노하는 감정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니 일상적인 ‘미움’이라는 감정보다는 훨씬 강렬하고 왜곡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미워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나는 너를 어떠한 이유로 싫어한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는 부정적인 인정자극과 관련됩니다.
그러하기에 미움의 대상이 되는 어떤 것을 더이상하지 않고 또한 용서를 구한다면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너를 증오한다’라고 한다면 너를 혐오하다 못해 너를 박살내고 싶은 감정이 치솟는다는 말이니 이는 증오하는 사람 자체가 이미 감정의 휘둘림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어떤 정상적인 용서 구함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두 존재는 극대 극의 대치가 될 것입니다. 결국 한쪽이 망하거나 공멸하거나 하는 결론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서로에 대한 증오가 크면 클수록 세상이 멸망할 가능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4. 정리 및 소감
로버트 프로스트가 심리학적 관점에서 썼는지는 저도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는 자신의 통찰을 통해 이를 이해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의 시를 심리학이란 것에 빗대어 살펴보았는데 어떠신지요?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