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온누리를 모두 덮은 듯 하군요.
작년 이맘 때에도 눈이 왔을 때 윤동주님의 ‘눈 오는 지도’와 만남을 가졌는데, 금년에는 한국 교과서에 실린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로 우리 나라에 잘 알려진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를 만나볼까 합니다.
함께 시 감상을 해보기로 하지요.
1.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시 전문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서
내가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
여기 멈춰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당나귀는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듯이
흰당나귀 방울을 흔들어 쩔렁거린다.
방울 소리 외에는 숲을 쓸어가는
부드러운 바람과 하늘거리는 눈송이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다운데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But 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2. 시 감상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어서
내가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
여기 멈춰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화자는 어느 눈 덮인 숲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숲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그 주인이 생각났나 봅니다. ‘나는 여기, 당신의 숲에 있는데 당신은 여기에 없네요’라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굳이 이 내용을 시에 포함시킨 것은 아마도 묘한 느낌이 화자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엇갈림’으로 인한 그 무엇의 느낌일 듯 하군요.
숲의 주인이라면 응당히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마치 인생이란 ‘엇갈림’ 속에서 사는 것이란 느낌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내 당나귀는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달조차 애초에 뜨지 않고 밤이 가장 긴 동지 그믐날이기에,
매우 어둡기도 하거니와 눈 덮인 숲과 얼어 붙은 호수 사이에서 주인을 따라 멈춰 서 있는 당나귀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함께 다니던 주인은 그 숲을 경이롭듯이 바라보고 있으니 다행인 듯 하면서도 뭔가 이상할만 합니다. 어쩌면 ‘이 양반, 또 그러네, 병이 도졌나?’란 느낌을 가졌을지도요.
마치 인생이란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것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듯이
흰당나귀 방울을 흔들어 쩔렁거린다.
방울 소리 외에는 숲을 쓸어가는
부드러운 바람과 하늘거리는 눈송이뿐
시간이 너무 지체되자 당나귀는 정신 못 차리는 주인에게 했던 여느 때처럼 방울을 흔들어 댑니다.
캄캄한 밤,
어둠 속에 허옇게 빛나는 눈밭,
거기에 부드럽게 부는 바람과
하늘거리는 눈발.
이것들에 보태어 울려 퍼지는 방울소리.
아마도 이것조차도 숲의 광경으로 화자는 정신을 놓은 듯 합니다.
화자의 눈엔 이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로워 더욱 더 멈추어 서서 움직이지 않고 싶었을 지도요.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다운데
그러나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그런데 화자는 당나귀의 방울소리가 아니더라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나 봅니다. 왜냐하면 화자는 반드시 자신이 가야 할 먼 길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를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네요.
자신과의 약속일까요?
아니면 타인과의 약속일까요?
누구와의 약속이든 아마도, 그 약속은 ‘엇갈리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인생에서는 많이 것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엇갈리면 안 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숲의 주인과는 엇갈릴 수 있어도, 절대 엇갈릴 수도 어긋나서도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지요.
혹시 그 무엇이란,
그 누구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말할까요,
가야 할 어딘가를 말할까요?
아니면 해내야 할 그 무엇을 말할까요?
그런데 그는 ‘잠들기 전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잠들기 전이란 오늘 밤 잠들기 전일 수도 있고, 인생의 마지막 잠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잠이 어떠한 순간의 잠이든, 그 전에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을 그 자신에게, 또한 독자에게도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잊지 않도록 다짐하도록 만들고 있는 듯 하군요.
마치 이 시는 그의 ‘가지 않은 길’의 연장선상으로 보이는데요, ‘가지 않은 길’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에서 어느 길을 가야할 지를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한다면, 이 시는 이제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을 출발하여 가고 있는 도상에서 엇갈리지 않고 그 길을 잘 마무리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네요.
돌이켜보면, 인생의 길에서 너무 좋아서, 반대로 너무 힘들어서 가던 길을 주저앉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결국 인생은 어긋나고야 말겠지요.
이 시는 우리에게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으니 그 곳을 향해 조금만 더 힘내라고 어깨를 다독거려 주는 듯 하는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